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막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막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출 25:1-2).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신 후에 40일 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성막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서 성막을 지으도록 지시하십니다. 성막은 하늘에 있는 성전의 그림자라고 히브리서는 증거합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히 8:5).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8). 성막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한 거룩한 장소였던 것입니다. 성막을 ’미쉬칸‘이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거하시는 처소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장소로서 성막이 준비된 것입니다. 또한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 장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다(히 10:19) 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합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의 피를 드리며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드리도록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출 25:2).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기 위하여 예물을 가져오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자발적인 헌신으로 드려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되 모세가 임의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짓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막과 그 안에 만들어지는 기구들을 통하여 영적인 의미를 함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증거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반, 광이 일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10).
하나님께서 성막의 처음 지시한 기구는 궤였습니다. 이 궤는 영어로 ark 로서 방주와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최고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이 궤를 증거궤, 법궤, 또는 언약궤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증거판, 즉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두고, 후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든 항아리를 두도록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행진하였고, 언약궤의 위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 등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언약궤를 덮는 뚜껑을 ‘속죄소’ 또는 ‘시은좌’, ‘자비석’ 이라고도 했습니다. 시은좌의 뜻은 은혜를 베푸는 자리로서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죄를 속하는 보좌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이었습니다. 속죄소의 뜻은 ‘카파르’ 로서 ‘...을 덮다, 속죄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대제사장이 피를 뿌림으로 하나님의 죄를 덮어주시는 속죄의 은혜가 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죄소 위에는 날개를 가진 천사 모양의 두 그룹을 만들어 서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곳에서 임재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 21-22).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지성소였던 것입니다. 이 지성소는 성소와 구분하여 가장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에 뿌림으로 속죄받던 곳입니다.
우리는 가장 거룩한 곳에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인 언약궤와 은혜의 상징인 속죄소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짐승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받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속죄를 이루사 우리의 죄가 사하여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구약의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일년에 한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그 분을 섬김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2-14).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았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양심까지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기 되어야 합니다.
2. 진설병은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찌니라.” (출 25: 23,30).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크기는 가로가 91.2 cm, 세로 45,6 cm, 높이 68,7 cm입니다. 한 규빗이 45,6 cm 정도로 추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 위에 떡을 항상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설병은 상위에 놓은 떡으로서 임재의 떡(the bread of presence)이나 보이는 떡(showbread)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성소의 오른쪽에 놓여지는 떡상에는 안식일마다 12개의 떡을 두 줄로 놓았고, 제사장들이 진열되어 있던 떡은 성막 뜰의 거룩한 곳에서 먹었습니다.
우리는 진설병인 떡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48-5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함으로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에 필요한 양식을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생명의 양식을 얻어 영적인 풍성함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자는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주님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등잔대는 빛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출 25: 31).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왼편에 등잔대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등잔대는 일곱 개의 등을 켤수 있도록 만들었고 크기는 높이가 152 cm, 폭은 107 cm 정도였습니다. 정금으로 만든 등대는 어두운 성소를 밝히도록 하였습니다. 성소는 제사장이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도록 빛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출입구의 빛으로, 밤에는 감람유를 상용하는 등대의 빛이 성소를 밝혔습니다.
성소의 어두움을 밝히는 금촛대는 빛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두움에 오셔셔 어두움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빛되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3)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등이 되셔서 천국을 밝히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심을 더욱 발견하여 빛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을 떠나게 되면 어두움에 속하게 되고 결국 영적인 소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비추는 등잔이 되어 주님의 영광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그 분의 빛이 비추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비추는 주님의 빛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선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4. 분향단은 중보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찌닌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출 30:1).
분향단은 향을 태우는 단이었습니다. 분향단에서 제사장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향을 태웠습니다. 분향단의 위치는 속죄소 가까운 곳에 있는 곳으로 성소의 중앙 북쪽이었습니다.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 (출 30:7-8).
제사장은 아침 저녁으로 향을 태움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꺼지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 향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이 중보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중보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막의 향이 꺼지지 않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중보하고 계십니다.
주님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기도가 무척이나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서 금대접에 담아 하나님께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8).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분향단의 향은 꺼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도가 끊어지지 않아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와 개인의 삶에서 기도가 끊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분향단의 위치가 지성소바로 앞에 위치한 것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기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분향단은 일년에 한번씩 피로써 속죄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1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5. 번제단은 인간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출 27:1).
번제단은 놋으로 만든 제단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의 뜻은 ‘희생의 장소’입니다. 이는 “희생을 위하여 죽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제단은 성소의 바깥뜰에 위치해 있으며 성막의 출입문을 통과할 때에 가장 먼저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번제단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들이 만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에서 짐승들이 희생되어 제단에 불태워졌습니다. 이는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 양이 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 9:12)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우리가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기자는 증거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치루신 희생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 같이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6. 물두멍은 우리를 깨끗케 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출 30:18).
하나님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물두멍의 목적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손과 발을 씻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섬기는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은 반드시 물로써 자신을 깨끗하게 씻고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사장이라도 자신을 씨지 않은 부정한 몸으로 성소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두멍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결케 되는 비결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얻은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얻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말씀이기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양심과 마음이 더럽혀지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2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 하게 됨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회개하게 되고 마음이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회개함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비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은 백성들의 예물로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너희의 소유 중엣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 (출 35:5).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위하여 백성들이 예물을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그 예물은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염소털과 수양의 가족 등을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의 선포에 백성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출 35:21).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출 35:29).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을 즐거이 가져오는데 너무 많이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자, 모세가 백성들에게 성막을 만드는 일에 쓰고 남기에 더 이상 가져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 36:5-7).
하나님의 백성들이 너무나 넉넉하게 가져오므로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원함으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을 위하여 헌신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는 금과 은과 보석을 드린 자도 있고, 수양이나 해달의 가죽을 가져온 자도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조각목과 같은 나무를 가져왔습니다. 어떤 자들은 실이나 염소털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헌신으로 성막이 지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즐거이 헌신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 건물에 필요한 강대상과 의자 및 다양한 기구들을 위하여 즐거이 헌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기뻐 받으시고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자의 마음은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드리는 것이며, 마음이 감동되고 자원하는 자들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원하는 섬김과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막이 완공되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희생의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