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사는 삶 (4) - 순종 (요 10:1-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생명은 영생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한 옛사람은 죽었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생명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며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기가 돌보는 런던의 고아들을 위해 300파운드를 모금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그 돈을 조지 뮬러 목사에게 갖다 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 주님, 저희 고아들도 이 돈이 필요한데요” 그러나 그 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 돈을 들고 죠지 뮬러 목사님에게 갔습니다. 뮬러 목사님은 무릅을 끓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조지, 하나님께서 내가 모금한 300파운드를 당신에게 주라고 해서 가져 왔소.” “스펄전 목사님, 저는 지금 바로 300파운드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사무실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편지가 하나 와 있었는데 300파운드 이상의 헌금이 들어있었습니다. “주여, 제 300파운드에 이자까지 보태서 주시는군요!” 그는 감격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주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스펄전 목사님과 같이 삶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순종이란 무엇인가요?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3).
주님께서는 자신의 양은 자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듣는다는 의미는 순종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의 뜻은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 속한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날마다 들으며, 그 분의 뜻을 따라 행하는 순종의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단지 일회적인 순종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양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순종이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그 분의 뜻을 날마다의 삶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시는 양으로 묘사합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시 95:7). 우리는 하나님이 돌보시는 양이기에 그 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므리바와 맛사의 날과 같이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므리바와 맛사는 출애굽기 17장과 민수기 20장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팍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이 찾아오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들은 원망하며 모세를 향하여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호렙산의 반석을 치게 하고 그곳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었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그 결과로 강팍한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며 강팍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광야에서 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에게 물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지만,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치면서 불순종하게 됩니다. 이곳을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이르시기를 너희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말찌어다 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시 95:8-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의 결과로 인하여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시 95:11) 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은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이,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의 실패는 불순종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향하여 이렇게 책망합니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삼상 15:22-23). 순종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나 수양의 기름을 드림보다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역하는 불순종은 술객을 행하는 무당의 죄와 같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우상숭배의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불순종의 죄를 크게 다루시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을 심각하게 보시고 그 죄에 대하여 대가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분이 돌보시는 양으로서 주님께 순종하는 자녀로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2. 순종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주님도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시고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서도 순종이 우리를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하는 능력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온전히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1-12).
우리가 주님께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분은 삯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삯군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입니다. 그 양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게 됩니다. 목자가 양무리를 버리고 떠나게 되자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는 것입니다. 이리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찾아와서 양들을 늑탈하고 헤치는 모습은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무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양들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 분은 자신의 양들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양들의 안전은 목자의 음성을 얼마나 잘 듣고 따르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양들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른 음성이 들릴 때에 이 음성이 목자이신 주님의 소리인지, 이리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면 즉각 반응함으로 그 분의 음성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했듯이, 우리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목숨까지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하며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주님의 양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2. 주님은 양들을 풍성함으로 인도하십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3).
주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그 분이 인도하실 때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십니다. 그러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가지만, 타인이 부르면 그 음성을 알지 못하기에 도리어 도망하게 됩니다. 양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있어서 보호하며 인도해야 합니다.
양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은 시력이 나쁩니다. 그래서 눈 앞에서 뭔가 보이고 움직이면 그걸 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양을 치는 개들이 뛰어다니면 목자인 줄 알고 쫓아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잘 속는다고 합니다. 야생 개들이 양들의 분별력이 약한줄 알고 양들을 좁은 골짜기로 몰아 넣은뒤에 사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잘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넘어지면 완전히 뒤집혀져서 눕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뒤집힌 양은 목자가 와서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뒤집혀 있던 양은 제대로 일으켜 세워줘도 중심을 못잡기 때문에, 목자는 양이 똑바로 걷도록 몇 초 동안 가만히 붙잡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양은 속도도 느려서 맹수가 가까이 오면 도망하지 못하고 잡아 먹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연약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일 이와같이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고 방향 감각을 잃고, 심지어는 타인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다 좌절하거나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목자 되셔서 인도하시는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3). 주님의 인도하심은 부족함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양의 필요를 채우도록 인도하시는 역할이 목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양의 안전한 선한 목자의 신실함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듯이, 우리 주님도 우리의 삶을 풍성함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꼴을 주셔서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도전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찾아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생명의 삶이 더욱 풍성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목자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그 분의 음성을 듣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그 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열매맺기를 기뻐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길이 순종의 길입니다. 순종의 길은 일회성이 아니라 습관적이며 지속적인 믿음의 자세입니다. 주님안에 거하는 모습도 순종의 삶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이 필요한 모든 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는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포도나무가 생명의 필요를 공급하려고 해도 가지가 붙어 있지 아니하면 생명에서 떨어지고 메말라 쓸모없게 됩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주님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라고 하셨습니다. 죽, 우리안에 주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되어지는 것이 주님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그 분의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이 죽고 주님 안에서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생명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 열매는 바로 성령의 열매로서 변화된 삶을 의미합니다. 새생명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순종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순종되어지도록 진리로 인도하시지만, 순종의 걸림돌이 바로 육신의 소욕인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안에 거하면서 육신이 가져다 주는 생각과 방식에 매여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의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육신이 연약함으로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닮아서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며 의와 거룩의 주님과 같은 삶을 추구하지만, 육신은 감정과 육체의 원하는 소욕을 주장하면서 부딪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생명의 능력안에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화와 같은 변화된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생명은 포도나무에 있듯이, 우리의 생명도 주님안에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듯이, 생명의 사람은 주님의 열매를 성령을 통하여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신의 성품이 나타나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4-7).
우리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그 분의 성품이 믿음과 덕, 지식, 절제와 인내, 그리고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는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게 됨으로 인하여 점점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6-17). 우리는 육체가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음행이나 분쟁과 시기나 분냄이 떠나가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같은 주님의 형상이 삶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의 음성을 듣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 10:4-5).
주님께 순종하는 삶의 원천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가지만,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에 도리어 도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과 타인의 음성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1)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에 그 음성을 듣고 믿는 자의 영혼을 구원하기도 하며, 갈급한 영혼을 회복하며 소생시키는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7-8).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주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소성케 되고 지혜를 얻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팎케 말라.” (히 4:7)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지혜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주님의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잠 1:22-30).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받지 아니하고 모든 책망을 업신여김으로 찾아오는 결과는 재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평안을 누리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지식과 지혜를 배우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보배로운 마음과 귀를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에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큐티와 제자훈련을 통하여 배우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하는 자는 타인이 주는 음성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타인이 주는 음성은 이단의 가르침이나 사탄과 세상이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음성을 자꾸 들리며 주님께로 나아와 그 분의 강력한 음성을 듣고 마음의 중심을 말씀안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2)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살아갑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며 인도하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우리가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사망에 이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다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성령이 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죄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회개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성령께서 순간적인 생각을 주셔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빌립이 성령에 이끌리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듯이,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기도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에 기쁨과 평안과 같은 감정적인 은혜를 주시기도 하시지만,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정결케 함으로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음성을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성령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과 함께 그 분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할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 3:10).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서 올바르게 세워질 때에, 주님은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탁월한 능력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주일이면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에 하늘의 영광이 임하게 되면서 듣는 자들에게 은혜와 지혜를 얻게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서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능력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더욱 사랑하며 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는다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며, 영적 지도력의 권위를 인정하며 순종함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의 복에 대하여 주님의 칭찬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의 집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의 발아래 앉아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님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주님께 요청합니다. “저의 동생에게 명하여 나를 도와주게 하소서.”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 10:42)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명의 양식을 얻는 것이고, 생명의 양식을 얻는 자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주시는 음성을 날마다 들으며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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