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바울인물강해(6) - 편견을 버려라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13
반응형

바울인물강해(6) - 편견을 버려라

 

“이러므로 그리스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7).

 

우리가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옳지 않은 모습입니다. 서구에서는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고 테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사회적으로 공정하지 않게 대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누군가를 향하여 편견을 가지고 대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차별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유대인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편견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부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특정한 편견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못한 시대였기에,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꿈과 비전으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초대 교회의 잘못된 믿음을 고쳐가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갔던 것입니다.

 

1. 유대의 교회는 이방인을 향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는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큰 편견과 핍박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은 유대의 공동체를 통하여 일하시면서 유대 교회는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이렇게 평안하게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유대인의 교회였습니다. 심지어는 사도들 조차도 이방인들이 구원받을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유대교로 개종하여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상사명을 주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라고 하였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예수님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고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조차도 처음에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여 율법을 지켜야 유대인들과 같이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1) 베드로의 비전은 영적인 눈을 열게 했습니다.(행 10:9-23).

 

어느날 베드로가 욥바에 있었습니다. 그는 욥바에서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거했습니다 (행 9:43).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하여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아래에는 시몬의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몹시 배가 고픈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비전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행 10:11). 그 보자기 안에는 유대인들의 법에 의하여 부정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행 10:12). 그리고 큰 소리가 베드로에게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베드로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행 10:14).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번씩이나 잡아 먹으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음성을 듣습니다.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 10:15). 베드로는 이 비전을 보고 당황하며 무슨 뜻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시몬의 집에 세 명의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이때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이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 10:19-20).

 

베드로가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들에게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랴의 부유한 이방인인 고넬로의 집에서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높은 지위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경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구제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1-2). 이들은 베드로에게 그들의 상관인 고넬료도 비전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고넬료에게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시몬의 집에서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행 10:3-8).

 

2) 이방인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0:23-48)

 

베드로는 지붕에서 보았던 비전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다음날 가이사랴를 향하여 출발하여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일가들에 대하여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혼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긋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행 10:28). 베드로는 욥바의 비전 이전에는 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었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말하기 시작하면, 그는 새로운 통찰력으로 그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그는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전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서 새로운 영적 통찰력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주시는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는 중에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 임했던 성령이 동일하게 이방인에게 임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4-46). 그리고, 베드로는 가이사랴의 이방인들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마침내 가이사랴의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이방인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3) 고넬료의 구원으로 유대인들의 편견이 깨어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사도들과 형제들을 만나서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설명했습니다. 이미 유대인의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가서 먹은 것에 대하여 그를 비난했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행 11:2-3).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고넬료 가정이 구원받고 성령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설명하자, 그들의 편견과 비판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렸던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적극적인 감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단지 인정하는 분위기 였던 것입니다. 자신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방인들도 이제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이방인의 교회는 복음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은 사도행전 11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시작했을 때에,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메섹과 인근 여러 도시들로 떠났습니다. 이때 흩어진 유대인들은 흩어진 도시에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행 11:19).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이 아닌,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1) 안디옥에서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지만, 그 중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러한 편견을 깨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 11:20). 이들은 이방인들이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메시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에 안디옥은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로 영향력이 있던 큰 도시였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부도덕하고 타락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노력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21). 이러한 소식이 예루살렘으로 알려지기 까지는 수년이 걸렸습니다. 바울은 적어도 삼년을 아라비아에 있었고, 잠시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다시 다소에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이 구원받아 성령을 받는 역사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이와같이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이제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 새로운 성도들을 돕도록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행 11:22).

 

2)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보내어 안디옥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바나바는 헬라파 유대인이었기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 직분을 받아들였습니다. 바바나는 구브로에서 온 레위족이었으며, 그는 삶의 대부분을 이방인들과 함께 생활하였기에 이방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바나바를 보내어 결정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으나 바나바로 바꾸었습니다. 바나바는 ‘격려의 아들’ 이른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베풀기를 좋아하는 관대한 사람이었으며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하여, 그는 이방인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목격했습니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행 11:23).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남을 보고, 그들을 향하여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이와같이 편견이 없는 사람만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이와같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주님이 필요하며 주님과 같이 닮아가야 할 피조물로 본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고 있었으며,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파하기를 원하심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바나바가 하나님이 이방인들 가운데 행하시는 사역을 보고 크게 기뻐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4). 바나바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으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나바를 사용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3) 바나바는 바울과 협력함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우게 됩니다.

 

우리는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사역을 하면서 크게 부흥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바울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고 하는 간증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핍박이 일자 형제들이 그를 다소로 보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사역에 바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울을 찾기 위해서 다소에 가게 됩니다. 그는 다소에 가서 수소문 하면서 바울을 찾아다녔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행 11:25-26). 바나바는 다소에서 수소문을 하면서 바울을 찾으러 다녔고 마침내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바나바의 요청에 응하여 안디옥으로 가게 됩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참으로 고마운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간증을 믿어 주었고, 사도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본지 약 7년이 지나서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바울에게는 베드로에게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비전과 고넬료의 구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비전을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의 역사를 기대하며 그의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되자, 그는 열정으로 사역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들을 향하여 사역을 하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바울은 다소에서 혼자 짐을 지며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열정적인 사역을 하며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안디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칭찬이나 격려의 말이 아닌, 세상이 교회를 향한 조롱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서, 그들이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인이나 바나바인이라 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신앙도 안디옥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배우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도움의 손길을 보냅니다.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될 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선지자들이 안디옥에 찾아옵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미래를 예언할 수 잇는 사람들이엇습니다. 아가보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행 11:28). 그러자, 안디옥의 성도들은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의 성도들이 흉년으로 인하여 크게 어려움에 처할 것을 알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물질을 헌신했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행 11:29). 제자들은 자신의 능력대로 유대에 있는 형제들에게 필요를 보내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물질은 각자의 능력과 형편대로 헌신했지만, 그들은 모두가 동참을 한 것입니다.

 

유대를 위한 구제금을 위하여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30). 바나바와 바울이 도착했을 때에 유대의 교회들은 큰 감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이바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크게 주저하며 배척하는 분위기 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필요가 있을 때에 안디옥에서 보내준 물질의 봉사로 인하여 큰 겸손으로 사랑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3. 이 말씀을 통하여 배우는 영적인 통찰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리스도인이라도 편견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을 이룬 공동체는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복음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되자, 그 교회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율법을 지키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파는 이방인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헬라의 문화와 언어의 영향력에서 살다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유대인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두 그룹을 향하여 바울은 서로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7). 서로를 향하여 편견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교회는 흑인교회, 백인 교회, 그리고, 스페인 교회 등으로 나뉘어진 것들 보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서로를 향한 벽이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믿음의 차이도 있고, 인격적인 차이도 있으며, 배경의 차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과 성령으로 거듭나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편견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받아들였기에, 바울의 생애가 주님 앞에서 더욱 귀하게 쓰임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공동체는 더욱 아름답게 될 것이며 서로를 세움으로 더욱 귀하게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편견은 다른 죄와 같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편견의 유혹과 죄를 이기는 열쇠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서로를 향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편견을 갖는 것은 세상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서로를 향하여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7). 로마의 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서로를 향한 편견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습에서도 서로의 차이로 인하여 편견을 가지고 업신여기거나 판단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영적인 사람이나 육신적인 사람이나 모두가 서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안에서 하나됨으로 그 안에서 주님의 때에 변화되며 성숙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편견을 허무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보시면서 계획하시며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간의 벽을 이 순간을 위해서 베드로와 바울을 준비하셨습니다.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긴장이 아무리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계획을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구원을 통해서 베드로의 마음을 준비하셨고, 베드로의 간증은 예루살렘 교회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향한 구원의 문을 열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는 안디옥으로 파송하여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사역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재정적인 필요를 돕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의 교회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였습니다. 어쩌면 이방인 교회의 물질적인 후원을 통하여 유대인 교회가 가졌던 편견을 허무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서로의 편견을 허물도록 환경을 여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서로를 향한 편견을 버리고 서로를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