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53) - 성경적인 치리의 원리(마 18:15-20)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5).
마태복음 18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함께 연합하여 살아가는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교회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장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죄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겸손한 자가 되어 주님을 영접하는 자가 얻는 복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로서 어린 아이라도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형제 중에 작은 자를 실족시키게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손과 발로 범죄하는 것보다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교회에서 지체에게 죄를 범하는 것은 큰 죄가 됨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은 목자가 양 일백 마리 중에서 하나가 길을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는 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교회의 지체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기에 모두가 겸손하게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지체를 실족시키거나 범죄하여 넘어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어떠한 이유로 양무리 중에서 흩어졌다면 목자는 그 양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이때 주님은 교회의 치리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치리의 이유는 교회의 공동체 중에서 실족시키거나 범죄하여도 회개하지 않을 때는 출교와 같은 치리가 필요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치리를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경적인 치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형제가 죄를 범하면 개인적으로 권고해야 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5).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회원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책임은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그들과 함께 하셨듯이(레 20:26), 교회는 거룩하게 구별될 때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교회가 거룩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하나님과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지난 주일에 포털 뉴스에서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사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성추행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간 뉴스가 메인에 실렸습니다. 그는 지난 일년 이상 술집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의 이탈은 교회를 크게 시험에 빠지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각자의 스승을 두고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모와 음행의 죄를 범하고 있었지만 교회에서 치리하지 않고 있음으로 인하여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이러한 사람들과는 함께 먹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교회에서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을 하는 죄가 있으면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탐심을 품고 우상 숭배를 하는 자와도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중에 후욕하는 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후욕은 말로 비방하거나 중상모략, 또는 학대하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술 취하는 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술 취하는 것을 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색하는 자입니다. 토색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범하면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5). 주님은 형제의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형제를 실족하게 하거나 범죄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언급한 음행이나 남색, 탐심과 우상 숭배, 비방하거나 중상 모략하는 죄, 그리고 술 취하거나 도덕질 하는 죄로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먼저는 개인적으로 가서 그 사람을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형제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 형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음행한 후에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하여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입니다. 다윗의 생애에 가장 어두운 시간은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한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이 나단을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셨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이게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삼하 12:7,9-10). 나단 선지자의 강한 책망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다윗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물론 다윗이 범한 죄에 대하여 징계를 받았으나 하나님이 다윗의 위를 폐하지 않으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을 못본체 하는 자도 함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 20:4-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서로 감추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못본체하는 것은 또 다른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가서 그 사람과 일대일로 상대하여 말씀으로 권고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2. 회개하지 않으면 한 두 사람의 증인과 함께 권면해야 합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 18:16).
형제의 권면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누룩과 같아서 교회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거룩해야 하지만 음행을 허용하거나 우상 숭배하는 자를 용납하게 되는 것은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고린도 지역은 아프로디테라는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있어서 사람들이 여신을 숭배하러 가서 여사제와 매춘을 하는 음행을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만일 교회가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는데 평일에는 신전에 가서 음행을 하며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큰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서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어 음행을 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지체 중에 죄를 범하면 회개하도록 일대일로 찾아가 권면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말씀을 떠난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자신의 죄를 감추고자 급급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한 두 사람을 증인으로 데리고 가서 권면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두 사람의 증인이란 그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본 증인이거나 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한 증인일 수 있습니다. 증인에 대하여 신명기는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 19:15)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사람의 죄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두 증인이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판장은 그 사람의 죄에 대하여 판결하기 전에 그 죄가 확실하다는 것을 증거할 증인이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상대가 자신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 가운데 거한다면, 그 사람은 두 세 증인과 같이 가서 그의 죄 됨을 알려야 합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 18:16). 두 세 증인은 그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치리의 목적은 그 사람을 정죄하고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형제 중에 미혹을 당하여 진리에서 벗어나거나 육신의 정욕에 빠져 죄에 빠졌다면 사랑의 권면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도와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 5:19-20)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지체 중에서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는 것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고 허다한 죄를 덮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면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죄와 허물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변화가 된다면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3. 회개를 거부하는 자는 교회에서 치리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교회의 성도가 주의해야 할 것은 교회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을 만들어 편가르기를 했고, 주의 만찬에서는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음으로 교회의 의식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겼다고 책망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에 구약에서 성소를 공경한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공경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성도는 교회의 권위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고, 영적 질서를 존중하며 협력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권면을 듣지 않고 계속적인 죄를 범한다면 교회에 말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만일 어떤 형제가 죄를 범하여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 문제를 다루며 권고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에 의하여 영적인 힘이 남용되지 않도록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워져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3서에서 디오드레베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내가 두어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요3 9-10). 디오드레베는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교회에서 내어 쫓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지위를 남용하는 경우입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영향력있는 목회자나 직분자에 의하여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결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교회에서 내어 쫓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범죄한 지체를 사랑과 권면으로 회개케 하여 다시 교제권으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지체가 권면을 받은 후에 회개했기에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찌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잘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고후 2:5-8). 고린도 교회는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영적으로 회복합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받으시기에 교회는 회개하는 자를 다시 용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권면을 듣지 않으면 그를 출교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됨의 지위를 박탈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라고 하면서 죄안에 거하고 교회의 권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의 교제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회원권을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음행하거나 우상 숭배자와 후욕하거나 술 취하는 자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러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3).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교회가 더욱 순결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체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는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살후 3:14-15)라고 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고 했습니다.
4. 교회가 주님 안에서 연합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율법에 위하면 의식법에 위하여 부정하게 되면 이스라엘의 회중 가운데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정한 기간이나 제사법에 의하여 정결해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곳과 이스라엘의 회중 가운데 설 수가 있었습니다.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 부정에서 떠나게하여 그들로 그 가운데 있는 내 장막을 더럽히고 그 부정한 중에서 죽음을 면케 할찌니라.”(레 15:31). 부정한 자가 하나님의 성막으로 들어오면 죽임을 당했기에, 의식법에 의하여 정결해진 후에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가운데 거하시기를 기뻐하셨기에, 이스라엘은 부정에서 떠나 거룩해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교회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회개와 용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가 범죄했을지라도 회개하면 그를 사랑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이는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범죄한 지체가 회개하여 다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셔서 풀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한 지체가 회개하지 않음으로 어쩔 수 없이 교회의 거룩을 위하여 출교하면 하나님께서도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셔서 매이게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이며 말씀으로 세워갈 때에 그 결정을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은 주님이 그들 중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공동체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의 모인 곳에 임재하셔서 함께 거하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교회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게 하셔서 그 안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그들에게는 복과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말씀을 순조하며 하나님의 장막을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1-12).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것은 그들에게 큰 복과 승리의 원천이었습니다. 이와같이 교회의 공동체는 주님 안에서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져야 합니다. 직분이 권력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치리의 목적은 형제를 사랑과 용서로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해서 주홍글씨를 써서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나님의 뜻으로 권면하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이때 그 지체는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다시 말씀으로 들어오는 삶은 교회가 다시 하나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을 듣지 않는다면 썩은 가지와 같이 나무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서로를 향한 진실됨으로 거룩한 교회를 세워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