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거룩시리즈(2) - 예수의 피로 얻는 거룩함(히 10:10)

비전의 사람 2019. 10.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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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시리즈(2) - 예수의 피로 얻는 거룩함(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거룩의 근원이 되십니다. 거룩의 원뜻은 분리(separation)'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피조물과 구별되셔서 피조물의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죄와 분리되셔서 세상의 죄와는 멀리 떠나계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며 천사들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받은 사람이 죄를 범하자 부정한 자가 되었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존재 하지 않듯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람은 영적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59:2).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범한 사람과 교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분리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의 분쟁과 다툼에는 항상 사람의 욕심과 비방 등의 죄가 숨어 있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였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영적으로 분리된 하나님을 만나 관계를 회복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하고 신성해서 접근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숭배함으로 거룩에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접근하는 노력을 할 수록 사람들은 더욱 부패해 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는 지구라트를 만들어 달신을 숭배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지역에는 땅에서 땅속에서 천연가스가 나와 수천년간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페르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만들어 불을 숭배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유역을 주변으로 문명을 만들어 살았습니다. 나일강이 주는 비옥한 땅과 하늘의 태양이 가져다 주는 햇빛은 풍요한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태양신을 주신으로 섬기며 나일강, 또는 개구리 등을 우상으로 숭배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피조물을 숭배하는 우상의 모습입니다. 우상으로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고 신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부정하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이게 했습니다.

 

부패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 거룩한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가 되어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회복할 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으며 ...”(64:6).

 

죄는 하타(חָטָא)라는 히브리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하타의 원뜻은 표적을 빗나가다, 길에서 벗어나다입니다. 죄는 거룩한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떠난 사람은 죄를 범하여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7:21-23). 죄는 악한 것입니다. 악한 죄가 부패한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의에 벗어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문둥병에 비유하곤 합니다. 문둥병에 걸린 자는 아무 감각이 없어 아무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심지어 문둥병에 걸려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감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은 작은 점으로 시작하여 온 몸에 퍼져가게 합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고칠수가 없게 됩니다. 이와같이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회개가 없었고 도리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시 했습니다. 라멕은 소년이 자신에게 작은 상처를 주자 그 소년을 죽이며 자신의 힘과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범하는 자들의 무감각에 대하여 이렇게 고소합니다.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1:32). 죄를 짓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면서도 계속 죄를 지으며 그러한 죄를 짓는 다른 사람들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는 혀로는 속이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어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죄는 무감감하기에 누룩처럼 퍼져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한 타락이 노아 시대에는 온 세상에 죄가 관영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5).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점점 퍼져가고 결국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마음의 쓴 뿌리를 회개하지 않으면 이로 인하여 사람이 더러움을 입는 다고 했습니다(12:15). 죄는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누룩처럼 전체를 오염시켜 온 몸을 더럽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사람들이 번영하고 부유해질수록 하나님께 범죄한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4:7). 이스라엘이 물질의 번영을 누렸지만 하나님을 아는 거룩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에 죄를 범하며 부패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4:1-2). 죄는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문둥병은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이듯이, 죄의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뿐입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고, 도리어 전염성이 강해서 다른 돼지까지 급속도로 폐사시키는 지독한 질병입니다. 중국은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인하여 돼지를 1억 마리 이상이나 폐사했다고 합니다. 돼지열병의 전염을 막기 위하여 발견되는 즉시 주위 돼지까지 미리 살처분하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6:23). 죄는 사망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사망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죄는 육신이 죽는 사망의 고통을 통과한 후에 영원한 형벌을 받는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죄의 결과는 불과 유향으로 타는 불호수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죄는 저주이며 사망이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는 절대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슬퍼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한 죄는 하나님께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난 주는 유대인들의 중요한 절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욤 키퍼라고 하는 대속죄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대속죄일을 지키기 위하여 공항도 폐쇄하고 도로에는 차도 멈추고 절기를 지킵니다. 이날은 속죄일로서 유대인들은 온종일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온 민족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절기는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의 규례부터 전해온 이스라엘의 신앙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제사법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번제나 속죄제, 화목제와 같은 제사를 드리며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백성이 소나 염소를 성막에 가져와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합니다. 이는 자신의 죄가 짐승하게 전가되어 대신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1:4). 자신의 죄는 사망이 이르게 하기에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희생 제물에게 죄를 전가함으로 희생 제물이 대신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희생 제물을 번제소라는 번제단 곁에서 죽이면 제사장은 피를 받아 번제단에 뿌렸습니다. 백성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습니다. 이때 희생 제물은 피를 흘리며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오저 9시부터 오후 3시 까지 고통 가운데 피를 흘리며 죽으신 것과 같은 모습니다. 희생 제물이 피를 흘려 죽으면 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고 각뜬 제물은 단위에서 불에 태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드리는 번제였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내장과 콩팥과 간꺼풀을 제외하고는 제사장과 백성과 그의 가족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는 희생 제물의 희생과 피의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여 진노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그러나, 죄없는 희생 제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열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죄인 대신에 희생 제물의 피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씻어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속죄라고 하는 것은 희생 제물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희생 제물의 피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의 죄를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화목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한 값을 짐승의 생명으로 대신 치룰 때에 하나님은 죄인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사랑하셔서 짐승 가죽으로 아담의 수치를 가리우셨듯이, 인간의 죄를 희생 제물의 피로 대신 가리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인을 용납하셔서 화목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9:13)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하여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왔지만, 짐승의 피를 뿌리고 희생 제물을 번제단에 태운 것은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갈 수 없었고, 자신의 죄를 회개할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해결은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고 자신이 직접 짐승을 잡아 죽인 것입니다. 그 후에 제사장이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제사장은 중보자로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도록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부정한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이 구별하신 제사장이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서 기름부은 메시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삼으시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 구원하기 위하여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하나님의 종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피흘려 죽으심을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우하여 피를 채찍에 맞으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고 죽으시는 희생 제물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심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12).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드리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의 뜻은 분리, 또는 구별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자르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분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죄인된 우리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거하는 자는 거룩한 자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고 거룩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구별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게 하셨고,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예수의 피로 죄를 씻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 우리를 예수의 피로 사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세상에서 구별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려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함을 얻은 것은 이미 완료된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와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이미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기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에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16:30).

 

이스라엘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희생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희생제물은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대신 죽어야 하는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행위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며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16:21-22).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모든 죄를 염소의 머리에 고하면,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를 지고 광야에 보내어 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한 죄를 제사장인 중보자를 통하여 용서하셨습니다.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희생 제물과 거룩한 제사장의 중보가 필요했습니다. 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번제단에 피를 뿌리고 희생 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아닌 자가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가면 성전을 부정케 함으로 큰 죄의 대가를 죽음으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신 중보자이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성소에 자신의 피로 들어가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피로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중보자인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죄를 속죄받고 정결해졌듯이, 우리는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함을 받아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4-5).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시고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거룩함을 얻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하나님과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풍성한 기업의 은혜를 천국에서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유대인들은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대속죄일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회개와 금식에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아론이 대속죄일에 희생양으로 드린 염소와 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메시야가 이미 오셨지만 지금도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에 아무리 회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지 못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를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치루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죄의 값을 치루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죄인임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우리가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음으로 마음에 영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하시고 우리의 죄를 씻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된 관계를 소멸하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자이시며,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구주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