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거룩시리즈(3) -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벧전 2:5)

비전의 사람 2019. 10. 20. 10:00

거룩시리즈(3) -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제사장이란 제도는 구약의 성막이 세워지면서 세워진 직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열두 지파가 있었는데,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로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중에서 아론과 그의 후손들을 구별하셔서 성막과 성전에서 섬기는 대제사장과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28:3) 라고 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구별되어 거룩한 직무를 담당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직분을 거룩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거룩은 거룩하게 분리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거룩하게 구별하신 직분입니다.

 

제사장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에서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보자였습니다. 중보자로서 제사장들은 다음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첫째, 백성들의 죄를 속죄했습니다. 중보자로서 제사장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번제단에 올라거거나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위에 짐승의 피를 뿌려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게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습니다. 제사장의 중요한 직무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었습니다. “ ...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10:10-11).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고 속된 것을 가르치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여 가르치는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셋째, 성소에서 섬기는 직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라 지키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18:5). 제사장은 단에서 드리는 제사의 직무와 성소에서 진설병을 안식일에 새떡으로 교체하고 분향단의 향이 꺼지지 않게 하고, 금촛대의 불을 항상 밝혀야 했습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 성막을 관리하거나 운반하는 일은 했지만, 성소의 기구와 단에는 가까이 못한다고 하셨다 (18:3).

 

제사장의 거룩한 직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인 성막에서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정함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에 거룩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구별된 자들이었기에 백성들을 대신하여 섬길 수가 있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4-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서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 자신의 피를 뿌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셨습니다.

 

신약에 이르러는 구약의 성전이 무너지고 제사가 폐하여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약의 성전에 머무지 않으시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성전 삼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라고 했습니다. 산 돌은 살아있는 돌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예수님은 살아있는 돌과 같이 살아서 그 분의 영적인 집을 지으시고 계십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신령한 집이란 주님이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성막에 거룩한 제사장이 섬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듯이, 신약의 교회는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 향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벧전 2: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중보자로서의 영적인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섬길 때에 성소의 분향단에 향을 항상 피워야 했습니다. 분향단의 향은 성도의 기도로서 하나님께 올려지는 거룩한 향이었습니다. 구약에는 중보자의 기도로 하나님이 응답하신 역사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멸망하는 소돔에서 롯의 생명이 보존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 말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이 있다면 멸하시지 않으시다고 했지만, 결국 의인 십인이 없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멸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19:29).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멸망의 성에서 롯이 구원받게 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자의 사역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이스라엘이 싸울 때에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올리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기도가 승리의 원천이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7:11). 모세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중보는 아말렉과의 전쟁 이후에 시내산에서 크게 쓰임받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과 더불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고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10).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애굽의 신들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시기를 간청했습니다. “...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32:32).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를 간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었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중보로 인하여 하나님은 전체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3,000명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이스라엘을 받으셨습니다. 모세의 중보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보자로서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아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7: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께 속한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그분께 속한 제자들을 하나님이 보전하시고 하나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고, 악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기를 기도하셨습니다. “...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가 거룩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주님의 중보기도는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되게 하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되심과 같이 우리도 하나 되기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되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 주님의 중보기도에 힘입어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지만 다시 회개하고 사도의 권위를 회복하고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시며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하여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서는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22:3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찾아올 때에 무너진 성을 막아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에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은혜를 주시도록 중보하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서 세상과 하나님의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믿음의 지체들의 회복과 거룩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형제가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기도록 기도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종교개혁시대에 영국에서는 메리여왕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존 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을 전할 때, 당시 통치자였던 메리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존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밤을 세우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자 메리여왕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메리 여왕은 죽기 전에 "존 낙스 한사람의 기도가 백만 대군보다 더 두렵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메리 여왕도 기도의 사람 존 낙스 한 사람을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존 낙스의 기도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건질수 있었습니다.

 

이는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한 사람을 찾을 때에 존 낙스의 중보기도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주위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의 구원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의 중요한 직무는 백성들이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제물을 가져오면 피를 번제단이나 성소의 분향단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제물을 번제단에 올려 불로 태워 백성들을 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했습니다.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16:14). 대제사장의 중보는 백성들을 그 부정함에서 피로 속죄하여 정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화목하기 위하여 죄인은 죄의 대가를 짐승의 피로 드려야 했고, 하나님은 대속의 제물이 흘린 피를 보시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순결한 희생양의 죽음을 통하여 죄인에 대한 심판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자신을 속전으로 드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속전은 생명을 대신해서 바치는 값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생명의 값을 치루어야 하지만, 값을 주고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생명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인류의 죄로 인한 값으로 희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8:6).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중보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지 않는 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화평으로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화목하는 중보자임을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이란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중보자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려 하심이라.”(15:16). 사도 바울은 복음의 중보자로서 이방인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이방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군으로 삼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성령과 말씀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 세상에서 구별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다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16:31). 주 예수를 믿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고, 루디아가 구원을 받았으며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전하는 아름다운 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에 나는 것이기에,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중보자로서 세상의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선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거룩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은 성소의 직무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에 대하여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를 지키라 ...”(18:5)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감당해야 할 직무는 성막 안에서의 직무였습니다. 번제단에서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불로 태워야 했고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들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불을 지켰습니다. 성소에서는 진설병의 떡을 매 안식일마다 12개씩 교체하였고, 분향단의 향을 아침 저녁으로 켜서 항상 하나님께 향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금촛대에서는 감람유로 만든 기름으로 불을 켜서 성소를 밝혔습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항상 감당해야 할 직무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예수님이 세우시는 신령한 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성별된 성도들이 서로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사역했던 것같이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 교회를 섬깁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라고 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하나님은 각자에게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 섬기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신령한 몸으로서 거룩한 성도들의 섬김과 헌신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무는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섬긴 것과 같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찬양이나 악기 연주로 섬기기도 하고, 요리나 주방 사역, 그리고 차량 봉사로 섬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르치며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 섬기기도 하고, 주일학교나 학생부 청년부 목자로서 헌신하여 섬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청지기의 직무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에 우리의 헌신과 섬김은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직무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물로 드려 구원을 이루심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자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3:15). 찬양의 제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예배입니다. 우리의 찬양은 입술의 열매인데, 예수 이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구원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주는 것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3:16). 초대 교회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서로 선을 행하며 나눠주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제사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며, 서로 나눠주면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하셨고, 그 분의 직무는 중보자로서 섬기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룩한 성도가 되었고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영적인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영적인 집의 제사장으로서 중보 기도와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