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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55) -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마 19:3-12).

비전의 사람 2020. 7. 11. 21:43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마 19:6).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이 교회에서 서로를 향하여 지켜야 할 영적 원리를 가르치신 후에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으로 오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회피하기 위하여 사용하던 요단 동편의 베레아 지역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면 마주하는 곳이 여리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심을 듣고 찾아오자 주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친히 고쳐주셨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시험하기 위하여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의도는 예수님의 답변을 통하여 곤경에 빠트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와 이복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려고 이혼한 것을 책망하다가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혼에 대하여 강한 반대를 하신다면 그 소문으로 인하여 헤롯 안디바로부터 곤경에 처하거나 감옥에 갇힐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혼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하신다면,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 24장의 말씀에 위배된다며 예수님이 율법을 범한다며 모함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1절은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신 24:1)라고 했습니다. 즉 모세는 율법을 통하여 아내를 취한 후에 수치되는 일이 있으면 이혼 증서를 써서 내어 보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점점 세속화 되어가면서 결혼과 가정의 참된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가정의 해체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부부가 아닌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동거가 유행하며 심지어 동성 간의 동거 내지는 결혼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점점 전통적인 가정에서 벗어나 동거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 다큐에서 아들이 동거하던 아내와 결혼을 하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말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적인 결혼을 하면 나중에 재산을 빼앗길 것이기에 지금처럼 살라고 하며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물질이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면서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가 무너지는 세대의 한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결혼 생활은 안전한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한 보금자리로서 작은 천국으로 살아가는지요? 아니면 그냥 한 지붕에서 살아야 하니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도전을 통하여 가르친 결혼의 참된 의미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9:4-5).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1세기의 유대 사회는 남자들이 신명기 24장을 악용하여 아내를 쉽게 내어 보냈습니다. 아내와 쉽게 헤어지는 이유중의 하나는 아내의 지참금을 착복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대 사회가 사회 복지가 정착된 것도 아니고 여성들을 위한 노동력이 안정되지 않았기에 여성에게 이혼이란 큰 곤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창세기 2장을 통하여 결혼의 근본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9:4-5).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후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후에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신 후에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 2:23). 아담은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결혼이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결혼의 원리를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결혼이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자신의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야 합니다. 연합이란 union 인데 이는 본드로 붙이거나 용접하여 두개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원히 서로 붙어 있게 하는 강력한 비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둘이 한 몸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것은 두 사람의 삶이 하나로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연합은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기자는 결혼에 대하여 언급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사도 바울은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합의 의미에서 삶의 우선순위는 부모에서 배우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배우자와의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자녀보다 배우자에게 우선순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인 성경적인 가정생활의 원리입니다.  

 한 몸이 생명력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연합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영적으로 연합되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믿음 안에 세워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인 공급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사망에 이르렀고 서로를 향한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영적인 능력으로 배우자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순종의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부 생활의 첫째 계명은 사랑과 순종입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33).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주심같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은 먼저 하나님을 섬기기를 고민해야 하고, 다음의 우선 순위는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고 돌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아내는 세상의 풍속을 따라가지 말고 어떻게 남편에게 순종하고 경외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결혼은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순복하는 삶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부는 부모를 떠나 연합한 한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몸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며 서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언약을 지켜 배우자에 대한 신실함을 지켜가야 합니다. 삶의 우선 순위는 아내와 남편이 됨으로 한 몸됨을 지켜 가는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은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마 19:6).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2장 말씀을 통하여 결혼의 본래 의도는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의 원래 의도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마 19:6). 하나님은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본드로 붙이거나 용접을 해서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몸이 되는 것은 살과 뼈가 분리 될 수 없듯이 한 몸은 분리 되지 말고 언약을 지켜가야 하는 책임을 의미했습니다. 

  1세기의 유대 사회는 이혼이 상당히 일반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내와 이혼하고자 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보내었습니다. “보라, 당신은 이제 어떤 남자와도 결혼하는 것에 자유하다. 이혼 증서와 재혼 허락 문헌, 이혼 법령을 당신에게 이관하니, 당신이 원하는 어떤 남자와 결혼해도 이를 인정한다.” 예수님의 눈에는 유대 사회가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 24장의 말씀을 이용하여 이혼을 합법화하는 악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마 19:6)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한 몸을 사람이 나누지 않고 한 몸됨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모세의 율법으로 도전합니다.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 19:7). 이는 신명기 24장의 말씀에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 내어보내는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신명기 24장은,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신 24:1)라고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면 남편은 이혼 증서를 써서 보내면 그 집에서 나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혼 증서는 합법적인 이혼 수단이었고 그 후에 이혼당한 아내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재혼한 이후에 원래의 남편에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1세기의 유대 사회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혼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수치되는 일’에 대한 해석으로 서로의 입장은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힐렐 학파는 이혼에 대하여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여 쉽게 이혼하는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즉 남자들이 이혼할 수 있는 네 가지 규정은 1) 아내가 알지 못하는 남자와 말할 때, 2) 음식을 태울 때, 3) 개에 물렸는데 아내가 즉각 치료해 주지 않을 때, 4) 다른 아내보다 매력이 없다고 느껴질 때 였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사람이 아무 연고 없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샴마이 학파는 수치되는 일을 성적인 죄로 해석하여 더욱 엄격한 규정으로 적용해서 아내가 음란한 죄를 범한 것 외에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24장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의 완악함으로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8-9). 주님께서는 원래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는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라고 한 것은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허락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완악함이란 마음을 강팎케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가 마음을 강팎하게 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고한 마음을 열번이나 참으시고 허용하셨으나 결국 심판하셨습니다. 발람이 모압왕 발락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락의 집요한 요청에 모압으로 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이 그 강팎한 마음대로 허용하셨습니다. 결국 발람은 이스라엘 민족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로 인하여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기 보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음행에 참여함으로 더 이상 부부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는 고대 이스라엘이 일부 다처제의 결혼 제도가 있었기에 여러명의 아내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쉽게 내어버리는 일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적인 죄가 아닌 경우는 아내를 내어 보내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시며 결혼과 이혼에 대하여 정의하셨습니다. 누구도 음행의 연고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원래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가능하면 용서와 와해로 가정을 지켜가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하여 음행의 죄에 빠져 더 이상 가정이 회복이 어렵다면 이혼을 음행이라는 조건하에 허용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결혼 생활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아 음행의 죄에 빠지지 말고 배우자를 소중히 여겨 부부의 하나됨을 지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갈등이나 분쟁이나, 성격 차이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적인 충만함으로 성숙의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 생활과 가정에 영적으로 하나되게 하심으로 서로 사랑과 용서, 그리고 치유의 과정으로 하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이혼하지 말고 잘 살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아내와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찐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마 19:10). 제자들은 이혼하 지 않고 평생 한 여인이랑 사는 것이 어려우니 독신으로 사는 것이 낳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혼자 사는 것은 타고난 독신의 은사가 있어야 하나는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독신으로 사는 은사가 있는 자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3. 부부는 거룩과 존귀함으로 성적인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살전 4:3-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특히 남편은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 취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살전 4:3-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색욕을 좇으며 자신의 영혼과 몸을 더럽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취함으로 부부의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순결의 가치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수 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음행은 그 이름이라도 부리지 말아야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하나님이 사람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자신을 지켜 거룩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유혹을 받지 않도록 기도 외에는 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우리가 기도외에는 분방하지 않는 지혜와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부모에게서 떠나 한 몸으로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부부의 우선 순위는 하나님 다음으로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최고의 사랑과 헌신을 주고 다음에 자녀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는 것이 결혼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은 배우자가 성적인 죄를 범하여 음행했을 때에 허용된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배우자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죄를 범하여 이혼이 불가피하더라도, 이혼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용서하여 한 몸 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음행한 연고외에 이혼하는 하여 재혼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며 이혼한 여인이 다른 사람에게 결혼함으로 간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행한 연고 외에 어떠한 이혼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우선으로 죄로 인하여 관계가 손상하지 않도록 거룩과 사랑의 관계를 세워가야 합니다. 관계에서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 서로 용서하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통하여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도록 더욱 성경적인 가치를 지켜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