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10) - 부르심대로 행하라 (고전 7장)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과 이혼 등 가정에서의 삶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가 변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에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견해가 존했습니다. 하나는 몸은 자유라는 방종의 개념과 다른 하나는 성은 부정이라는 금욕주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5-6장에서 성적인 방종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제시한 후에, 7장에서는 성을 부정시하는 금욕주의에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 도시로서 결혼과 이혼, 상속 등은 로마법 관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결혼은 법적 계약이 아니라, 사회적 동의와 관습적 합의에 의한 결합이었습니다. 특히 시민들의 결혼은 1년 이상 동거하면 자동적으로 결혼으로 간주하는 사실혼 형태였습니다. 중식층의 결혼은 시날이 신부를 값을 주고 사는 상호 계약 형태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노예나 해방 노인, 그리고 상인 등 중 하층이 많았기에 사실혼 형태의 결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로마 사회의 이혼은 법원의 소송이 필요없는 상호 합의 이혼이 기본이었습니다. 부부간에 “우리 결혼을 끝낸다”라고 선언하면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남편 뿐 아니라 아내도 일방적으로 이혼 통보가 가능했고, 이혼 후에 재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쪽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우상 숭배자일 때 ‘이혼해야 하나?’ 라는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사도 바울은 “아니 이혼하지 말라, 평화의 원리로 살아가라, 그러나 불신 배우작 떠나면 붙잡지 말라.”(고전 7:12-15)라고 했습니다.
2. 영적으로 깨끗하려면 결혼하지 말거나, 부부라도 성적인 관계를 피하자 라는 금욕주의가 교회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부부는 서로의 몸을 소유한다. 절제는 합의하에 잠시만 하라.(고전 7:3-5)라고 가르쳤습니다.
3. 당시 재혼은 흔했지만, 교회 안에서는 ”과연 믿는 자가 재혼해도 되는가?“라는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남편이 죽으면 자유다. 그러나 주 안에서 하라.“(고전 7:39)라고 답변했습니다.
고린도의 결혼은 계약처럼 시작해서 쉽게 이혼도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결혼 관습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지켜야 할 믿음의 원리를 고린도 교회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 아래에서 지켜야 할 결혼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그 부르심 안에서 행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으로서의 부르심을 지켜야 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3-4).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보낸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1-2).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것은 금욕주의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결혼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질서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은 자유이기에 음행을 할수 있다는 성적 방종과 성적인 관계 자체가 부정하다는 금욕 주의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의 거룩한 부르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고전 7:2-3).
사도 바울은 음행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남자는 아내를 두고, 여자는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는 서로를 향한 자기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부부의 친밀한 관계에서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무’라는 뜻은 빛, 채무라는 의미입니다. 즉 부부의 관계는 서로를 향하여 빚을 갚듯이 사랑과 헌신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더욱 구체적으로 배우자는 자기의 몸을 아내와 남편이 주장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의 부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결혼한 가정을 향한 주님의 뜻은 사랑으로 서로에게 헌신함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영과 혼, 몸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결혼의 개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 결혼은 서로를 위하여 사랑과 헌신으로 유익을 주는 거룩한 연합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아내와 남편으로서의 배우자인 것입니다.
결혼의 관계에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 외에는 서로 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분방하여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사단의 시험이 찾아오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한 몸으로서 영육간에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사람이 성인이 되어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를 잘 지켜가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는 관계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중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부부로서의 아름다운 관계를 지키는 비결은 부부로서의 친밀함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아가서에서 가르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아 2:16). 아가서의 사랑 고백은 서로를 향한 헌신의 표현입니다. 서로에게 속하였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며 섬김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아가서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아 8:6-7). 부부의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불 같이 일어나기에, 많은 물이나 홍수라도 그 불을 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부부의 관계를 유혹하여 넘어트릴 수 없는 비결은 바로 거룩한 사랑과 헌신의 불을 끄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제도 아래서 살아가는 부부는 가정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이 배우자에게 흘러가서 서로 연합하여 부족하고 연약함을 채울 뿐만 아니라, 서로를 통해서 즐거움과 유익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가정에서 화평으로의 부르심을 지켜야 합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
사도 바울은 결혼에 대하여 여러 상황 속에서 바른 분별력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핵심은 우리가 처한 상황의 논리에 따라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 안에서 행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먼저, 결혼하지 아니한 자와 과부들에게 이르는 교훈입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 7:8-9).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한 사역의 길을 위하여 독신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는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의 은사로서 주님을 선택했기에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들이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 교제하는 자매가 있으면 일찍 결혼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자녀들이 청년의 때에 절제하기가 어려운 것을 알고 결혼하여 부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찌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믿음 안에서의 부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결혼의 관계를 지켜야 합니다.
여자는 남편과 나뉘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만일 서로 나뉘었다면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서로 떠났다면 다시 화해하거나 혼자 지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결혼에 대하여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마 19: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로서 사람이 나누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의 결혼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 남은 사람들에게 이제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고전 7:12). 고린도 교회에는 부부 중의 한 명만 성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어떤 성도가 묻습니다. “이제 믿지 않는 배우자는 부정하니 떠나야 하나요?” 이때 사도 바울은 배우자를 떠나거나 버리지 말고 가정을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가정에서 믿음의 배우자의 역할은 바로 믿지 않는 자를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 7:13-16).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을 구원한다면 온 가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떠나기를 원하거든 갈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에 구속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남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믿음의 갈등으로 아내나 남편이 가정을 포기한다고 한다면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의 특별한 문화 속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믿지 아니하는 자들로 인하여 구속받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가능하면 가정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어머님들은 수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가정을 지킴으로 인하여 남편이나 자녀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역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으로 아내나 남편을 구원하는 기회를 삼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을 예로서 자신의 신분이나 위치를 바꾸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할례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 7:19). 우리는 주님이 부르신 곳에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이나 배경, 지역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르심 안에 머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이나 위기가 찾아올 때에 자리를 바꾸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결혼이나 독신, 배우자가 믿는 자이거나 불신자이든지 간에, 삶의 어떠한 형편에서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부르심 안에서, 나를 섬기라.” 우리가 삶의 환경을 바꾸기 보다는, 부르심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거룩한 삶의 여정인 것입니다.
3. 우리는 가정에서 사명으로의 부르심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 7:35).
사도 바울은 주님의 직접적인 계명은 없지만, 사도적인 지혜로 처녀와 같은 미혼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 보다도 사도 바울의 목회적인 권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25-26).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겪어야 할 사회의 불안과 다가올 박해의 어려움 속에서 지혜롭게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부르심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처녀에 관하여는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며, 이미 결혼한 사람은 언약을 지키고, 미혼이라면 조급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을 비하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지만, 결혼에는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선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성급한 변화보다는 현재의 부르심에서 주님을 잘 섬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시대가 곤란한 수록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신실하게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 매이지 말고 초월하여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라.”(고전 7:29-31)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때가 단축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상기시키며, 이 세상의 형적 즉 모양은 다 사라지기 때문에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칫 하면 아내 있는 자들이 아내를 무시하거나 장사하는 자가 장사를 소홀히 하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정이나 사업을 가볍게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 순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아내 있는 자가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것은 결혼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통로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하여 배우자를 주님을 섬기는 동역자로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는 자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거나 기쁜 자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슬픔이나 기쁜 감정에 매이지 말고 주님을 우선 순위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매매하는 자가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것은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이나 감정, 재물과 사회 활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없어질 것보다 더 큰 가치인 부르심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한 자와 미혼 모두가 마음이 나뉘이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지혜를 얻기를 권면합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고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고전 7:32-33).
사도 바울은 독신이든 결혼 한 자는 염려 없이 평안하게 주님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결혼한 자는 가정을 돌보기 위하여 세상 일의 염려가 커지다 보니 주님의 일에 소홀하기가 쉽지만, 독신자는 현실적인 책임이 적어 주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이 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느 쪽을 정죄하지 않고, 지혜롭고 자신의 상황에서 주님을 잘 섬길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올무를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주님을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36-40절은 결혼과 독신이 결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딸이 결혼할 때가 되어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여 혼자 지내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주변에서 빨리 결혼해 라고 재촉하지만, 자신은 기도하며 살펴보니 지금은 사명에 집중하는 게 좋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것이라면 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혼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본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39-40).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남편과 매여 있지만,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믿음의 사람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재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소천한 후에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의 형제를 만나 주 안에서 재혼하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매는 주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하기 위하여 혼자 지내기로 결정하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더 복된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신 곳에서 주님의 뜻을 행하며 섬기는 삶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주님을 섬김으로 주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주님의 부르심안에서 섬기는 기쁨이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이나 환경을 초월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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