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2) - “너는 복을 받은 자니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창 26:29).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애굽에서 데려온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다리다가 1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사라가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후사를 잇게 했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자녀가 없으면 몸종을 통하여 후사를 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에게서 난 이스마일이 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자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이름이 이삭입니다. 즉,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아들로서 영적인 혈통을 잇는 자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마엘과 이삭이 주는 영적 의미를 설명합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2-23). 종에게서 난 자는 육체를 따라 났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는 종으로부터 난 자녀로서 합법적인 아들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유하는 여자인 아내에게서 난 아들이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아들입니다. 로마서는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8) 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로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로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난 자입니다. 아브라함이 100 세의 나이에 난 아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난 아들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약속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즉,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8)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스마엘과 같이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라 이삭과 같이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서 약속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복받기 위해 노력하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복인 것입니다.
이삭이 흉년이 들자 블레셋 땅의 그랄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하라고 하시자, 이삭은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거하게 됩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해 농사에서 100 배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 26:12-13).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삭을 지켜본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해하지 말고 서로 평안히 지내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랄 왕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향하여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9) 라고 고백합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블레셋 왕이 이삭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니라.’ 라는 고백은 이삭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로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 믿음의 자녀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면서 누리는 하나님의 복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담대함과 확신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복에 대한 확신을 갖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자녀로서 은혜아래 살아갑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2).
우리는 이스마엘과 같이 육체로 난 자의 삶을 살아가다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는 자녀도 주시고 나라도 주셨지만,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영적 후손으로 누리는 복을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죽은 몸과 같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히 11:12) 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도 소중한 독자였지만, 하나님께도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소중한 영적 후손이었습니다. 이삭은 약속으로 낳은 자녀였기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서 할 일은 순종이었습니다. 이삭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렸고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향하여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인가요? 우리의 존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new life)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새생명으로 태어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 (롬 5: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복을 받았듯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자녀이기에 얻는 풍성한 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특별합니다. 종은 주인과의 관계에서 의무와 형벌이라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주인이 대가를 지불하고 샀기에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종속족인 관계의 측면이 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자신의 의무만을 다할 뿐이지 주인과 특별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종은 주인과 같은 식탁에 앉지 못하며 주인의 유산에 동참하지 못합니다. 종은 자신의 마음을 주인에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마음의 힘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웃음이었으며 행복이었습니다. 이삭에게도 아브라함은 소중한 아버지로서 자신을 맡길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재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의 뜻에도 순종하여 아버지께 온전히 자신을 의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우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대우하지 않으시고 아들로 대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셨거늘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모든 것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자녀들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감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환경 가운데서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힘들어 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2. 우리는 자녀로서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은 승리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 (창 12:3).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으로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든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롯이 메소포타미아의 엘람과 시날의 네 왕들에게 잡혀갔을 때에 자신의 사병 318명을 이끌어 그들을 물리칩니다. 소돔과 고모라 등 다섯 왕들은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강한 왕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믿음으로 승리한 것과 같이 아브라함은 네 왕들과 전쟁해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잠언 기자는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21:31) 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순종하는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이기게 하였고 승리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이후의 왕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우상을 숭배하자 전쟁에서 패배하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원천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전쟁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경제적인 전쟁의 현장에서 땀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의 세상은 마음의 고통이 찾아오고 건강의 위협을 만나 좌절하곤 합니다. 지난 주에 저는 암으로 투병하시는 두 분의 사모님을 뵙고 기도해 드리고 왔습니다. 평생 주님을 섬기셨지만 찾아오는 암투병으로 인하여 절망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평안으로 지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인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기는 것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예수님과의 영적 싸움에서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승리하셔서 사탄의 권세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안에 거함으로 인하여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넘어지게 하거나 무너지게 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이 우리를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과 위험을 만나도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주님과 같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는 시련에서도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6). 우리가 주를 위하여 종일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다 할지라도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은 우리의 힘이나 지혜가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승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요? 우리에게 승리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자아 만족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승리의 의미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삶의 이유는 하나님을 알아가며 그 분의 뜻을 삶에서 성취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의 모습을 아들을 형상을 닮아가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승리란 어떠한 환경에서도 믿음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위대하셔서 사탄의 어떠한 공격에도 이기게 하는 힘을 주십니다. 요한1서는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사탄보다 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승리를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세상을 이기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항상 좌절하게 하는 이유들을 만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감으로 인하여 시련과 고통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녀를 잃고 극심한 질병으로 고통하여 좌절해야 했습니다. 욥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다가왔고 믿음의 뿌리를 흔들수 있는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자신의 믿음이 더욱 정금같이 빚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욥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승리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추격으로 인하여 광야에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도 떠나야 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 광야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도망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인생은 광야에서 마치지 않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새로운 인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랑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승리가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3. 우리는 끊을 수 없는 사랑안에 거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롬 8:39).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유대감은 부모와 자녀간의 유대감일 것입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떠한 것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사랑입니다. 자녀들이 태어나서 잘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며 평안과 안식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 찾아와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 같은 그 글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극도의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며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우리의 삶이 힘들고 지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심을 증거합니다.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어 계심을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더욱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우리는 복을 받은 자로 볼 수 있도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며 감사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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