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
부활의 소망 (고전 15:22-2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대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2-23).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냈다가 삼일만에 살아나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큰 의미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분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며, 그 분의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성도의 부활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성도의 부활에 대하여 회의적인 고린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헬라의 도시였습니다. 헬라의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자, 듣는 자들이 바울을 비웃었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행 17:32). 당시의 헬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감옥으로 생각했으며, 죽음을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간주햇습니다.
이러한 회의적인 태도가 교회에 침투하였고, 바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직면해야 했습니다. 부활의 진리는 교리적으로 중요하며 삶의 실천적인 면에서도 중요하기에, 우리는 결코 부활의 진리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15:1-19).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치면서 첫 열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구약에서는 첫 열매를 드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죽으셨습니다. 첫 열매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 다음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첫 열매의 단을 흔듦으로 인하여, 모든 추수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인하여,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다음에는 주님 안에 있는 성도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증거를 제시하면서 부활의 근본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성도의 구원이 증거합니다.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 15:1-2).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을 받은 성도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바꾸는 강력한 능력인 것입니다.
복음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은 핵심적인 복음의 진리인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죽으셨지만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죽은 구원자는 아무도 구원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의 성도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렇게 그들의 진정한 믿음을 격려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 15:1-2).
그들이 말씀 안에서 굳게 선 것은 그들의 구원의 믿음이 거짓이 없는 믿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아니하고, 굳게 그 말을 지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지키며 굳게 서게 하는 삶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삶에서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은 헛되이 말씀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구원한 복음의 진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핵심적인 진리가 포함된 것입니다.
2) 구약의 성경이 증거합니다. (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복음은 교회가 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소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로마 군인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구약에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한 죽으심에 대한 많은 구절 또는 상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의 유월절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레위기 16장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상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53장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어디에서 찾을수가 있을까요? 주님은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있었던 것처럼,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마 12:40). 레위기에는 첫 이삭(firstfruits)을 드리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레 23:9-14). 레위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레 23:10-11). 이와같이 첫 이삭은 유월절이 지난 안식일 다음날에 드려졌습니다. 안식일의 다음날이 주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입니다. 이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님의 날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첫 이삭을 그리스도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3).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구절은, 시편 16편 10절에서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가 많은 증인앞에 나타나셨습니다. (5-11)
십자가에서 주님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의 수치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이셨습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다른 제자들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후에 오백여 형제들이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본자는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자였고,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의 삶이 온전히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 15:8-9). 사도 바울의 변화는 부활하시 주님을 만난 후에, 주님의 말씀이 참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는 자라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죄를 지으시지 않으셨지만,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복음도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없다면, 우리는 헛되이 믿는 것이며 아직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 15:12-15).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다면, 우리가 이 세대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주일날 예배를 드리거나 믿음으로 소중한 물질을 드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부활도 미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2. 성도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35-48).
죽은 자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다음의 비유를 통하여 부활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씨앗이 부활의 상징입니다. (35-38, 42-48).
우리가 씨앗을 심으면, 우리는 추수 때에 똑같은 씨앗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씨앗이 죽으면, 그 죽음으로부터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밀의 씨앗을 심으면, 추수 때에는 많은 알곡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씨앗을 심었지만, 얻는 것은 다른 형체의 식물과 열매인 것입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5-38).
특히 추수때에는 처음 심은 씨앗보다 더욱 아름답게 열매를 맺습니다. 특히 튤립과 같은 꽃은 더욱 그러합니다. 꽃의 씨앗을 심었지만, 씨앗에서 생겨난 열매는 아름다운 튤립꽃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2-48절을 통하여 부활시에 있을 몸의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이 썩을 것으로 심게 됩니다. 왜냐하면, 몸은 땅에서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시에는 부패하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2-43). 우리가 욕된 것으로 심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며, 우리가 약한 것으로 심지만, 강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6절은,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담은 흙에서 난 자라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아담의 혈통을 받아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은 후에 부활하게 되면, 이제는 영적인 새로운 몸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2) 육체는 부활의 새로운 몸을 보여줍니다.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고전 15:39).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다른 짐승, 그리고 새나 물고기의 육체가 다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 짐승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육체를 종류별로 만드셨다면, 우리가 부활하게 될 때에 새로운 몸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 속한 형체가 있고 땅에 속한 형체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듯이, 믿는 자가 부활하여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영광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희생하고 수고한 모든 것에 대하여 천국에서 영광으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3. 성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15:29-34, 49-58).
인간의 부활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우리의 몸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우리의 몸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비록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이 오실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게 될 것이며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게 하는가요?
1)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전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늘 위험과 고난, 그리고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찾아오는 시련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날마다 경험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에 영적으로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수만 없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갔고, 다가가는 과정에서 핍박과 시련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감당하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날마다 죽는 경험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바울에게는 영혼을 살려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에게도 부활의 영광이 있기에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기에 날마다의 삶에서 찾아오는 고난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죄로부터 분리하게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전 15:33-34).
만일 몸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몸으로 하는 것은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타락한 삶은 고린도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부활의 믿음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믿는 자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죄로부터 분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죄와 타협하는 신앙인들은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간증을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죽어갈 때에,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깨어 기도하며 거룩한 삶으로 본이 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49-57).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예수님이 오시면 죽은 자들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몸은 죽거나 부패하지 않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몸의 부활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4)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됩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우리가 주 안에서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는 것이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든 것은 부활의 아침에 모두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영광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미래의 영원한 날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도 부활하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의 부활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하는 몸으로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고통은 당하지만 불에 타지 않는 새로운 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 안에 있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안에 계셔서 그들을 인도하셨기에, 그들은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며 그 분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