성경연구

스바냐(하나님을 찾으라)

비전의 사람 2014. 10. 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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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서 - 하나님을 찾아라.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2:3).

 

I. 시대적인 배경

 

스바냐 선지자는 요시야 (B.C. 640-909)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 왕의 4대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으로서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왕궁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고,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대는 므낫세와 아몬의 우상 숭배와 죄로 인하여 영적인 어둠을 겪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1장에서는 므낫세가 저지른 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열하 21:2). 므낫세왕은 아합 왕을 본받아서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았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아들을 불로 태워서 제사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죄에 대하여 성경은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열하 21:11). 이와같이 영적인 어둠의 시기에 스바냐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스바냐의 사역의 힘입어서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영적 각성을 하게 됩니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방 우상을 모두 불사르고 영적 개혁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정결케 합니다. 열왕기하 23장에서는 요시야의 개혁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도다.” (열하 23:23-24). 요시야왕은 우상을 불태우고 예배를 회복했으며,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회복함으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II.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와 열방의 죄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영적인 암흑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주위 나라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에 불순종할 때 만나야 할 지옥의 심판에 대하여 전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1. 스바냐 선지자는 심판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주위 나라의 범죄에 대한 보응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진노케 한 죄는 무엇인가요?

 

첫째,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1:4-5).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요시야 왕이 즉위 했지만 아직 영적 개혁이 일어나지 않은 시기입니다. 나라 곳곳에 우상의 활동이 왕성하게 있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숭배하던 바알과 일월성신을 향한 우상 숭배, 말감 등에 대한 우상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여러 이방 민족들에게서 가져온 우상을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4절의 그마림이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의미로, 우상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제사장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말감은 몰렉이나 몰록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자식을 불에 태워 바치는 인신 제사를 드리는 우상 숭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존재 의미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의 징계의 심판이 찾아와 그들을 정결케 하신 후에 다시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별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과 백성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우상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중심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탐심과 방탕과 세상 사랑하는 모든 허탄한 것들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했습니다. (1:6).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를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하는 신앙의 삶을 추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 외의 다른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을 찾고 구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6) 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의 얼굴을 구하며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무관심은 하나님을 향한 무관심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삶은 교회를 통해서 열정의 예배와 사역, 그리고 공동체의 사역에 헌신함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터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그분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한 기쁨을 교회의 예배와 교제, 그리고 기도와 섬김의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갈망합니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업신여겼습니다.

 

스바냐 3장에서는 예루살렘이 받을 형벌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3:2).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들의 힘과 육체를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 권력자는 사자와 같이 백성들을 착취하였고, 재판장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이리와 같으며,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어두움과 타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중심이 되는 나라에서는 온갖 포악과 죄악들이 관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슬람의 나라들은 인권이 없는 착취가 관영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들이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온갖 종류의 부패와 인신 매매들이 성행하는 것입니다. 멕시코와 같은 나라에서는 마약과 부패한 관료들이 백성들의 삶을 착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스바냐 2장에서는 이방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심판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 모압과 암몬 자손들, 그리고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한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북방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로 황무케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2:13). 하나님의 심판은 훗날에 전세계를 향하여 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라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듣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17).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2:3).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겸손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겸손하여 하나님을 찾음으로 공의와 겸손을 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겸손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에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교훈을 받아야 했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희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7).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울 때에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교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스바냐 317절에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17)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고 그 분을 더욱 찾으며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일시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을 행하고 있지만,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를 멸하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이와같이 여호와의 날은 궁극적인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을 심판하시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의 백성은 영원한 영광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멸시하고 떠나서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하여는 불의 심판으로 임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날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늘 깨어 기도하며 예배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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