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4) -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한 마디로 전쟁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며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씨름해야 하며, 더 나아가 지지 않으려고 발버퉁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씨름장에서 상대와 겨루어 이기기 위하여 온 땀을 흘리며 씨름하는 씨름 선수와 같이 항상 땀을 흘리며 씨름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많은 싸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씨름에서부터 아브라함과 메소포타미아 왕들과의 전쟁,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예수님과 사탄과의 영적 싸움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싸움과 전쟁은 대부분 영적 전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싸움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 10:4). 우리의 싸움은 육체와 혈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 안에 있는 견고한 진을 파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진이란 자신의 육신 안에 있는 죄의 견고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싸울 것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려지도록 순종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항상 씨름하며 살아가는 영적 전쟁의 현장에 놓여 있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전쟁을 많이 치룬 용사였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는데 전쟁의 승리 비결은 그의 고백에 있었습니다.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7).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21:31).
창세기 32장은 야곱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야곱이 씨름해야 했던 영적 싸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승리를 통하여 배우는 영적 교훈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인생의 시련은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
야곱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에서가 가장 연약할 때에 팥죽으로 장자권을 샀습니다. 장자권은 부모의 유산을 두 배로 받는 권리이기에 야곱은 장자권에 대한 욕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 후에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자, 리브가와 공모하여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받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자 하란으로 도망하여 거기서 20년간 거주하며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습니다. 그곳에서 라반에 속기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오게 되었고 얍복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때 20년 전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에서가 400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자신을 만나러 오는 모습에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에서가 자신을 공격하면 도망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먼저는 형 에서를 위하여 수백 마리의 짐승을 예물로 준비했고, 자신의 종들과 소유를 떼로 나누어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는 피하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각각 떼를 종들에 맡기고 자신보다 앞서 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종들과 가축들을 먼저 보내고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찾아와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
하나님은 야곱의 형편을 아시고 야곱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이 홀로 고통하고 있을 때에 야곱은 두려움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형이 400 명을 데리고 찾아올 때에 야곱은 자신의 소유와 종들, 심지어는 아내들과 12명의 자녀들,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 모두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소유와 종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보냈지만 그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반의 집에서 나와 이제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인데, 20년 전에 분노하며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에서가 400 명의 사람들과 찾아오는 것입니다. 야곱은 홀로 앉아 두려움을 마주하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야곱은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창 32:11) 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기도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기대와는 다르게 겨루는 자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 높이에 맞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장막에 거할 때에 하나님은 그곳을 지나가는 자(여행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두 명의 천사와 그곳을 지나가자 자신의 장막으로 모시고와 음식을 요리하여 섬겼습니다. 즉, 부지중에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앞에 선 여호수아에게는 하나님의 군대 장관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는 씨름하는 자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그동안 사람들과 씨름하며 삶을 살아왔습니다. 야곱은 에서와 씨름하였고, 이삭과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라반과 씨름하며 지내왔습니다. 심지어 야곱은 2명의 아내들과 2명의 여종들로 낳은 자식들로 인하여 가족안에서도 씨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만큰 강한 체력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향하여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야곱은 항상 씨름하는 자로 살았고 이겨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항상 이기는 듯 했습니다. 하란에서 원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었고 더 나아가 3명의 여인을 얻어 자녀들도 많이 낳았습니다. 라반에서 속은 것이 억울하여 양들과 염소를 자신의 소유로 하기 위하여 아롱진 것과 검은 것과 점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한 후부터 그의 소유가 라반의 소유를 능가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소유에서 에서에게 줄 예물을 위하여 짐승 600 마리를 선택할 만큼 많은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때 에서가 400 명을 데리고 오는 모습에서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 피할 길을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꾀로 에서의 분을 누그러뜨리려 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향한 다른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삶에 가장 익숙했던 싸움하는 자로서 나타나셔서 야곱과 씨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하기 위하여 대며해야 할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승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 32:28).
야곱이 얍복강 가에 홀로 남아 있자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야곱과 씨름하는데 날이 새도록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창 32:25). 야곱은 힘이 좋은 사람이라 하란에서 여러 목자들이 옮겨야 할 우물의 돌을라헬을 위하여 혼자 옮겼습니다. 그는 아직 힘이 좋은 사람이라 그 사람과 씨름하며 지지 않았습니다. 즉, 자신의 육신의 힘으로 그 사람을 제압하는 모습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니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날이 새면서 그 사람이 가기를 청합니다. 그때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 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건드리자 그의 뼈가 환골되는 것을 보면서 강한 자임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자신을 축복하기를 간청합니다. 자신을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야곱이 구했던 축복은 무엇인가요? 야곱은 400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에서가 자신보다 강한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에서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에서와 이삭과 씨름해서 이겼고, 라반과 씨름하여 자신이 원하는 아내와 더불어 많은 재산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싸움에는 자신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400 명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 앞에서 두려움이 생겼던 것입니다. 어떠한 꾀와 속임수로도 에서를 이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이기기를 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환도뼈가 위골되어 더욱 연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자신을 축복하여 에서로부터 건짐을 받기를 간청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묻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창 32:27). 하나님은 야곱을 향하여 ‘너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와 관계가 깊습니다. 다윗을 무시했던 나발에 대하여 아비가일이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삼상 25:25). 나발은 미련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이름이 말하듯이 나발은 미련한 자로서 다윗에게 미련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름을 물어보신 것은 그의 이름안에 야곱의 모습이 배여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는 자로서 다른 사람의 자리를 탈취하여 차지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속임과 거짓으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탈취하는 자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는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는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번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창 27:36). 에서는 속여서 빼앗는 자의 의미와 같이 자신의 장자권과 복을 빼앗아가는 모습에서 그의 이름이 참 잘 맞는다고 조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질문하시면서 그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인에게는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면서 자신이 행한 죄를 대면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을 향해서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얻으려 했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면서 지팡이를 짚어야 할 만큼 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 32:28). 야곱은 야곱이 다스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지혜와 꾀로 살아가는 인생으로 육신을 의존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지혜와 꾀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사람이 하나님과 천사들이었던 것처럼,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환도뼈를 치며 그 뼈가 위골이 되어 저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신의 힘과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모습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이기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이 다스리다’ 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삶에서 다스리는 자로 세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과 밧단 아람에서 자신의 꾀로 씨름하여 승리하였지만, 그 결과는 상황이 항상 불행하게 흘러갔습니다. 이삭에게 축복을 받았지만 에서와 원수가 되어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고생해야 했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하여 허락을 받았지만 라반에게 속아 14년간 무보수로 일해야 했습니다. 이제 가나안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에서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강함을 깨트리셔서 약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야곱의 삶을 다스리시며 야곱의 힘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야곱이 자신이 씨름한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생명을 보전한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 32:29). 그는 브니엘을 지날 때에 환도뼈가 위골되어 저는 자가 되었습니다. 육체는 약해졌지만 그의 삶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가 되어 가장 강한 자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욕심과 속임수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인생이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이제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에서를 두려워했던 존재에서 에서를 향하여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아내와 자녀들 앞으로 나아가 에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교만한 자에서 겸손한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 앞에서 일곱번 땅에 굽혀 절하는 예의를 표했습니다. 야곱은 그 집의 장자는 에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에서의 권위를 존중합니다. 야곱은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다스리는 인생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출발했습니다.
3. 하나님은 자녀에게 이김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하나님은 야곱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승리를 주십니다. 야곱의 승리는 에서에 대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승리는 육적인 삶으로부터의 승리였습니다. 야곱의 진정한 승리는 육신적으로 이기려는 욕심많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보다 강하시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삶으로 변화로 승리한 것입니다.
성경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김은 우리의 육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육체의 승리가 아닙니다. 육체가 원하는 소욕을 얻는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소욕이 깨어지고 사라짐으로 얻는 영적인 승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하심에 있어서 우리의 자아와 육체의 소욕은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심이 버려질 때에 하나님이 일하시되 더욱 큰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연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9-10). 우리가 약할 때에 하나님은 능력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즉,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 하나님이 다스리는 삶이 되었듯이, 우리가 약하여져서 더 이상 육신을 의지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과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를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육체가 약해지기 위하여 핍박을 허용하시고 조롱과 멸시를 허용하시며 배신과 상처를 허용하십니다. 때로는 육체의 질병까지도 허락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며 우리를 깨트리시고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은혜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에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원수는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겨야 할 원수는 사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겨야 할 원수는 우리 육체 안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는 육체의 생각과 정욕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4-5).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얻기 위하여 영과 원수가 되는 육체의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씨름하는 문제안에 우리가 다스려야 할 내면의 야곱이 숨어 있습니다. 이제 옛 사람인 야곱의 삶을 철저하게 버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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