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세우는 경건한 의사소통의 원리 (벧전 3:8-12).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 3:11).
오늘부터 추석 연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추석 연휴는 가족과의 만남으로 설렘과 기대가 있습니다. 온 국민이 자신들의 가족을 떠나 이동하는 명절이기에 소중한 날들입니다.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서 좋은 덕담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가족간의 불화가 생겨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들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이혼하는 숫자가 늘어나는 시기는 명절 후가 제일 많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 장만으로 바쁜데, 남편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심지어는 가족들 앞에서 무시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분노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갈등의 대부분은 올바른 대화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가정에서의 언어 소통은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경건한 소통으로 서로를 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서로를 향하여 경건한 소통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10절은 시편 34편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며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우리의 삶과 언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경건한 의사소통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경건한 소통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 3:11).
베드로전서 3장 11절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을 찾아야 하며 화평을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삶을 설명한 것이 베드로전서 3장 8절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같이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긍휼히 여기며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악에서 떠난 선을 구하며 화평을 찾는 자는 이러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것은 말보다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말과 행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행동이 말보다 다름 사람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화평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악에서 떠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악은 죄를 의미합니다. 즉, 육신의 정욕으로 나타나는 분노와 폭력, 성적인 부도덕, 그리고 욕심과 방탕함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갈 5:19-21)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은 악으로 가는 길입니다. 모든 악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육체의 정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악으로 행한다면 관계는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타락한 존재임으로 본성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악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떠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고에 대하여 자기를 부인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우리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날 때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악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과의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 14:19)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8)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평화의 삶을살아가는 것은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산상 수훈에서 믿는 자는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다면, 예배의 자리를 떠나 형제에게 가서 화목하고 돌아와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평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은 우리의 의사소통에서 필요한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이러한 삶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더욱 화평의 삶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의 헬라어 의미는 같은 마음과 태도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합니다. 만일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하다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두 사람은 갈등을 극복하고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조화를 이루는 사람은 자신의 강한 의지를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요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조화를 이루는 사람은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 자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받았듯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7).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 이외에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화합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배경과 기질, 그리고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이는 이기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 공감해야 합니다. 체휼하는 것은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함께 아파하며 고통하는 것입니다. 이는 같은 감정을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함께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아픔과 기쁨 가운데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롬 12:15).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파할 때에 우리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감정의 터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충분히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며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사랑을 받고 인정받는 느낌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같은 믿음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은 혈육으로도 가족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을 대하면서 형제 자매를 대하듯이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칫하면 교회의 지체들에게는 최선의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지만, 가정에서 가족들에게는 무관심으로 대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습관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을 대할 때에 믿음의 형제와 같이 존중과 사랑을 나타내어야 하며, 믿음의 지체들을 대할 때에 자신의 가족과 같이 깊은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형제의 사랑입니다.
넷째,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체휼하는 마음과 같은 감정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차가운 마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과 동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마음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다섯째,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는 것은 낮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마음이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은 겸손을 약한 모습으로 인식하지만,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을 닮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간주합니다. 마음을 높이는 것은 갈등의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같이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우리가 다른 사람과 조화로운 관계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낮추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도전을 받게 되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겸손으로 자라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2. 경건한 의사소통은 언어에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0).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고 날마다의 삶이 좋은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0) 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악한 말과 거짓된 말을 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좋은 관계를 파괴하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악한 말을 그쳐야 합니다.
악한 말을 그치는 것은 우리가 말로 공격당하거나 무시당했을지라도 보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7-28)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자존감이 있고 감정이 있어서 미워하거나 모욕하는 자를 사랑하며 축복하는 것은 주님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제자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둘째, 기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악한 말을 그칠 뿐만 아니라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궤휼은 미끼, 거짓, 기만을 뜻합니다. 이는 우리의 말에 진실을 왜곡하거나 속이거나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궤휼은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기만은 건강한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기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깨트리는 것이기에 결국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은 기만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입술에서 거짓을 버리고 항상 진실된 말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안에서 진실을 말할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진실은 때때로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진실이 없는 사랑은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과 진실의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축복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우리는 욕하는 자를 참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악으로 대하며 욕을 하는 자를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나하면, 우리는 축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누군가가 우리를 욕하고 악으로 대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셨던 축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땅히 나누어야 할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은 말은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축복의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은혜가 되며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격려의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는 자신의 가족이나 지체들에게 모욕을 하거나 속이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세우는 축복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가족이나 지체들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비판적이거나 조롱하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은 관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가 축복과 은혜가 넘친다면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선한 행동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벧전 3:12).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바라보시며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등을 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말과 행실로 의로운 삶을 사는 자를 기뻐하시며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믿음의 자녀라도 선한 말을 하며 선한 행실의 본을 보이는 자의 기도에 하나님은 더욱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화평의 삶이 될 것이며, 화평의 삶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소중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경건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경건한 관계는 악에서 떠나는 행실과 언어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순종하는 모든 자녀에게 임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향하시며 하나님의 귀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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