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 - 복음을 변호하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바울은 갈리디아서를 통하여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서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에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성도들이 복음에서 떠나 유대인들이 전한 율법주의와 혼합된 거짓 복음을 전함으로 영적 혼돈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믿음으로 얻는 구원, 이신칭의에 대한 가르침을 다시 한번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사도 바울은 복음을 변호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변호하기 전에 자신의 사도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훼방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사도됨을 부인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
-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행 9:1-9).
2) 사도 바울은 참된 복음을 전했습니다. (4).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습니다. (4)
-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11-12).
-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다가 구원받은 후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그는 삼년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들을 만났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계시로부터 직접 복음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13-24).
-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기노라. ‘떠나는 것은’ 군인이 부대에서 이탈하는 행위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는 배교의 의미를 내포한다.
-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7-10)
3) 우리는 복음의 진리안에 거해야 한다. (2:5).
- 헬라인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 (3). 거짓 형제가 자유를 빼앗아 율법의 종으로 삼고자 했다.
- 게바가 외식함으로 복음의 진리대로 행하지 않았다.(11-13). 바울은 게바에게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고 책망하였다.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2:21).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1세기에 사도 바울은 거짓된 복음을 분별하여 복음의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변호하였듯이, 이 시대에 우리는 참된 복음을 분변하고 선포하며, 변호해야 한다. 이 시대의 거짓된 가치관과 종교로부터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지키며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복음과 율법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2:16).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은 것이다. (3:2).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성령을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를 성전되게 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2) 아브라함의 구원은 믿음으로 얻은 것이다. (3:6-9).
아브라함은 율법이 생기기 전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를 얻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며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갈 3:8).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기에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3)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아니하도다.” (갈 3:24-25).
몽학선생은 ‘파이다고고스’로서 ‘인도하는 자, 후견인, 가정 교사’ 의 뜻을 가지고 있다. 헬라와 로마 시대에는 몽학선생은 귀족에 속하는 어리아이들의 학교에 오고가는 일을 지켜 주며 예절을 가르치거나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교사는 아니고 종의 신분이었다. 몽학선생은 어린 아이들을 학교로 인도하여 교사에게 인도해 주면 자신의 역할을 마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16세가 되면 성인식을 하게 됨으로 자신의 역할이 완전히 마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율법을 몽학선생에 비유하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의 역할을 마치게 됨을 강조한 것이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아니하도다.” (갈 3:24-25).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3:26). 우리는 아들이게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보재 주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4) 은혜아래 있는 자들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죄와 율법의 종노릇한데서 자유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우리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음을 지적한다 (4:8). 즉,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들이 다시 스스로 종노릇하려고 하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4:9). 그들은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그들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유대인들의 절기를 지키려고 하였고, 그러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 4:10-11) 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구원받은 자녀들인 것이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으려는 종노릇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아들로서 주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제는 자유하는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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