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의 혼인잔치
어린양의 혼인잔치 (계 19:4-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9).
오늘 우리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언제 혼인 잔치가 일어나게 될까요?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에베소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 5: 32-33). 주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열 처녀에 비유하셨습니다. 천국에서 찬양의 소리가 들리며 고백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되었으니.” (계 19:7). 어린 양의 혼인이 이르렀기에 그 아내가 예비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 ...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 21:9)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휴거가 된 후에 지상에서는 칠년 대환난의 기간을 지내게 됩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교회를 공중으로 부르신 후에 칠년간 거하시며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여시게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마치면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공중에서 성도들은 두 가지의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우리는 심판이라고 하면 믿지 않는 자가 백보좌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자신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의 심판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20:14). 백보좌 심판은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도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을 가르칩니다. 로마서와 고린도 전후서 에서는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자신들의 삶과 사역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죄에 대하여 진노하는 심판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선행과 사역과 믿음의 수고에 대하여 격려하시는 은혜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시기는 휴거가 일어난 후에 공중에서 있게 됩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눅 14:14). 주님께서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전도의 수고를 갚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의 때는 주님께서 공중재림 하실 때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오실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칭찬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4:5). 주님이 오시는 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인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롬 14:10,11).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각자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직접 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은 성도의 삶에서 축적된 업적이 그리스도 앞에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2-15).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의 공력이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같이 보석 같이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면 그 공력이 그대로 있어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허무한 것을 추구하였다면 불에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은 불 가운데서 구원받은 빈손들고 천국가는 모습입니다.
심판대는 헬라어로 베마(bema) 라고 합니다. 베마는 통치자나 재판관이 다스리기 위하여 앉는 높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또한 베마는 고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자가 상을 받기 위하여 서는 단입니다. 그러면, 경기의 주관자가 높은 단인 베마로 선수를 불러서 면류관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베마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의 여정을 달려온 것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주님이 상급대로 부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4-25). 운동장에서 달려가는 자들이 상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듯이, 우리도 주님이 주시는 상급과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죄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수고와 경주에 대하여 주님이 격려하시며 면류관을 주시는 자리입니다. 이는 졸업식에서 우수 학생들에게 상장을 주며 격려하듯이, 최선의 삶을 살아간 믿음의 성도들을 위로하시며 격려하시는 자리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상급을 주실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주시는 면류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5).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은 자신을 절제하며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은 시험을 참고 인정받은 자에게 주어집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을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또한 의의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8). 영광의 면류관은 주님이 맡기신 양무리의 본이 되며 목양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벧전 5:4). 우리는 기쁨의 면류관을 기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쁨의 면류관은 전도의 열매를 맺은 자에게 주시는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 2:19-20).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에서 영원한 면류관을 얻는 순간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는 것보다 더욱 값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은 영원하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상급을 얻은 후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2. 성도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되었으니.” (계 19:7).
휴거 이후에 공중으로 들림받은 성도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주님을 섬긴 공력에 대한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과 같은 공력이 나타나지만, 어떤 사람은 불가운데서 구원받은 초라한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을 받고 난 후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어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9). 우리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큰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유대 사회의 혼인 제도를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약혼은 당사자의 부모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신랑측은 신부를 취하기 위하여 지참금과 같은 댓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그러면 당사자간에 약혼이 성립이 됩니다. 당시에 약혼은 곧 결혼을 의미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였을 때에 이미 결혼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닙니다. 신부는 자신의 집에서 단장하며 신랑을 기다리게 됩니다. 신랑은 약혼한지 대략 일년이 지난 후에 예고없이 신부의 집에 찾아갑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하며 예비한 신부만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신부는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올 줄을 알고 신랑을 위하여 자신을 단장하며 기다립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가 방탕하거나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은 불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결한 처녀와 같이 자신의 순결을 지킴으로 신랑되신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라고 하셨습니다. 신랑은 대략 일년이 지난 후에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데리러 옵니다. 그러면, 신부는 신랑을 따라 집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신랑의 집이나 아버지 집에서 주최하는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혼인 잔치는 대략 칠일동안 열리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와 약혼한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으로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천사들의 나팔 소리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신부인 우리를 데리고 하늘로 오르시고 그곳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공중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마치면 주님은 우리와 함께 지상으로 재림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요한계시록 19:11-12).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시고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모습입니다. 주님이 지상 재림하시기 전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성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7-8).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한 성도들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습니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영어의 킹제임스에서는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가된 의인 것입니다. 즉, 성도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웰 목사님은 세마포는 속옷과 겉옷이 있는데, 속옷은 그리스도가 전가한 의의 옷이며 겉옷은 성도의 선한 행실로 주님이 주신 옷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음을 상징하는 옷이고, 다른 하나는 성도들의 선한 행실로서 주님이 입혀 주시는 옷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될 때에 불의 시험을 통과하여 금과 은의 값진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화려한 세마포 옷으로 입힐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운데서 구원만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평범한 세마포 옷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자들은 누구인가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주님이 중심에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참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신랑의 친구들이 참석하여 기뻐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계 3:29). 신랑의 친구는 구약의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침례요한도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침례요한을 친구라 표현하십니다. 구약의 성도는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교회 시대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성도들은 신랑의 친구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혼인 잔치를 축하합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침례 요한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들이 누리는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1). 교회 시대에 주님의 신부된 성도들이 천국에서 큰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막 2:19-20). 혼인집 손님들은 구약의 성도들입니다. 이제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나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며 그 날에 금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이후에 공중에서 일어날 두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 삼으셔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을 주실 것이며,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큰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기에 주님의 부름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름의 상과 면류관을 위하여 달려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