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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13) -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요일 3:18-24).

비전의 사람 2022. 7.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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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13) -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요일 3:18-24).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우리의 삶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거두게 하십니다. 농부가 봄에 벼를 심으면 가을에 벼이삭을 추수하여 열매를 얻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심은 것에 대하여 그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 중에 누구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까요? 당연히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베푼 사랑으로 인하여 사랑과 존경을 받고 마음에도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이 많은 가정과 다툼이 많은 가정 중에 어느 가정이 더욱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릴까요? 여러분이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사랑이 많은 가정이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답변할 것입니다. 사랑이 많은 교회와 냉담한 교회 중에서 여러분은 어느 교회가 더욱 기쁨이 넘치는 교회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은 당연히 사랑이 많은 교회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며 교회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1. 사랑은 우리의 믿음에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19-20).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일 1:19).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태어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우리가 사랑하면 구원받은 것의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랑하지 않는자는 사망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일 3:19). 우리가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형제를 남들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은 부모님을 통하여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같은 가족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주 안에서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진리에 속한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져다 주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굳세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만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곤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자신의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요일 3:20).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에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일깨워줍니다.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행실까지 모두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선한 양심이 우리를 책망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도록 인도합니다.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하여 일깨워주십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진리에 속한 줄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구원의 확신으로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여 마음에 책망할 일이 있지만, 그때 우리의 선한 양심이 일깨울 때에 회개하고 다시 형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디모데후서는 “...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백성을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불의에서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불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게 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우리가 마음에 책망할 일이 있었지만 우리가 순종하여 형제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게 되고 담대함을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 3:21).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담대함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응답받게 하는 은혜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순종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비결은 우리의 순종에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열쇠는 사랑에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분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얻게 하는 비결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 위하여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주님께서 주신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로서 온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행하는 것의 반대는 말하는 것이고, 진실함의 반대는 혀로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2:15-16)라고 했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필요를 보고도 말로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기도해 줄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단지 말 이상으로 희생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혀로 사랑하는 것은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의 반대입니다. 혀로 사랑하는 것은 신실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진실되게 사랑하는 것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말과 혀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그 분의 생명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행함과 진실된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담대함을 얻게 합니다.

 

3.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합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최고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이웃을 향한 사랑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이웃을 향한 사랑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절에서 주님의 계명을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인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우리의 바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주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신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에 대하여 주님은 포도 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구원받은 자는 주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포도 나무와 가지가 하나이듯이, 주님과 우리는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지고 포도 나무에 붙어 있으면 이 가지는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그 가지는 말라지고 농부가 불에 던져 사르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주님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의 비결은 우리가 계명을 지킴으로 그 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5:10). 우리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순종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줄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6).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내적으로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평안과 확신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서로 미워하면 성령이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에 불순종하여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분열하거나 다투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지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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