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근본주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을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1-12).
하나님은 종류대로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창 1:1). 씨는 히브리어로 זֶ֔רַע (제라) 로서 씨(seed) 또는 후손(offspring)을 의미합니다. 씨의 특징은 자신의 종을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씨는 그 종을 이루어 지속적으로 번식하게 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씨에는 그 생명의 모든 DNA 가 있어서 수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고 보전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대로 존재합니다.
1. 하나님은 믿음의 씨앗을 보존하십니다.
“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 21:13).
씨가 생물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도록 하나님은 육축의 다른 종자와 교합하지 말고,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는 “ ...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찌며.” (레 19:19)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순수함이 혼합되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짐승은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사자가 사자가 되어야 하며 코끼리가 코끼리로서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밭의 식물도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씨를 통하여 하나님의 피조물을 그 종류대로 순수하게 보존하시고 번성하게 하시듯이, 하나님은 믿음의 혈통을 그 씨를 통하여 순수하게 지켜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에 씨, 즉 후손에 대한 약속은 창세기 3장 15절에 시작됩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 3:15) 라고 하셨습니다. 여자에게 날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위하여 아담 이후로 셋, 그리고, 노아의 후손 중에서 셈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셈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민족의 아비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삭을 선택하셔서 약속의 씨앗이 되게 하셨습니다. “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 21:13). 하나님이 약속하신 씨는 이삭에게서 에서가 아닌 야곱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유다가 약속의 씨로서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거 너를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창 17:6). 하나님은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유다를 축복할 때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창 49:10) 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약속의 씨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인 다윗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는 영적인 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심으로 메시야가 왕으로오실 왕의 족보의 반열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의 씨를 통하여 영원히 보존될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계획을 도전하여 반역합니다. 솔로몬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어 지면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산당을 지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배교하게 합니다. 여로보암은 레위 지파가 아닌 자들로 제사장을 삼고 절기도 말씀과 비슷하게 하여 송아지에게 제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게 했습니다. “저가 또 사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ㄹ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서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 (열상 12:31-32).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고, 레위 지파가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씀에서 벗어나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북이스라엘의 민족이 이방인들과 혼합되게 하심으로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가 없었기에 그들의 혈통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다윗의 씨를 보전하며 메시야의 혈통이므로 하나님이 그 씨를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2. 하나님은 믿음의 교회를 보존하십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주님이 약속의 후손으로 오셔서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주신 것은 구원을 주시는 복음이었고, 복음 위에 세워지는 그 분의 몸인 교회였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진리가 복음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진리의 복음을 지키며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제자들을 모으셨고 침례를 주셨고 만찬을 거행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심으로 이미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면서 교회는 더욱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의 씨와 이삭의 씨가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에서 난 씨앗이며, 이삭은 약속으로 난 씨앗입니다.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로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하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5:23, 28-30). 하나님이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씨를 구분하듯이, 영적으로 보면 주님이 세운 교회와 육신으로 세운 교회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과 제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속죄의 죽음과 거룩을 상징하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나타내는 곳입니다. 사단은 카톨릭을 세워서 복음의 진리를 변개하였고 나중에는 성경의 진리를 따르는 믿음의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여로보암이 보통 사람으로 제사장으로 삼고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했듯이, 사단은 카톨릭을 성경의 진리와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행위를 통한 구원으로 변개했고, 물에 잠기는 침례를 물을 뿌리는 세례로 변개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을 주님의 살과 피가 되게하는 화체설로 변개했습니다. 교회가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개교회로 존재해야 하지만, 교단을 만들어 교황이 통치하는 인간 중심의 종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고별 설교를 하면서 흉악한 이리인 사단이 들어와서 거짓된 교리를 가르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까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29-30).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진리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들이 있어났습니다. 육신에서 난 종교의 특징은 참된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변질되었기에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리워졌기에 교회라는 곳의 의식이나 메시지는 예수님이 아닌 마리아 숭배나 행위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의식과 메시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으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침례 교회의 정신은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입니다. 성서침례교회의 믿음은 성경의 권위이기에 그 본질상 근본주의인 것입니다. 근본주의는 20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영적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에스라를 통하여 영적 부흥을 일으켜 하나님께로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미국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서게 한 영적 운동이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침례교도는 찰스 스펄전입니다. 스펄전은 위대한 설교가였지만 근본주의 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스펄전 목사님은 성경의 진리를 믿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스펄전이 목회하던 메트로폴리탄 터버너클은 영국 침례교 연맹(Baptist Union of England)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859년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면서 성경을 부인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여러 신학교와 교회들에서 자유주의 신학으로 이끄는 철학인 현대주의(modernism)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 스펄전은 신앙 선언문을 통하여 선언문을 받아들이는 교회나 개인만 침례교 연맹의 회원 자격을 유지해야 함을 촉구합니다. 스펄전은 “교리가 거짓되면 뒤이어 영적인 삶도 자연히 쇠퇴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무대를, 카드와 기도를, 춤과 성례를 통합하려 한다. 옛 믿음이 사라지고 복음을 향한 열정이 소멸될 때, 사람들이 쾌락의 길에서 뭔가 다른 것을 찾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스펄전은 진리에서 떠나는 자들과 얼마나 계속 연합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고 한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근본적인 가르침이 우리에게 소중하게 여기는 바와 정반대인 그 누구와도 연합할 수 없다.” 라고 하며 영국 침례교 연맹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복음이 강단에서 사라질 때 교회의 힘은 약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국과 유럽의 교회들이 쇠퇴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미국이 지난 100 년간 교회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선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본주의가 운동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스펄전은 근본주의 침례교회의 연맹을 새롭게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스펄전의 시대에는 자신의 사역과 교회가 큰 부흥이 있었지만, 분리주의를 통한 근본주의 운동이 없었기에 스펄전 시대 이후에는 위대한 설교자와 교회들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근본주의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의 교회와 신학교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입니다. 독일에서 유학을 다녀온 신학자들이 독일의 인본주의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영감과 그리스도의 신성 및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거듭남의 필요를 부인하게 됩니다. 오히려 사회 복음을 강조하며 교회의 사명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며 고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성경의 근본적인 신앙을 글로서 모아 책으로 펴냈습니다. 12권으로 된 이 책의 이름은 근본적인 즉, fundamental 이었습니다. 그리고, 커티스 리 로 (Curtis Lee Laws)가 1920년에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라고 사용하면서 근본주의 또는 근본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근본주의 운동의 시작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성경 컨퍼런스에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에 미국의 나이아가라에서 열린 성경 컨퍼런스를 통하여 성경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핵심 진리, 그리고 전천년설과 같은 예언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은 20세기 초부터 자유주의 신학교를 포기하고 신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진화론이 침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교수들을 해임하지 못하는 신학교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근본주의 신학교는 침례교 뿐만 아니라, 장례교에서도 세워지게 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학교가 무디 학교, 밥 존스이며 장로교 신학교로는 루이스 쉐이퍼의 달라스 신학교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에 흡수되면서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성서침례교회는 프랭크 노리스 목사님이 1938년에 세계침례친교회(World Baptist Fellowship)를 1938년에 조직하면서 남침례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전신으로 합니다. 그리고, 1950년에 G. B. 빅 박사와 150 여명의 목사님들이 성서침례교회 친교회를 시작하면서 1950년에 출범하게 됩니다. 성서침례친교회의 뿌리는 남침례회의 자유주의 영향력을 배격하면서 일어난 분리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 후에 성서침례친교회는 1960-80년 대 까지 미국 부흥을 주도하는 교회들로 굳게 세워지게 되며 그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근본주의 정신은 성경의 진리에 입각하여 거룩한 교회를 향한 열정입니다. 구약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이 구분되듯이, 하나님의 교회와 자유주의 교회들과의 연합을 거부하는 운동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너희는 저의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의 순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의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저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7-18). 모든 근본주의는 북침례교와 남침례교 등이 진리의 말씀에서 떠나면서 시작된 영적인 교회 운동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들이 성서침례신학교, 잭 하일스 하일스 앤더슨 대학, 리 로버슨의 테네시 템플 대학, 밥 존스가 밥 존스 대학을 설립하면서 근본주의 목회자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이 믿는 공통적인 믿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경은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며 오류나 거짓이 없는 진리임을 믿는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 몸의 부활과 승천, 재림을 믿는다.
3.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
4. 사람이 거할 영원한 처소는 천국이나 지옥이다.
5. 사람은 본질상 타락하였고 자유 의지로 구원받는다.
6.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성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7. 성경은 여성의 집사나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8. 방언이나 예언을 하는 오순절 운동은 성령의 역사를 모방하는 비성경적이다.
9. 성경은 예수님이 지역 교회를 세우셨고, 직분은 목사와 집사임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교회는 비성경적이라 믿는다.
10.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이나 교회와는 분리되어야 함을 믿는다.
11. 근본주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우는 락이나 랩과 같은 세속적인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12. 근본주의는 환란전 휴거와 전천년설이 성경적인 종말론임을 믿는다.
한국의 성서침례교회는 1953년에 아이크 포스터 선교사님에 의하여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된 이후로 65년간 한국의 근본주의 운동을 지켜온 이 시대의 씨앗입니다. 성경적인 복음과 진리, 그리고 세례가 아닌 침례, 교단이 아닌 독립교회, 성경적인 직분과 의식 등은 주님이 가르치신 교회로서 순수하게 세워지고 있는 요인입니다. 믿음의 길로 걸어오던 성서침례교회가 지난 10년 전에 분열이 된 직접적인 원인은 여자 집사 안수 문제가 원인이었고, 그 외에도 은사주의 침투와 근본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복음주의의 영향력으로 들어간 것도 문제의 뿌리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제언입니다.
4. 성서침례교회는 근본주의 신앙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근본주의 믿음으로서 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지키며 전수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 그리고 진리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교리입니다. 카톨릭은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와 같이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카톨릭에서 개혁된 교회들도 온전한 복음을 회복하지 못했고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율법과 복음이 혼합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를 지켜가셨듯이, 하나님은 이 시대에 근본주의 성서침례교회들을 통하여 복음과 진리를 지켜가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듣기 좋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은혜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하는 침례 의식과 주의 만찬, 그리고 만인 제사장직, 교단에 속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지역 교회의 자치운영. 그리고, 정치와 교회의 분리 등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근본주의는 성경적인 분리입니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차이는 분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분리되어 세속화되지 않고 개인의 경건과 거룩을 지켜갑니다. 그리고, 교회적인 분리는 다른 교파와의 영적인 분리를 통하여 성서침례교회의 순수한 믿음이 타협되거나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타협이 허용되는 시대입니다. 절대적인 가치가 실종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감정입니다. 교회 내에도 타협이 허용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믿음을 지켜감으로 다음 세대에 성경적인 근본주의의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지속적으로 구령의 열정을 간직해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근본주의의 특징은 복음의 열정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근본주의 운동에서 성서침례친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혼을 전도하는 구령의 열정이 뜨거운 배경이 있었습니다. 특히 프랭크 노리스 목사님은 영혼을 구령하는 사역에 탁월했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의 구령의 열정에 힘입서 G.B. 빅 목사님이 디트로이트에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고, 잭 하일스 목사님은 해몬드에서 구령의 열정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리 로버슨 목사님은 테네시의 차나누가에서 구령 사역으로 교회를 성장시켰고 크리스쳔 대학과 신학교 사역으로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구령 사역의 열매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구령 사역의 통로가 필요합니다. 개 교회에서 다양한 사역을 연구해서 이 시대에 맞는 복음 전도의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고, 이 시대에 친교회 교회들이 어떻게 구령의 열정으로 뜨거워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관계 전도가 무시되어지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의 성서침례교회에 주신 사명은 순수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 7:10).
근본주의의 강점은 신학적으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나 비성경적인 교리에 대하여 잘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가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쳤던 것럼, 성경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설교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변하여 하나님이 인정하는 일군이 되도록 성경을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2Ti 2:15 KJV).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몰라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경을 공부해서 인정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 오경과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그리고,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서 메시야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성취되어야 할 것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성경으로 메시야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며 가르치셨듯이, 우리도 성경을 깊이 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지형적으로 문화적으로 연구하여 오묘하고 깊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서침례교회의 강점은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의 말씀이 깊은 연구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같은 말씀만 반복해서 들으므로 교회의 믿음도 정체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깊은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 가르치며 선포하는 사역은 교회가 더욱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할 것입니다.
4) 친교회는 복음의 순수함같이 순수한 사랑과 신뢰로 세워져야 합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7).
근본주의의 정신은 순수함입니다. 복음이 순수하고 진리가 순수합니다. 이와같이 순결한 진리를 지키는 자들의 마음과 자세도 순수해야 됩니다. 이는 우리의 모임 가운데서도 순수한 사랑과 존중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희 친교회의 회원들은 근본주의 신앙으로 기존의 친교회에서 함께 분리된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모든 동역자 목사님들을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친교회를 이끌어가신 앞서가신 믿음의 선배님들을 존중해 드리며 아껴 드려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근본주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아픔 가운데 믿음의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배 목사님 들을 따라 가는 후배 목사님들을 향해서도 사랑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담임 목사님이나 가까운 분들이 이 길을 가셨기에 좁은 길로 들어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근본주의의 길은 혼자서는 갈 수 없습니다. 혼자의 길은 혼자만 갈 수 있으며 다음 세대에는 그 신앙이 유지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이 근본주의의 신앙으로 연합하면 더욱 힘을 얻어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주도하는 친교회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가 이끄는 친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단이 아닌 친교회이기에 교단적인 요소가 앞서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개교회 주의란 친교회의 목회자들이 모두가 존중받으며 서로가 믿음안에서 협력하는 것입니다. 저희 친교회는 개교회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선교를 위해 협력하며 서로를 격려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한국성서침례목회자 친교회는 근본주의 교회와 목회자들의 친교회로서 진리 안에서 연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씨앗과 후손의 영적 원리 (0) | 2019.03.30 |
---|---|
성경과 근본주의의 역사 도표 (0) | 2019.03.23 |
성경은 예언의 성취이다. (0) | 2019.03.11 |
관계를 세우는 경건한 의사소통의 원리 (벧전 3:8-12) (0) | 2018.09.22 |
하나님의 나라 (0) | 2018.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