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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19) - 그리스도인의 확신(요일 5:13-21)

비전의 사람 2022. 8. 2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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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19) - 그리스도인의 확신(요일 5:13-21)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마무리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확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영생의 확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이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고 죽어봐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믿고 있지만, 자신이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는 항상 불안과 염려와 우울이 가득하기만 합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의심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거나, 복음의 진리와 능력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삶에서 누려야 할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2031절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구원을 얻는 길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에서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요한일서를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건강과 성장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때로는 구원을 받고도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라일은 믿음은 뿌리이고, 확신은 꽃이다라고 했습니다. 뿌리가 없이는 꽃이 없지만, 뿌리가 있지만 꽃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뿌리가 있으면 꽃이 있어야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뿌리에서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살아가는 꽃과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참된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생은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기에,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행위로는 절대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거듭나는 것이며, 거듭나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2. 기도 응답의 확신.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담대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담대한 믿음은 히브리서 4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픈 자를 고치셨고 상처받은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낙심한 자에게 용기를 주시고 배고픈 자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이러한 사역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육체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기에, 주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축복을 주심으로 도우시며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얻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기도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기도는 하나님께 특정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4: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응답받는 비결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의 뜻대로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않습니다. 해수욕장에 가서 아이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려고 하면 부모는 제지하고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아기가 비가 오는 날에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려고 하면 하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원하는 대로 주면 아기는 곧 아프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절제를 시킵니다. 그러나 부모의 능력 안에서 자녀의 유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기자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4: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를 위해서 먼저 자신을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분별하기 위하여 성경을 배우며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의와 진리를 가르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청년 형제 자매가 누군가와 결혼하려고 할 때에 믿지 않는 자라고 한다면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매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고후 6:14-18). 청년들이 믿는 자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성경은 말씀했기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결혼을 통하여 가정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운 영적인 진리를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함으로 응답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6-27).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약하여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한다며 기도 응답에 대한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담대한 것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구한 그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 분의 때에 구한 그것을 얻게 되는 은혜를 얻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이며 담대함입니다.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1540년에 미코니우스가 중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프레드릭이 곧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코니우스는 침대에 누워 루터에게 그동안 함께 했던 사역에 감사하는 글을 쓰며 자신은 곧 죽을 것을 알렸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루터는 친구에게 답장을 했습니다. “나는 교회를 개혁하는 이 일에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은 나에게 당신이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않게 하실 것이며, 당신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마틴 루터는 친구가 자신보다 오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간절한 기도의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미코니우스가 루터의 답장을 받을 때에, 그는 너무나 약해져서 말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받은지 며칠이 지나자 완전히 회복되었고, 마틴 루터의 사역을 6년간 도왔고 마틴 루터 보다 2달을 더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구 미코니우스를 위한 마틴 루터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마틴 루터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요한일서 516-17절에서 중보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구체적인 예를 설명합니다. 구체적인 예는 죄를 범하는 형제를 위해서 기도한ㄴ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 죄를 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9).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도 죄를 범하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은 구원받은 자는 습관적인 죄에 깊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죄를 범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도다“(요일 5:16-17).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심판하셔서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언급한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사도 요한은 구원받은 형제라도 하나님께서 육체적인 죽음으로 미리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죄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신 것은 성경에서 여러 군데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에서 다른 불을 가져다가 분향하다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아간은 여리고 성을 정복한 후에 하나님이 금하신 보물과 의복을 훔친 죄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아냐니아와 삽비라가 토지를 매각한 후에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회에 거짓말을 한 결과로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초대 교회는 영적으로 순결했기에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주의 만찬에 참석하는 자가 합당치 않게 참석함으로 인하여 아프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의 몸을 분면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29-30).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믿는 자의 어떠한 죄는 죽음에도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요일 5:16). 하나님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자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범하는 죄를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죄를 범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중보기도는 그가 회개하고 돌아와 생명을 얻는 은혜를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사도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른 제자가 주님을 버린다 하더라도, 자신은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셔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주님께서는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베드로를 공격하였으나,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회개한 후에 다시 형제를 세우는 사역을 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였으나 주님이 베드로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셨기에 베드로는 회개하고 다시 사역의 현장에 설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넘어지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한 것은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에 우리를 비난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동역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의 삶에도 그러한 죄가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발견되는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지체의 삶에서 죄가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면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는 무척이나 비판적이기도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하면 그 죄를 버리고 영적인 회복이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6: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범하는 형제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3. 승리의 확신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마무리 하면서 다시 세 가지의 확신에 대하여 가르치고 잇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는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기에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누구인가요?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기에 악한 자인 사탄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지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우리를 영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두 개의 영적 가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했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즉 사탄의 가족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족에 속했거나 사탄의 가족에 속한 가족에 속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영적인 나라의 근원은 세상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영적인 이해와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자는 영적인 이해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 5:20). 하나님께 속한 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을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우리가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참된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고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2, 3절에서 영생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시작하면서, 마무리도 예수님이 영생이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생이란 무엇인가요? 영생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즉 영생은 시간적인 영원한 시간을 의미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생을 얻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영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떠나 주님을 섬기며 우상에서 멀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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