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연구

요한계시록 연구(2) - 서론

비전의 사람 2011. 10. 5. 12:25
반응형

 

요한계시록 연구(2) - 서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요한계시록의 서두에서 요한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였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욱 알아가고자 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다. (1:1-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교리와 교훈을 주지만,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 계시는 ‘숨은 것이 드러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보이시는 분이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속히 될 일을 요한에게 보이셨다 (1:1)

 

예수 그리스도는 속히 될 일을 보이셨다. 이 일을 반드시 일어날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구약에서의 예언은 대부분 성취되었고, 특히 다니엘의 예언서는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초림과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전후에 일어날 사건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지만, 미래에 대하여는 무지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여 노후대책을 하고 자녀의 미래에 대한 생각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주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보여주고 있다.

 

2)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을 증거하였다. (1:2)

 

요한이 본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이다.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말씀을 보고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그 환상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는가? 몰몬은 요셉 스미스가 몰몬경을 받았다고 하고, 이슬람은 코란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경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참된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큰 복을 누리는 것이다.

 

3) 예언의 말씀은 복의 통로이다. (1:3).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이 예언의 말씀이 복의 통로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복의 사람이 되는 비결은 세 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하여 복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고, 이해하며, 적용하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과 환경에 따라서 말씀을 왜곡하서는 안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우리에게 “때가 가까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서의 주체이시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을 편지로 일곱 교회에 편지하고 있다. 왜 일곱 교회일까? 그것은 바로 일곱 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는 형식적인 숫자이며 실제적으로는 당시의 모든 교회, 그리고 앞으로 세워질 모든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서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탁월성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의 수여자이다. (계 1:4-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4-5).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가지 근원으로 은혜를 주신다.. 첫째,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이는 출애굽기 3장 14절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고 하신 말에 해당된다. 하나니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미래에 다시 오실 분이신 것이다. 그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보좌 앞에 일곱 영” 은 천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성령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일곱영’이라 함은 일곱은 완전한 수를 의미하기에, 성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이러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성도에게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사망의 그늘아래서 고통받던 사람들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받았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평안이 넘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늘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다. (1:5).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셨다. ‘증인’은 순교자(martyr)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서 진리를 지키신 것을 의미한다. 그 분은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서 충실하셨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셨고,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진리에 충실하셨다. 주님은 충성된 증인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견디셨다. 그 분의 충성된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세상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초대 교회는 핍박의 시기를 만나고 있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핍박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와같이 핍박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오늘날까지 순수한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세상은 점점 강팍해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오직 복음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짐 엘리엇은 충성된 증인으로서 남미 에쿠아도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그의 아내가 충성스러운 증인으로서 그 부족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다. 위대한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었던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충성된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3)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셨다. (1:5).

 

골로새서 1장 18절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라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다. 먼저 나셨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2-23).

 

3) 예수 그리스도는 왕중의 왕이시다 (1:5).

 

예수 그리스도는 왕들의 머리가 되신다. 세상의 왕들이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특히 로마의 황제는 스스로를 신으로 높여 자신의 힘을 높이려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왕들의 머리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 분의 능력을 보이셨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다. 그리고, 그 분은 이 땅에 다시 오시며 이 땅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세상의 권세자에게 굴복한다. 세상의 시장이나 대통령, 군인은 장군에게 굴복한다. 그들의 높은 권세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살면서 위정자들을 존중하며 권세자들의 권위 아래서 살아가는 성경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최고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음으로 그 분에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삶의 주인이며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는 삶을 살아시도록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 죄를 사하셨다 (1:5).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해방하신 것은 자유하게 하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는 우리의 죄가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선한 행위나 노력이나 종교라 할지라도 우리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 오직 흠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며 그 분의 보배로운 보혈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나 예배에서 그 분을 높이는 것은,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의 희생으로 우리가 천국의 소망을 얻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셨다 (1:6).

 

요한계시록 5장 9-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계 5:9-10).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 즉, 하나님의 소유와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 나라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나라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신약에 이르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지킴으로 인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출 19:5-6).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예수의 피로 사신 백성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순종하며,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사장이 되셔서 중보하시며 섬기시듯이, 우리도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벧전 2:5).

 

6)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 (1: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재림은 이 세상의 역사를 마치고 새로운 나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7) 라고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분의 재림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재림을 보는 사람들은 통곡하게 됩니다. 왜 그들이 통곡하며 슬퍼하는가? 그들의 강팍한 마음으로 인한 심판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절한 진리가 참된 진리였고, 그들이 부인했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다시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애통하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 19:14-16).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는 소망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큰 심판의 재림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자이시다. 그 분은 알파와 오메가이며 처음과 나중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은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 분의 때에 이루어가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러한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 분의 하나님 되심과 중보자 되심과, 구속자로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을 찬양한다.

 

 

 

 

반응형

'요한계시록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3) - 사도요한의 환상(계 1:9-10)  (0) 2011.10.05
요한계시록(1) - 개론  (0) 201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