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사도바울강해(4) - 바울의 격려자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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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강해(4) - 바울의 격려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4-25).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영적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의 랍비로서 무척이나 존경받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기독교에 반대하던 종교적인 지도자들이었으며, 그는 산헤들린 공회의 지도자들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바울에게 유대인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책임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인 그리스도인이 되자 이러한 모든 것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했을 뿐 아니라, 그는 바울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진정으로 믿음을 가졌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행위가 너무나 잔인했기에 때문에, 그들은 바울과 함께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계획을 만드셨습니다. 그가 아라비아에서 3년간을 지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은 바울을 위하여 한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는 시간을 내어 바울과 함께 하며 친구가 되었고, 더 나아가 사도들과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나바입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오자, 그는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전에, 바울이 구원받은 후에 자신이 부인하던 복음을 전하자 그의 동료들이 놀란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후에 더욱 성장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더욱 깊어졌고, 그는 신학적으로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믿고 전했습니다. 이제 그는 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행 9:22).  바울이 아라비아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은 은혜의 복음을 계시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 1:11-12).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몸이 되는 비밀을 배웠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엡 3:6). 그러므로, 바울은 시간을 보내면서 구약의 말씀에 비추어 진리를 조명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는 다소에서 부모로부터 구약을 배웠고,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구약의 진리들을 배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해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과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나타나시는 진리를 새롭게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운 구약의 진리들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발견하자, 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I.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거절을 당합니다.

 

1. 바울은 구약의 메시야를 이해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후에, 바울은 구약에서의 메시야의 예언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시는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약속된 메시야가 다스리기 위해서 오시기 전에 먼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기에, 다윗이 예언한 예언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시편 22편은 고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1)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 22:18).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시 44:9).

이사야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에서 기록된 메시야는 고통하는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바울은 이사야에서 증거된 메시야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메시야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참된 메시야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더욱 열정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바울이 다메섹으로 돌아오자, 그는 큰 열정과 신념, 그리고 통찰력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행 9:22).

 

2.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예언을 거절합니다.

 

바울이 전한 구약의 복음은 그의 동료들에게는 소동과 혼돈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받은 자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였지만, 메시야를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정죄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믿기를 거절했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지만 자신들의 죄를 더하기만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복음의 메시지가 거절당함을 볼 때에 놀랐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구원받기 전에는 복음을 거절했기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열정을 가지고 유대인들의 완고한 마음을 변화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1).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거부감을 가진 유대인들이 마침내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행 9:23). 바울이 복음으로 유대인들을 굴복시키자,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서 죽일수 있는 권한이 없었지만,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의 경험을 상사하게 설명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으로 벗어났노라.” (고후 11:32-33).  다메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을 잡으려고 했던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합법적으로 바울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3. 바울은 신실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바울에게는 다메섹에 신실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지는 않았지만, 바울의 메시지에 대하여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듯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미리 유대인의 계획을 알았고, 자신을 감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은 바울을 탈출시킬 계획을 만들어 바울이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행 9:23-25).

그의 제자들은 사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II. 바울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불신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행 9:26-29).

 

바울은 다메섹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 이후에, 즉시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3년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나왔던 그 길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는 길은 외롭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주요한 목적이 베드로를 만나기 위함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쌔.” (갈 1:18). 베드로는 사도들의 지도자였고 한때 바울이 미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을 나누며, 사도로서의 사명에 대하여 확인을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는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바울이 구원을 얻은 지 삼년이 지났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를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구원에 대하여 들었지만, 그들은 바울의 진정한 믿음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넣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을 승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는 아직도 감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것이며, 스데반의 친구들은 바울을 생각할 때에 쓴 뿌리가 강하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왔다고 고백하지만, 그들은 바울의 마음에 있는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마도 교회를 핍박하기 위한 다른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III. 바나바는 바울을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바울은 진정한 친구이자 동료 선교사가 될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바나바였습니다. 제자들이 바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믿기를 거부하자, 바나바는 바울을 위하여 변호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이 바울을 만나도록 주선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만나고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만나게 됩니다. (갈 1:18-19).  바나바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이 궁금해집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어떻게 만났나요? 왜 바나바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불신할 때에 바울을 믿어주었나요? 왜 바나바는 위험을 감수하려고 했을까요?”

 

바나바는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하는 시기에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밭과 집을 팔아 성도들의 필요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행 4:34-35). 이때 바나바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고, 그는 구브르라는 섬에서 온 자였습니다. 즉, 바나바는 구브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했거나, 아니면 사업을 위해서 여행을 하는 자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지, 요셉이라고 하는 바나바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수천명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그리고,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보고, 그는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에게 가져왔습니다. 바나바는 이와같이 섬기기를 기뻐하는 자였고, 사도들은 요셉의 이름을 바나바로 바꾸어 주였습니다. 즉, 바나바는 권위자라는 뜻인데, 이는 격려자의 아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그의 이름과 같이 격려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고 돕고자 하는 강한 열정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바울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게 됩니다. 아마도 그 전에는 두 사람이 만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울이 스데반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한 핍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만났을 때에, 바나바는 바울의 회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다마섹에서 일어난 일과 아라비아에서의 지냈던 일을 자세히 들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친구와 같은 우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 있다면, 바울이 바나바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생애에 바나바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 바나바는 바울을 위해서 변호합니다.

 

바울의 소명을 인식한 바나바는 바울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합니다. 비록 베드로와 야고보만을 만났지만, 바나바는 바울을 통해서 들은 간증들을 나누었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행 9:27).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바나바가 격려자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관대하게 나누는 자였으며, 그는 사람들을 믿는 자였습니다. 바나바는 시간을 내어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그리고 그들을 믿어 주었습니다.

 

바나바는 베드로와 야고보 앞에서 바울을 위해서 변호하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과거는 너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협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바울의 행동이 위장된 술수였다면, 그 책임을 바나바가 모두 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이러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바울의 간증을 신뢰했습니다.  마침내 바나바의 중재 노력은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생애에 기적을 베푸셨음을 믿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행 9:28). 베드로와 야고보가 바울을 신뢰했기에,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도록 허용를 해주었으며, 다른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바울이 짧은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지만, 그는 시간을 내어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에는 이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힘을 합했지만, 이제는 바울이 그들에게 전에 핍박하던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애쓰게 됩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행 9:29).

 

2. 바울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바울을 향한 적대심이 강하여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짧게 끝나게 됩니다. 그는 가이사랴를 지나 다소로 돌아갑니다. 바울은 다시 핍박과 고통을 경험한 것입니다. 바울의 위기에서,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유대인의 계략을 발견한후에, 그를 예루살렘에서 무사히 탈출하게 도와 줍니다. 그들도 바나바와 같이 위험을 감수하며 바울을 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제는 바울의 회심이 진실하며, 그는 변화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난 후에, 잠시동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핍박이 멈추게 되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III. 우리는 바울의 생애에서 바나바를 만나는 사건을 통해서 다음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우리는 인생에서 바나바와 같이 격려자가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돌아간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사람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을 믿어주며 다른 사람들과 다리를 놓아줄수 있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의 삶에도 저를 믿어주고 힘을 주셨던 목사님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그 분은 제가 미국에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고,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회를 통해서 매달 200 불씩 장학금을 전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를 다른 친교회 목사님들께 소개해 주심으로 좋은 목사님들과 좋은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한국에 왔을 때에 목포에 와서 사역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 분은 바로 박희원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은 항상 저를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늘 힘이 되어 주셨던 분이기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역의 현장에서 어려울 때에 저의 어려움을 아시고 믿어주시며 격려해주심으로 어려움을 이기도록 해주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제가 힘들때 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분은 정국연 목사님이십니다.  저의 옆에서 바나바와 같이 격려와 용기를 주신 목사님들로 인하여 저는 힘을 내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저의 삶에서 산소와 같이 어려울 때에 힘을 주고 용기를 주시며, 믿음으로 격려해 주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같이 격려자를 주심으로 삶의 현장에서 늘 이기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서를 기록하면서,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며 서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살전 5:11) 바나바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세울수 있는지를 언급합니다.

 

첫째, 우리는 물질적인 소유를 관대하게 나눔으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으로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격려자는 아내입니다. 제가 힘들때에 늘 옆에서 격려해주며 위로해주는 아내가 있기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교회의 지체들로 인하여 큰 격려를 받습니다. 제가 육신적으로 연약할 때에 찾아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실 때 큰 힘을 얻고 있으며,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며, 사역에 마음을 합하는 교회의 가족들은 저의 큰 위로와 격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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