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리스챤입니다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마 7:13-27)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지난 주에 오레곤주에 있는 엄프콰 대학에서 총기 사고로 13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범인은 대학교 강의실에 총을 들고 찾아와 한 사람씩 세우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크리스챤입니까?” 그의 질문에 “네, 저는 크리스챤입니다.” 라는 답변을 한 학생들을 총으로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주저하거나 아무말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리를 쏘아서 부상만 입혔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바로는 총기를 든 범인은 무슬림도 아니지만, 크리스챤을 목표를 하여 총기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슬픔이 있은 후에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sns 에 추모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Yes, I am a Christian." 이라는 문구를 공유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자신들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대권 주자인 벤 칼슨은 자신의 페이스북의 사진을 ”Yes, I am a Christian." 이라는 글을 공유하며 애도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크리스챤입니까?’ ‘네, 저는 크리스챤입니다, 아니오, 나는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그러한 위기속에서 그들은 앞 사람이 총구에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은 크리스챤이라고 답변을 했던 진정한 크리스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큰 꿈을 가지고 대학교에 들어갔던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고 목숨을 바치면서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크리스챤입니까?”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챤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사탄이 우리를 향하여, “당신은 크리스챤입니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네, 저는 크리스챤입니다.” 라고 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답변이 단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할 수 있는 진정한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크리스챤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크리스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인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문과 그리로 가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좁은 문이고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사람들은 넓은 길을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기에 서로 존중하며 진실되게 믿으면 천국에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은 넓은 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문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듣기에 좋고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을 선택하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넓은 길이 많은 사람들이 찾기에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멸망의 길이며 어둠의 길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되신 주님께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19). 사람들이 어두움을 더욱 사랑하기에 빛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문이 아닌 좁은 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하셨고,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무엇인가요? 그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9) 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양의 문이 되시기에, 주님을 통하여 들어갈 때에 구원을 얻으며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 제자들은 사람들이 하는 답변을 주님께 드립니다. “더러는 침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주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답변을 합니다. 베드로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됨의 의미를 볼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며,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해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는 메시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인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된다는 의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이 되시기 위해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로서 메시야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크리스챤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문이 되신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이 넓어서 좋아하지만 그 길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을 선택해서 좁은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이며 주님이 남기신 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2. 크리스챤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7).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단지 생각이 변하거나 마음을 고쳐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얻는 생명은 주님이 주시는 영생인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데, 그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크리스챤이라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주님의 가지로서 그 분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지로서 그 분 안에 거하며 참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크리스챤입니까?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하면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비유로 하시면서 이들은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라고 하셨습니다. 겉은 교회의 모습이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이 거짓 복음과 왜곡된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5).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주님 보시기에는 양의 옷을 입은 노략질하는 이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단지 무늬만으로 크리스챤의 삶을 살아가는지요? 아니면 주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곳에서 함께 동참하며 그 분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게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 열매는 미움과 질투와 악독이 가득한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비방과 음란과 간음과 같은 악한 열매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람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의 성령을 따르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챤은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고 성령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6-17). 크리스도인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순종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 안게 거하는 삶은 영혼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게 되면 성령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구원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의 증거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얻기를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큰 상급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사함받은 의인으로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 열매는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새로운 영혼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열매맺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다운 열매가 삶과 인격의 변화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3.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을까요?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고백 속에는 진실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주여 라고 삼창을 하기도 하며 주를 힘차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여 라는 고백 속에는 주님의 참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이단들도 예수님을 주라고 부리기도 하고, 카톨릭에서도 예수님을 주라고 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여 주여’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주되심의 참된 의미를 모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기도 하고, 귀신을 쫓아 내기도 하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주님의 이름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귀신을 쫓는 일이나 선지자 노릇도 하며, 더 나아가 권능을 행하는 척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으로 분별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게 되면 거짓된 모습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모습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만든 교리와 힘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씀으로 진리를 분별하기 보다는 신유나 병고침 더 나아가 예언과 같은 표적을 구하면서 마치 그들이 신령한 것처럼 느끼며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고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은 은혜가 모든 영적 생활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구원은 영적 생활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분의 뜻을 높이며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마지막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 6:38-39).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더욱 순종하기 위하여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날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서 세워지며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크리스챤은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지혜로운 건축자는 집을 건축하면서 어디에 건축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견고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반석 위에 집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건축가가 자신의 집을 모래 위에 세우게 되면 그 집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게 되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집은 어떠한 비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고 견디는 것입니다.
자신의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리석음은 인간적인 우두함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말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비와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세웠던 인생이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건축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선택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건축자인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관계 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말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듣기에 힘쓰며,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열매 맺는 옥토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그리스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당신은 크리스챤입니까?” 라고 묻는 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크리스챤이라는 증거가 삶의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는지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지 깊이 생각해 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진정 크리스챤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