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연구

요한계시록(3) - 사도요한의 환상(계 1:9-10)

비전의 사람 2011. 10. 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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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3) - 사도요한의 환상 (계 1:9-10).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 1:9).

 

요한계시록 9-10절은 요한이 그리스도가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게 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된 상황인데, 그는 주의 날에 갑작스럽게 주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게 됩니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일곱 개의 금 촛대와 그들 가운데 서있는 인자같은 분을 보게 됩니다. 그 분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머리는 흰 양털 같고 눈은 불꽃 같은 분이십니다. 그는 인자의 발앞에 엎드려 죽은자 같이 되었으나, 그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합니다. 비전에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며,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와 교훈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1.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 1:9).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의 때에 밧모섬에 유배가 되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신격화하였고, 신격화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반역자로 몰아 거센 핍박을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였고, 그 결과로 밧모섬에 유배를 오게 되었습니다.

밧모섬은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이며, 에게 해의 한 섬으로서 현재는 팔모사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길이가 17km 이며, 너비는 10 km 의 작음 섬으로 탄광이 있었고, 당시 이곳에는 많은 범죄자들이 유배되어 왔으며 그 탄광에서 노역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에 대하여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고 설명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견디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에, 요한은 그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에 동참하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에 나이가 90을 넘은 고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역의 현장에서 은퇴하지 않고, 수십년간을 신앙을 지키면서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하여 요한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기록하는 것입니다.

 

1) 환난에 동참한다.

 

먼저는 환난입니다. 현대인들은 예수 안에서 복을 누리고자 합니다. 현대의 메시지는 신앙안에서 물질의 복을 강조한 나머지 환난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찾아왔던 사람들이 교회보다 세상이 주는 물질의 유익이 크기에, 세상으로 물질과 행복을 찾아 나서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통에 동참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요 환난인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한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주님을 섬기려면 환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하는 환난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감당하고 있는 고난과 환난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나라를 기다린다.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년왕국이며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주님이 약속하신 그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곧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그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교회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환난을 견디게 하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3) 인내하며 나아간다.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하여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다리는 동안에 요한은 인내하였던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도 인내하는 자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내입니다. 그들에게는 환난으로 인하여 형제들이 추방되거나 흩어지고 죽어가는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이 승리하는 비결은 주님이 세우시는 나라를 기대하며 인내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뜻을 행하기에 많은 어려움과 고난, 환난을 만나지 않는지요? 오늘 우리에게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전진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고난을 당하여 밧모섬에 유배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치있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9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밧모섬에 유배된 이유는, 그가 끊임없이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은 사도 요한을 유배하면, 확장되는 교회들의 세력이 줄어들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생존한 유일한 사도였던 요한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배당하여 아무일도 할 수 없게 하려는 저들의 뜻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밧모섬에 있는 그에게 비전을 보여주심으로 인하여 그것으로 교회를 더욱 강력하게 세우도록 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지난 2000 년 동안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소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요한과 같이 평생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실한 증인이셨고, 요한도 신실한 증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섬기는 종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요한은 성령에 감동함을 받은 자였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 1:10).

 

요한이 성령에 감동을 받은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1. 요한은 주의날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함을 받았습니다. 주의 날은 언제인가요? 이 날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 곧 안식후 첫날인 일요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하여 부활하신 날을 성별하여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향한 존귀와 영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백성들의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신실한 마음으로 나아가 그 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참된 예배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3-24).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유배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예배를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2.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입었습니다.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크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함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고 기록하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을 영어로는 “I was in the Spirit"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내가 성령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성령의 충만을 받고 기쁨이 가득한 상황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새로운 차원의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에 감동된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베드로가 욥바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행 10:10). 비몽사몽은 헬라어로 “ecstasis" 라는 것입니다. 이는 정신은 깨어 있으나,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으로 가득한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전에서 주의 환상을 경험합니다.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행 22:17).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기도중에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의 환상을 이야기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노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1-4). 사도 바울은 환상 속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황홀경(ecstasy)의 상태에 있었지만 자신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안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기록하였으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엎드렸습니다.

 

성령에 감동하여 입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었다고 하면서 입신이나 무분별한 치유사역등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머리를 치면 그 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자의식도 없이 그냥 누웠다가 일어나는 인위적인 모습을 합니다. 때로는 은사 집회에서 인위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끌어내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사람의 노력으로 인하여 성령이 임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성령 안에서 자신에 대한 의식이 있었고 그 안에서 환상을 보며 책으로 기록하였고 예배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은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성령안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하지 않으면 성령의 강한 충만함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를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준비해야 하며, 예배 전에 와서 기도를 마음을 녹여야 하며,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에 아멘으로 하답하며 반응해야 합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 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얻고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요한도 기도 중에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전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8).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인 것입니다. 향을 금 대접에 담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놓여 있는 모습은 우리의 기도가 결코 소홀이 되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함으로 늘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삶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삶이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계 1:11).

 

하나님은 요한에게 성령 안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요한은 책으로 기록하여 소아시아 교회에 전달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을 주신것은 요한을 통하여 소아시아 교회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이 찾아올 때에 그들이 붙잡을 수 있는 말씀을 주신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난 이단들에 대한 주의와 성도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하여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특히, 주님은 당시에 일곱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셨고,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이 일곱 교회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들이 받아야 할 메시지는 우리가 받아야 하며,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모두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의무적으로나 형식적이 아니라, 그 말씀이 살아서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회복을 주며 능력을 주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요? 우리는 예배 시간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말씀안에 붙들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께서 목사를 통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믿음으로 아멘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큐티의 삶을 통하여 말씀 안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여 그 말씀을 사랑하며 묵상함으로,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감동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삶에서 고난과 환난이 있고, 시험이 찾아오게 되면 더욱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은 더욱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크게 축복하며 승리하게 하며 능력있는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시 119:99).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나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 119:16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묵상하는 삶을 통하여 주시는 유익이 큽니다. 이 축복의책인 성경을 가까이 하며 나아가는 주의 성도가 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도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며, 고난 속에서 인내하는 성도가 되며, 예배와 기도의 삶을 통하여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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