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십자가의 도를 따르자

비전의 사람 2015. 1. 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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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도를 따르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주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십자가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의미로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로마 시대에 십자가의 형벌은 저주의 상징이었고 극도로 혐오스러운 사형제도였습니다. 너무나 혐오스러운 사형 제도였기에 로마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형벌로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가 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각목과 같은 나무로 대각선으로 묶은 나무틀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못이 박히고 더 나아가 창으로 사형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을 생각합니다. 로마 시대에 속국으로 있던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무척이나 당황하고 화를 낼 것입니다. 십자가는 저주받은 사람이나 무서운 죄를 지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흉악한 죄수들이 피를 흘리며 신음 소리를 내다가 사람들의 조롱과 냉소를 받으며 죽어간 곳으로 기억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하신 이후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는데, 그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제자들을 변화시켰고, 사도 바울을 변화시켰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의 진젠도르프 백작은 영적인 지도자로서 100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며 크게 쓰임받았습니다. 그의 삶의 전환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하면서 부터입니다. 그가 어느날 미술 전시회에 들렀다가 스타인백이라는 사람이 그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머리에는 굵은 가시관을 쓰고, 양손과 양발, 머리와 옆구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맡에 나는 너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라는 구절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의 삶이 변화되는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너를 위해 몸버려 피 흘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깨닫고,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자신의 전 인생을 복음사역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그는 후에 모라비안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10년 동안 100 명의 선교사를 세계 각 곳으로 파송하는 큰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왜 십자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능력이 되었는가요?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메시지가 미련하게 보이고 조롱거리로 보이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는 다음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7).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형벌에서 죽으셔야 했는가요?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가 이유입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고통을 생각합니다. 그 분은 온 몸에 채찍질을 당하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는 못자국을 당하시고 허리에는 창에 찔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6시간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22:14-17). 예수님의 고통에 대하여 모든 뼈가 어그러지고 마음이 촛밀같이 녹으며, 채찍에 맞음으로 뼈를 셀수 있을정도로 상처가 깊고, 악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손과 발을 찌름으로 고통을 더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이유는 우리의 죄인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우리가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으로 감당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죄값을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죄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없으신 분으로 죄있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4).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곳입니다. 구약에서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칠함으로 인하여 백성들을 구원하게 됩니다.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피가 죄를 속죄하는 은혜의 통로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신 기쁜 소식이 복음인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거듭남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사건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바로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의 혈통인 옛 사람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함께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됨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새생명의 위대한 진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4).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생명 가운데서 태어나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5). 우리의 삶이 주님 안에서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가 함께 살아남으로 새생명을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우리가 죽고, 그분의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가 새생명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위대한 영적인 비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침례로 구원의 비밀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새생명을 얻는 구원을 상징하는 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출생했을 때에는 죄의 본성대로 행하며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어서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마음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하게 살고자 선택하면 선하게 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욕심대로 행하고자 선택하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살아갑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든지, 그의 삶의 중심은 하나님을 떠난 육신적이며 자아 중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자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거듭난 자로서 살아갑니다. 이제 새로운 삶이 미래에 펼쳐지게 됩니다. 그의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가 되시며, 그의 삶의 지침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그의 삶의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새생명을 얻은 자는 죄와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이 그를 속박할 수 없기에,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은혜를 입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세상의 쾌락을 따르던 수가성의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4).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마심으로 영혼의 목마름을 채움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넘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받게 되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충만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출생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의 은혜를 누리는 삶을 누리게 된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6:14).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요? 여러분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6: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동참하시며 그 분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그 분의 희생과 헌신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며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53:7). 주님께서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며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셨습니다. “...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26:39). 주님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버지의 뜻이며 십자가의 잔이 주님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임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주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주님의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수근거립니다. 누가 예수님에게 양식을 가져다 주었는가?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4:3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것이 그 분의 양식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6:38-39).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주님의 제자로서 따라야 할 제자의 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듯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십자가의 영성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6:24)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됨의 대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주님의 제자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A.W. 토저는 철저한 십자가라는 책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연약함의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특히 친인척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신앙적인 것들을 쉽게 양보해버리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토저는 말하기를 십자가는 검이기 때문에 때로는 친구들을, 때로는 가족을 갈라놓는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충성이 때로는 이 땅의 가족을 묶어주는 유대를 과감히 끊도록 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최우선의 충성심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에게 그리스도는 가보이나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희생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람들과 맺고 있는 우정이나 우리가 전에 충성했던 것들도 희생되어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 되신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대가였습니다. 죄가 요구하는 저주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감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그 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치루어할 대가입니다. 우리가 져야 할 자기 십자가는 주님께 순종하며 따르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대가인 것입니다. 그 대가가가 때로는 고난과 역경으로도 찾아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이기에 기쁨으로 여기게 됩니다. 저는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거부하면 주님을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십자가를 거부하게 되면 저는 세상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저에게는 불순종하는 길입니다. 성도님들에게 주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핍박을 견디며 주님을 섬겨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삶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세상의 삶이 분주하고 바쁘더라도 주말이면 교회에서 주일학교와 학생부를 섬기는 목자의 삶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주일에 성도를 섬기며, 예배에서 봉사하며 목자로서 섬기는 삶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과 섬김의 본질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때로는 가시밭 갈이며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쁨으로 십자가의 길로 가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그 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기에 그 삶이 너무나 소중하며 가치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보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며 면류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다면 더욱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영성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안에서 살아계시는 은혜의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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