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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15) -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출 15-18장)

비전의 사람 2019. 6. 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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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15) -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15-18)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13:21-22).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15:13-14)을 신실하게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장정이 육십만으로서 전체적으로 2백만 이상의 인구로 추정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12:37). 야곱이 칠십명의 자손들과 애굽에 들어간지 사백삼십년이 지난 후에 이백만 이상의 민족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군대로 애굽에서 나왔다 (12:40-41). 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증거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2:13).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애굽에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였듯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의 속박아래 있던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블레셋의 해안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해안길은 무역상들이나 군사도로로 사용하는 주요 도로였지만 그곳에는 애굽의 군사 요새가 위치해 있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길로 인도하셨다. 모세는 요셉이 명한 유언에 따라서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출애굽하였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14:19).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요셉은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약속의 땅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고 항상 백성 앞을 떠나지 않으셨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13:21).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이었다.

 

1. 하나님은 홍해의 기적으로 주 여호와이심을 보이셨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더니.” (14:18).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자 마음을 바꾸어 군대를 동원하여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팎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14:4). 바로는 당시 세계 최대 군사대국이었다. 바로는 자신의 군대를 동원할 때에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사용하였다. 바로의 강팎함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다. 바로가 추격하는 것을 본 이스라엘은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원망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불평하였다.

 

홍해는 히브리 원어로는 갈대바다(sea of reed)이다. 이는 파피루스와 같은 갈대가 있는 바다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는 홍해에 막히고 뒤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오자 두려워하며 모세를 따른 것을 후회했던 것이다. 이때 모세는 믿음으로 선포하며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14:14). 하나님은 모세의 담대한 믿음을 보시고 지팡이를 홍해위로 내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바로의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실 대에 비로서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14:17-18). 하나님은 구름 기둥을 앞에서 뒤로 옮기셔서 애굽과 이스라엘을 나뉘이셨다. 애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스라엘에는 광명하게 하셔서 애굽의 진행을 막으셨다. 모세가 손을 내밀자 동풍이 불어 물은 좌우에 벽이 되고 바다는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가게 하셨다. 이때 애굽 사람들의 병거와 마병들이 그 뒤를 따라오다 하나님이 심판하심으로 병거의 바퀴가 벗겨지게 되고 물이 다시 흘러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14:27-28).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하나님께서 애굽에게 행하신 큰 일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 그리고,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였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15:1). 하나님의 능력은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셔서 애굽으로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보이셨다. 모세는 여호와가 힘이며 노래이며 구원이심을 찬양했다 (15:2). 그리고, 여호와는 용사로서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는 분으로 찬양했다 (15:3-4).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로 인하여 열방이 듣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블레셋 거민들은 두려워하며 에돔과 모압, 그리고 가나안 거민이 모두 낙담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호와로서 강하시고 능력이 온 천하에 뛰어나시기 때문이다 (15:14-15).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로서 이스라엘 여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15:21).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 430년간 노예 생활을 하다 탈출하면서 위험에 있었다. 이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애굽의 강한 군대를 물과 바람으로 물리치시고 바다에 수장시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간 것은 애굽으로부터 완전히 떠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 430년간 종노릇했던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약속의 땅으로 진행하였다. 애굽을 떠나면서 바로는 다시 이스라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추적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였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면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을 떠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다.

 

2.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광야는 사막과 같이 거친 지역이다. 물도 없고 음식도 구할 수 없는 광야는 사람들에게 시련과 죽음을 가져다 줄 수 도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고대 아카드나 우가릿의 신화에서는 광야는 악마가 사는 장소라고 하였다. 성경은 광야를 생명과 단절된 곳(16:22) 라고 표현하였고, 굶주림과 갈증의 고통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믿음의 사람들은 광야에서 극한 환경을 만남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광야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8: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도록 연단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430년간 노예의 삶을 살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가 필요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기 위하여 과거 애굽의 풍속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시내산 까지 가는 과정에서 경험한 시험은 다음과 같다.

 

1. 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수르 광야로 지나가게 하셨다. 수르 광야는 애굽의 동편 국경 지역의 광야를 지칭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로 사흘 길을 걷다가 마라에 이르렀을 때에 물이 써서 마시자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15:24).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물에 던지게 하심으로 물이 달아졌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다. “...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15: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면 애굽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쳤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8:2). 시험하다는 의미는 테스트하다, 검증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 시험이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를 검증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고자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시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순식간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광야에서 사흘길을 걸어 겨우 물을 찾았으나 써서 마시지 못하는 순간에 모세를 원망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홍해를 앞두고 바로의 군대가 찾아오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홍해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경험하였지만 극심한 갈증과 광야의 어려움 앞에서 모세를 원망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쓴 물을 나무로 달게 하셔서 이스라엘에게 마실 물로 주신 후에 여호와 라파 치료하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보이셨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질병의 위험에서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마라에서 엘림으로 인도하셨고, 그곳에는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어서 그들의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15:27).

 

2. 만나와 메추라기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신 광야(Wilderness of Sin)로 이르게 된다. 애굽에서 나온지는 일월 십오일 이었기에 이월 십오일은 애굽에서 나온지 한달만에 신 광야에 도착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에릶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16:1). 이때 백성들이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추억하며 차라리 그 때가 좋았다고 했다. 심지어는 배불리 먹다가 애굽에서 죽는 것이 이 광야에서 배고픈 것보다 낫다고 한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인 만나로 그들을 시험한다고 하셨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6:4). 하나님은 육일에는 갑절을 거두어 안식일을 위하여 예비해야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고기를 배부르게 먹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하여 그들을 인도하시고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저녁에는 메추라기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6:1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셨다. 그들은 각 사람대로 오멜씩 취하도록 하셨다. 오멜은 약 2리터 분량의 식량이었다. 하나님이 각기 인수대로 오멜씩 보내셨기에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을 얻을 수가 있었다. 모세는 아침까지 음식을 남기지 말도록 했지만, 아침까지 남겨둔 자들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안식일을 위하여 남긴 만나와 메추라기는 아침까지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은 육일에 갑절로 거두고 칠일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 말씀에 불순종하여 안식일에 거두러 나가는 자가 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순종을 책망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16:2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증거판 앞에 건수하게 하셨고, 만나는 광야 사십년 동안 그들에게 내려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다. “...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16:8).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그들이 낮아지며 연단받아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의 고난 앞에서 영적으로 무너지며 하나님을 원망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40년간 날마다 보내시면서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날마다 보내어주시는 양식을 인하여 감사했다면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고 날마다 순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어리석음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6:4) 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의 고난과 시련, 그리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는 불평과 원망을 피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19) 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광야에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난 후에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3. 르비딤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서 이동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마실물이 없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어 자신들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였고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모세에게 돌을 던질려고 하였다. 그들은 단지 모세를 원망함을 넘어 다투며 돌을 던지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17:2) 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하셨다. 이때 하나님이 반석 위에서 모세를 향하여 서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17:6).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기에 그곳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하였다. 맛사는 시험이고 므리바는 다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고 홍해에서 하나님의 큰 기적을 경험하였지만 아직 육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이 넘쳐났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세운 종인 모세와 다투며 돌을 던지려는 육적인 자세를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이 자신들 중에 계신가 아닌가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17:7).

 

4. 아말렉과의 싸움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있을 때에 아말렉이 전쟁을 벌였다. 아말렉은 에서의 자손이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36:12). 아말렉은 시내산과 아라비아 반도를 포함하여 팔레스타인 남부 지역에서 반 유목 생활을 하였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공격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멸하도록 명하셨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아말렉 사람을 진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왕권을 잃었다. 후에 아각 사람 하만이 이스라엘을 진멸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에스더를 통하여 하만과 그의 사람들이 진멸되는 심판을 내리셨다.

 

아말렉은 자신들의 영토가 침범될 까 두려워 하나님의 백성들을 먼저 공격한 것이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처음 만난 전쟁이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아말렉과 싸우도록 하였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어 기도하였다. 이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7:11). 모세가 팔이 피곤하자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손을 붙들어 올리자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대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천하에서 도말하여 기억함이 없게 하라고 명하셨다. “...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8:14).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모세는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항상 승리를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갈 때에 하나님이 항상 승리를 주시기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주신 것이다. 광야에서는 항상 영적 전쟁을 겪게 된다. 믿음의 사람이 가장 약해있을 때에 사탄이 공격하여 넘어트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시다. 모세가 손을 든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아말렉과 같은 세상이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할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고난이나 핍박이나 위험에서 항상 승리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7).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연단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칼이나 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홍해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를 물리치셨듯이, 광야에서 아말렉의 군대를 물리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와 미리암과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날마다 찬송해야 한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1).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닛시이시다.

 

3. 모세가 이드로를 통하여 지도력을 배우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소식을 듣고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왔다. 모세의 두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었다. 게르솜은 나그네.’,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모세가 아내와 두 아들을 돌려보내었다고 했다. 이제 이드로는 모세가 돌려보내었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온 것이다. 모세는 장인인 이드로에게 문안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일을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자,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18:10-11).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교만히 행했던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찬송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기에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것이다.

 

이때 이드로는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는 것을 보고 효율적인 지도력을 제시했다. 이드로는 백성 중에서 지도자를 택하여 재판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오십부장과 십부장이 되어 백성을 재판하며 다스리는 일을 하면 모세의 짐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라고 했다. 대신에 아무나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준비된 자를 세우도록 했다.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18:21-22).

 

이드로가 천거한 리더의 자질은 다음과 같다. 재덕이 겸전한 자는 다음의 세가지의 자격을 갖춘 능력있는자 (able men) 을 의미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자이다. 둘째, 진실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진실함으로 진실을 말하고 행하는 자여야 한다. 셋째는 불의를 미워하는 자여야 했다. 이는 불의를 행함으로 얻는 이익을 말한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은 불의로 돈을 얻지 말아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이드로의 지혜는 모세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실행하여 백성 중에서 천부장을 비롯한 지도자를 선출하였다. 모세는 어려운 재판을 직접 하고 쉬운 일은 십부장이나 백부장의 사람들이 감당하게 하였다.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베풀고 쉬운 일은 자단하더라.” (18:26). 이도르는 모세를 만난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모세에게 행정의 지혜를 준 후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드로의 지혜는 모든 조직에 통용될 수 있는 영적 리더십이다. 신약에서 초대 교회가 크게 부흥하자 사도들이 사역을 다 감당할 수 없기에 집사를 선출하여 구제의 사역을 맡기게 된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도들이 집사를 선출할 때에 영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6:3-4). 사도들은 자신들은 말씀과 기도 사역에 전념하고 구제의 일은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사역을 감당하게 했다. 사도들을 도와 함께 사역할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며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가 세워져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3장은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맡을 영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딤전 3:1-13). 하나님의 사람들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며 술을 즐기거나 인박이지 말아야 하며 돈을 사랑치 말아야 하며 일구 이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과 기타 사역에 참여하는 자이다. 주의 일꾼은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을 나타내야 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신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와같이 준비된 자들이 세워져서 목회의 짐을 나누며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4. 시내산의 여정과 신약의 가르침

 

출애굽의 여정은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유월절을 시작으로 한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심판하실 때에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집은 증거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 (12:13).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광야의 길로 향하였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면서 극복해야 할 시험은 홍해를 건너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동풍으로 갈라져 좌우에 물이 벽이 되어 마른 땅을 건너갈 수 있었다 (14:21-22). 홍해의 기적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광야의 길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에 대한 상징이었다. 광야의 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마라에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고, 한달이 지난 후에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다. 하나님은 아침에는 만나로 먹이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셨다. 만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어 먹게 하신 양식이었다 (16:15). 르비딤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셔서 필요를 채워주셨다 (17:6). 그리고, 르비딤에서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이 쳐들어왔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다. 모세는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다(18:15-16).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깃발로서 승리를 주시는 분으로 찬양했다.

 

신약에서 애굽에서 시내산에 이르는 과정에서 경험한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모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유월절의 어린양은 속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이 되셨다고 설명했다.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생활에서 노예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로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재앙을 피하라고 하셨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2:13).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를 표적으로 보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원한 속죄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침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이 희생되었던 오후 3시에 동일하게 희생하셨고, 자신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다.

 

둘째, 홍해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침례의 모형이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을 침례로 비유하였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고전 10:1-2).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았다고 했다. 신약에서 가르치는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침례의 의미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3-4). 신약 시대의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내적인 연합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물에 잠기는 침례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다는 의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후에 홍해를 건너면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애굽으로 갈 수 없는 홍해를 건넌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고전 10:2) 라고 하였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후에 침례를 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으로 살아가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면서 홍해를 건너는 침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가 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홍해는 신약 시대의 침례와 같이 물에 잠기는 침례는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후에 애굽을 나오면서 홍해를 건너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갖는 의미에서 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셋째,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 이다. 이스라엘이 한번도 본적이 없는 만나는 깟씨 같고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했다 (16:31). 하나님은 출애굽 한지 한 달이 지난 후부터 40년간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마다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 주셨다. 하나님은 여호와로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주의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을 구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고 주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31-32).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육체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으로 믿고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6:48) 이라고 하셨다. 이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내린 만나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설명하시면서, 주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다고 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사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6:48-51). 주님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6:33).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이 떡을 먹고 육체의 필요를 채웠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생명을 주는 말씀이시다. 말씀은 살아있어서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는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양식을 먹어야 하듯이,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한다.

 

넷째, 반석은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반석 위에서 모세를 대하여 서신 후에 반석을 치라고 하셨다. 이때 반석에서 물이 나와 온 백성이 마실 수가 있었다 (17:6). 광야에서의 물은 생명수이다. 왜냐하면, 물이 없으면 사람과 짐승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가 반석을 칠 때에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모세가 친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 사도 바울은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이 반석에 서신 후에 모세가 반석을 칠 때에 물이 나온 것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모세을 대하여 서신 하나님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볼수도 있다. 바위가 곧 그리스도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반석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을 내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인 생수를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4).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인 것이다. 영생을 얻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반석이시며 구원의 주가 되신다.

 

다섯째, 하나님의 백성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광야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이 광야를 통과하는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재하셨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다. 하나님은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아말렉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셨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시며,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사십년 동안에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릍지 아니했다고 했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8: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여호와로서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감사에서 원망으로 바뀌었고, 원망에서 불평,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세와 다투는 일도 있었다. 왜 그들은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는가? 왜 그들은 광양의 시험에서 좌절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애굽에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몰랐고 그들이 가야하는 곳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성취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여 왜 광야를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비전이 분명하다면 어떠한 시련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사랑의 마음과 모세가 보았던 가나안의 비전을 보지 못하고, 육신의 안일하에 만족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이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믿음의 여정의 가치와 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