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사는 삶(6) - 공동체
“...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19).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믿음이며 인품입니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친구,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전도서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0,12). 공동체는 넘어진 자를 세우며, 시련과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연합함으로 주님 안에서 자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19). 하나님의 은혜는 각 지체들이 주님 안에서 연합하여 영적인 공급을 받을 때에 임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머리 되신 주님을 통하여 공급받으며 지체들의 연합을 통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며 지켜주는 소중한 관계인 것입니다. 저희들이 테네시에서 유학시절 아시안 학생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본 선교사 출신이셨던 홀리츠 교수님 가정에서 한달에 한번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 다양한 아시아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시간을 통하여 함께 기도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학생은 스리랑카 출신이었는데 핍박을 피하여 호주에 이민가서 미국의 테네시 템플 신학교에 유학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어려웠던 상황들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들도 유학 시절에 함께하는 영적 공동체를 통하여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공동체로서 존재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두 세 사람이 모이면 기도하며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지파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영적 생활의 중심은 성전이었고, 성전을 중심으로 각 지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열두 제자를 세우셨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자 40일 후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심으로 각 지체들이 주님의 몸을 이루게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계 어디를 가든지 기독교의 힘은 교회를 통해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공동체를 세우는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체 의식 또는 공동체라는 표현을 통하여 교회안에서 주님의 몸을 함께 세워가는 우리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5).
우리의 공동체는 주님의 영적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님의 몸된 공동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공동체로서의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지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지체 의식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지체 의식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며, 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교회의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간증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절박한 사정을 돌보아주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예배도 크게 활력적이지 못했고, 목사님의 설교도 평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절망에 빠진 데보라 베이츠를 향하여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데보라의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집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는 부양해야 할 네 아이와 어렵게 지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추슬러야 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천장에서는 빗물이 떨어졌고 막힌 하수구에서는 구정물이 올라오고, 고물차는 폐차 직전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작은 교회에서 스무명의 사람들이 돕기 위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돌아가며 데보라의 아기들을 돌보았고, 집에 페인트 칠을 해 주었고, 지붕과 차를 수리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녀를 자신의 직장에 고용하여 새로운 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데보라는 적어도 5년간 성도들이 마련해 준 ‘목말’ 에 의지하여 걸어 다닌 것입니다.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데보라와 같은 여인들, 고양 인도에 두고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월급을 보내는 고달픈 여인, 음란물을 찍어 내는 인쇄소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잡지 못해 시름하는 남자, 근육병에 걸려 사람들의 등에 업혀서야 주의 만찬대 앞으로 나오는 안타까운 자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필리 얀시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면 누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라고 했습니다.
지체 의식은 서로를 향한 주님의 공동체로서의 의식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상처 받은 자의 아픔을 치유하며, 절망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2-3).
우리의 공동체는 주님의 몸으로서 견고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비결은 영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삶은 하나님을 경험하며 풍성한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겸손히 하는 것이 공동체를 깨지 않는 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참음으로 서로를 향하여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용납하는 것은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용서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삶은 서로를 향하여 오래 참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됨을 이루게 하는 분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은 성령 안에서 교회와 하나되며 지체들과 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교회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서 하나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히 임하는 교회는 주님안에서 하나되어 섬기는 교회인 것입니다. 저의 삶에서 하나됨을 이룰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암으로 살 소망을 잃게 되었을 때에, 시골의 작은 교회인 벧엘 교회의 지체들이 모여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짖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임하여 아버님의 암이 치료받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해몬드 교회는 영혼 구령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입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의 비전과 열정을 따라서 하나가 되어 영혼 구령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비전을 따라서 교회가 하나가 되어 영혼 구원의 사역에 힘쓰게 됨으로 100 만명 이상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로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잭 하일스 목사님이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시카고의 학생들을 교회로 전도하기 시작하자 교회가 더러워지고 시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교회의 중직자들이 찾아와 시카고 전도를 그만두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은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위협을 한 것입니다. 하일스 목사님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영혼 구원을 위하여 시카고의 어린 영혼들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큰 복을 주셔서 하일스 앤더슨 신학교를 세우고 목회자 학교를 시작하면서 큰 역사를 이루어 갔습니다.
교회가 하나됨을 이룰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소그룹인 목장으로 연합하고 하나됨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목장의 공동체가 하나가 되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안정감과 평안을 누리며 서로를 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4-25).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믿음으로 교회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지체 의식은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면서 더욱 강화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삶이란 함께 모이며 삶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에 사랑을 서로를 향하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공동체 가운데서 임재하시며 기뻐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목장의 공동체로 모여 주님의 말씀을 나누며 삶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경험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에 주님이 임재하시고, 말씀을 나눌 때에 우리를 세우시는 주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전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주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분주해도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기를 힘써야 하며, 주중에 모이는 가정의 목장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이 성장하는 비결은 주님의 몸된 교회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교회와 연합하는 과정은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저는 시골 교회에서 자라며 교회 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학생부 시절에는 주말이면 학생들과 만나 찬양을 하며 기쁨을 누렸고, 교회에서는 찬양대와 주일학교 교사, 학생부 교사를 하면서 교회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더욱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운동도 교회와 함께 하고, 취미 생활도 교회와 함께 하면서 지체들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19).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려 하고 절기에 매여 그리스도의 참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자들을 향하여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몸이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연합하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로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19).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된 영적인 공동체인 목장을 세워가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믿음의 공동체로서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공동체의 모습은 사도행전 2장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27).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배우고 서로 음식을 나누며 기도의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필요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게 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쓰게 됩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에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남으로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목장에도 이러한 모델을 가지고 모이는 것입니다. 주일에 선포된 말씀을 나누며 말씀의 교제를 이루어가고, 음식과 떡을 떼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더 나아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공동체를 통해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연합하며 말씀 중심으로 세워지는 온전한 믿음의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교회는 마가의 집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5).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옥에서 보내주십니다. 베드로가 마가의 집에 도착하자 그들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행 12:12). 공동체가 모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진정한 말씀과 기도의 공동체를 세울때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5. 우리는 섬기는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우리의 본성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어린이들이 자라가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아무리 착한 아기라도 엄마가 자고 있으니 내가 불편해도 울지 말아야지 하지 않습니다. 아기는 자신의 요구 사항을 울음을 통해서 표현하고, 아기의 어머니는 아기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어머님의 희생은 자발적이며 헌신적이며 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자라왔습니다. 어느 순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새로운 생명인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면서 변화하게 됩니다. 그 변화는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이 섬기는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다양한 인격과 성품, 다양한 나이와 믿음 등 나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필수적인 사항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게 됨으로 용서와 오래 참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고자 합니다. 즉, 섬기는 자로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섬기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어 종의 모습을 가지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낮추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7-8). 주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으며, 더 나아가 종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섬기시기 위하여 더 낮은 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섬기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죄의 대가로 희생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안에 생명으로 오셔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는 자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을 위하여 가정을 오픈하는 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준비하여 지체들을 섬기는 것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픈 지체를 위하여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도 섬기는 것입니다. 지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지갑을 열어 물질을 나누는 것도 섬기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모습이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이 먼저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며, 또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살아가는 희생적인 삶이 체질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주님이 세우시는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공동체를 소중히 여김으로 공동체를 세워가는 아름다운 지체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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