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존 뉴턴의 변화

비전의 사람 2013. 6.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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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뉴턴은 한 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43년간 목사로 봉사하였습니다. 이 시간 뉴턴의 생애를 통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존 뉴턴은 1725년에 태어났습니다. 뉴턴의 어머니는 경건하고 체험 있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아들교육에 들였습니다. 뉴턴의 어머니는 많은 기도와 눈물로 아들을 돌보며, 그를 목사로 기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뉴턴이 여섯 살 때 그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뉴턴의 어머니가 죽자 그 다음 해에 곧바로 재혼하였습니다. 이 일 이후 뉴턴의 행실은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종교에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쉽게 매우 나쁜 영향들을 받아들였습니다.


  한 번은 그의 친구와 같이 군함을 승선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약속시간에 너무 늦게 나가게 되었고, 미리 떠난 배는 전복되어 그의 친구와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신 하나님에 대해 일깨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주 금식하며, 채식을 하고 많은 시간을 성경읽기와 묵상, 그리고 기도에 온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창기들과 어울렸습니다. 항해 중 못된 선원들과 어울리며 악한 행실을 일삼았습니다. 그는 완전한 배교로 줄달음치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뉴턴은 군인이 되어 군함에 승선케 되었고, 사악한 행동을 낙과 습관으로 삼았습니다. 얼마 후 그는 탈영했다가 붙잡혀 중범죄자가 되었습니다. 풀려난 후 그는 거만하게 죄를 지었으며, 다른 사람까지 유혹하고 타락시켰습니다. 후에 그는 15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포로생활 동안 노예무역의 일꾼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굶주림과 헐벗음, 그리고 종과 같은 비천한 삶으로 인해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후 다시 불경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끔찍한 욕설꾼이 되어 보통의 저주와 맹세의 말들로 만족하지 않고 매일 새로운 욕설을 만들어냈습니다. 더욱이 노예선에서 노예와 같이 일했던 그가, 이제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노예를 사고팔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는 노예무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배는 파선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이라고 다급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임박한 죽음 앞에 성경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의 영혼의 종말에 대해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완전한 죄의 깨달음이 없이, 절망과 조바심이 뒤섞인 침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치 못하는 뉴턴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배가 물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손길로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까마귀 울음소리 같았지만, 주님은 멸시치 않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배가 파선된 지 4주만에, 뉴턴과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영접하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는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노예무역을 그만 두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어 버킹검에서 16년간을, 그리고 올니교회에서 27년간을 봉사하였습니다. 팔십의 나이를 넘은 그는 시력과 기억력이 쇠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잘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그가 공중설교를 계속한다는 것은 동료들에게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 친구가 그에게 공중설교를 이제는 그만 둘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음성을 높이며 말하였습니다. “나는 멈출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옛 아프리카의 신성모독자가, 말을 할 수 있는 데도 입을 다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추악하고 더러운 범죄 가운데서 자신을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일생 간직하였습니다. 놀라운 은혜에 기초하여, 그는 그 유명한 amazing grace라는 찬송가를 썼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리고 1807년 12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존 뉴턴의 생애는, 아무리 비천하고 추악한 범죄투성이의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도가니에 그 심령이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없으며, 두 손 들고 자복하면 거룩한 일꾼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진리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뉴턴은 자신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한 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교회에서 27년간을 봉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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