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16) - 시내산의 언약과 새언약 (출 19-25장)

비전의 사람 2019. 7. 3. 14:53

성경으로의 여행(16) - 시내산의 언약과 새언약 (19-2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19:5-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후에 약 2개월이 지나서 시내산에 이르렀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신 후에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후에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와 언약을 맺으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19:5-6).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큰 민족에 대한 언약을 맺으셨다 (12:1-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때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언약의 중심에 있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축복의 은혜를 누리지만,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저주를 받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11:26-29).

 

모세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은 축복을 가져오지만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율법이 기준이 되어 그들에게 저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들은 순종하겠다고 응답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기 위하여 강림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정결하기 위하여 옷을 빨고 삼일 동안 여인을 멀리하라고 하셨다 (19:14-15).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삼일 동안 산에 지경을 정하여 그 지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셨다(19:12). 하나님이 말씀하신 후에 삼일이 지나 하나님의 강림하실 때에 우뢰와 번개와 구름이 산 위에 가득하였고 나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9:16).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모습에 백성들은 무서워 떨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백성을 거느리고 산기슭에 서자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불 가운데서 하나님이 강림하셨다.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 온 산이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하나님이 음성으로 모세를 부르셔서 시내산으로 올라갔다.

 

하나님은 모세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과 구별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법을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법은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20:3-17)과 언약서(the book of the covenant)(21:1-23:33)라고 하는 세부적인 율법의 규율이었다.

 

율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준수하여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을 통하여 이미 구속함을 받은 주의 백성이었다 (20:1-7).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은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준이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동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충성심에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율법은 하나님의 의와 정의를 나타냄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와 공의를 드러내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은 세부적으로는 십계명이라고 불리는 개인적인 삶의 도덕법(moral law)과 사회에서 상호간에 지켜야 할 시민법(civil law),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경외를 표현하는 의식법(religious law)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은 죄가 되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고,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속죄제를 드려 죄사함을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 하나님은 십계명과 율법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보여주시지만, 성막과 제사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길을 보여주셨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순종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데에 목적이 있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8: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면 약속의 땅에서 번성하고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1. 십계명은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20:2) 라고 하셨다. 이는 여호와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애굽의 종이었던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인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와로서의 권위를 보여주시면서 십계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친히 돌에 기록하심으로서 십계명의 소중함을 보이셨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지켜야 할 삶의 기준이 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31:18). 이스라엘은 지난 430년간 애굽의 종노릇하면서 애굽의 그릇된 사회 제도나 규범, 그리고 우상 숭배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님이 십일조와 율법을 주심으로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이스라엘의 순종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는 조건이라고 하셨다. 십계명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20:3).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은 다신교를 믿었다.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는 이방민족과 달리 이스라엘 민족은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을 예배해야 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신들은 우상이며 하나님을 대체한 피조물을 숭배할 뿐이다. 하나님 만을 예배하는 것은 유일신이신 하나님 만을 섬기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6:4) 라고 이스라엘을 가르쳤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20:4).

 

우상 숭배의 특징은 우상의 대상을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이다. 특히 애굽은 하늘의 새나 태양, 곤충이나 동물 들의 형상을 신으로 숭배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육체를 소유하신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한 형상으로도 하나님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왜곡하는 것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형상을 초월하신 전능하신 여호와이시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20:7).

 

셋째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경외하지 않고 멸시하는 것이다. ‘망령되이함부로라고 번역할 수 있다.

 

넷째,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며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20:9-10).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20:11). 안식일의 의미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칠일에 안식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안식일은 모세 언약의 표징이 되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31:13). 하나님은 노아 언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삼으셨고 (9:16-17),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17:10-11)를 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 언약의 표징으로 안식일로 삼으신 것이다(31:13). 모세 언약의 표징이 안식일로 하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의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안식후 첫날인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20:7). 안식일의 정신은 안식일을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날로 정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경외하기 위하여 모든 일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다섯째,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21:12).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이다. 모든 인간 관계의 기초는 가정에서 시작하며 가정의 권위는 부모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는 출발점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의미있고 존중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부모를 공경하는 (כַּבֵּ֥ד)단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단어와 같은 말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섬겨야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십계명을 인용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다 (6:1-2).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여섯째,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

살인하지 말찌니라.” (20:13).

 

6계명은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라고 하셨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9:6).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살인하는 것은 하나님이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는 낙태와 안락사 등에서 나타날 수 있다. 생명의 시작은 자궁에서 수정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 (요일 3:15). 살인의 원인은 미움과 분노이다. 가인의 미움이 아벨을 살인하는 동기가 되었듯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살인을 피하기 위하여 마음의 미움과 분노를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 주님은 6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형제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1-22).

 

일곱번째, 성적인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간음하지 말찌니라.” (20:13).

 

하나님은 결혼의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셨다. 결혼한 남자가 배우자 외의 다른 여자와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은 간음으로 간주되었다. 율법은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사형에 처하였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20:10).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하나님이 크게 심판하시는 죄이다.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으로 간주하셨다(5:28).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영적인 간음으로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과 육의 순결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여 승리해야 한다.

 

여덟째, 도덕질하지 말아야 한다.

도덕질하지 말찌니라.” (20:1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의 소유에 대하여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도덕질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훔치는 것이다. 자신이 땀을 흘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소유를 도덕질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회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아홉째, 이웃에 대하여 가짓 증거하지 말아야 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20:16).

 

거짓 증거하지 않는 것은 진실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거짓이 아닌 진리가 다스리는 사회 질서를 원하셨다. 거짓은 사탄의 도구이기에 거짓된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한 어두운 사회가 된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재판이나 가정과 직장에서 진실한 언어와 행실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열번째, 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20:17).

 

탐심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하는 것이다. 탐심은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내적 감정과 생각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적인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켜야 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다(3:5). 사람이 탐심을 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를 따르는 것이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여 빼앗은 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열상 21:19). 디모데전서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만족해야 하나, 부하려 하면 시험과 올무와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고 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과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마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7-10).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한다. 모세는 십일조를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심이라고 하였다 (20:20). 십계명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주님은 십계명의 가르침을 인용하시면서 가르치셨다. 새 언약의 시대에도 십계명은 하나님의 의와 공의를 반영하는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2. 언약서(the Book of the Covenant)는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세부적인 율법의 규정이다. (21:1-22:20).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리라면, 언약서는 세부적으로 지켜야 할 율법의 항목이다. 모세의 율법에는 출애굽기 20장에서 민수기 9장까지 613 개의 세부적인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기록한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들에게 낭독하였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24:7). 언약서는 출애굽기 21-23장에 기록된 말씀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시민법으로서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포함되어 있다. (21:1-23:9).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안식일과 절기법(23:10-19)이며, 마지막은 가나안에 들어가 지켜야 할 규율(23:20-33)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언약서는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반영된 법으로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이방인과 구별하게 하는 규율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면 복을 누리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죄의 형벌을 받아야 했다.

 

1) 시민법 (21:1-22:20).

 

언약서는 노예에 대한 법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기에 가나안에서 자신들이 받은 학대를 경험으로 다른 노예에게 가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대의 사회적인 기준으로 노예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드러내도록 노예를 대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히브리 종을 사면 육년 동안 섬기고 칠년에는 자유하게 해야 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21:2).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 민족을 불법으로 430년간 종으로 삼고 고통을 주었다. 그에 반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히브리 사람이 종이 되면 평생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년동안 섬기고 나면 자유하게 하셨다. 그러나, 종이 상전과 처자를 사랑함으로 자유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종으로 평생 섬기고자 하면 자유 의지로 평생의 종이 되게 하셨다. 스스로 종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재판장에게 가서 귀를 뚫어 스스로 종이 된 증거를 삼아야 했다(21:5-6).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자유함을 얻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스스로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 (1:1).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기에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형에 대한 법은 다음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경우이다. 타인을 살해한 경우에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21:12-14). 그러나, 의도적인 살해가 아니라 우발적인 살해에 대해서는 도피성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하게 하셨다. 그리고, 부모를 구타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21:15,17), 다른 사람을 유괴한 죄는 사형에 처했다 (21:16). 하나님께서 사형을 내리신 이유는 죄의 무게를 알려주심으로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했기에 어떠한 배상으로도 속죄할 수 없었고, 부모를 구타하거나 저주하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유괴하는 것은 살인한 죄 만큼 큰 범죄로 간주되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 범죄에 대하여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셨다. 상해는 육체적 상해(18-32)와 재산권 침해(33-36)로 나누어 배상하게 했다. 배상은 동해 보복법의 배상 원칙으로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21:23-25) 적용되었다. 이는 형벌은 범죄에 맞도록 공의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을 통하여 율법의 가르침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셨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38-39, 43-44). 주님은 율법의 근본 동기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임을 말씀하셨다. 율법의 근본 목적은 복수가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타인을 사랑함으로 존중하는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님의 새 언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관계의 뿌리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한 사람이 다치면 친 사람은 형벌은 면하되 손해의 기간과 다신 사람의 상처가 완전히 낫도록 배상해야 했다 (21:18-19). 아이 밴 여인을 유산하게 하면 남편의 청구대로 벌금을 내야 했으며 (21:22), 종의 눈을 쳐서 상하게 하거나 이가 빠지면 눈 대신에 종을 자유하게 하고, 이 대신에 종을 자유하게 해야 했다 (21:26-27). 소가 사람을 받아서 죽으면 소는 죽이되 사람은 형벌을 피하지만, 원래 받는 버릇이 있으면 소와 주인은 죽음에 처해야 했다. 그러나, 주인이 종의 경우에는 삼십 세겔의 속죄금을 내어 생명을 대신할 수 있었고, 자유인은 오십세겔까지 속죄금으로 낼수 있었다 (27:3). 사람이 구덩이를 덮지 않아 소가 빠지면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주어야 했고, 소가 다른 소를 받아 죽이면 산 소를 팔아 값을 반분해야 했다 (21:33-36).

 

재산상의 배상에 관한 법은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소나 양을 훔치면 소 하나에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아야 했다 (22:1). 훔친 것에 대하여 반드시 배상해야 했으며 배상할 것이 없으면 자신의 몸을 팔아 배상하며, 도적질한 것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갑절을 배상해야 했다 (22:3-4). 자신의 짐승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먹으면 자신의 제일 좋을 것으로 배상하며 불이 나서 곡식에 피해를 입히면 반드시 배상해야 했다 (22:5-6).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맡고 있다가 그 물건을 도둑맞으면 배상할 책임이 있었다(22:7-13). 만약 도둑이 잡혔다면 배상할 책임이 도둑에게 있었다 (22:7).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다면 결혼 지참금을 내어 결혼해야 했고, 만일 처녀의 아비가 거절하면 처녀에게 돈을 내어야 했다 (22:16-17). 출애굽기 2218-31절은 다양한 규율을 가르치고 있다. 무당과 짐승과 행음하는 자, 그리고 우상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사형에 처해야 했다 (22:18-20). 그리고,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받지 말고 이웃의 옷을 전당잡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웃의 옷이 저녁에는 추위를 피하는 옷이 되기 때문이다. 재판장이나 백성의 관료를 저주하지 말고, 추수한 것으로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고 처음 난 아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켜야 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찌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찌니라.” (22:31). 이스라엘 백성은 재판에서 진실되게 증언해야 했고 (23:1-3),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라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고,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려지면 도와주어야 했다 (23:4-5).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다 (23:9).

 

2) 안식년과 절기에 관한 법 (23:10-19).

 

이스라엘 백성은 육년 동안은 파종하여 농사를 짓고 칠년에는 안식해야 했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가 먹고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묶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 할찌니라.” (23:10-11).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땅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를 지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70년의 포로 생활을 예언하시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통하여 70년간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게 하셨다. 이에 대하여 역대하 36장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역하 36:21). 하나님께서 땅의 안식을 위하여 칠십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불순종에 대하여 형벌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소와 나귀가 쉴 뿐만 아니라 종들과 종들의 자녀, 그리고 나그네가 쉼을 얻는 시간이 되게 하였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모세 언약의 증거였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31:16).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언약을 깨는 자로서 사형에 해당되었다 (31:14).

 

이스라엘 백성은 세 가지 절기를 지켜야 했다.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23:17). 첫번째는 무교절로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켜졌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 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23:15). 모든 남자들은 아내와 가족과 함께 절기에 참석함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백성으로의 연합을 심어주었다. 맥추절은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지켜졌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23:16). 맥추절은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추수 감사의 절기였다. 이날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째 지켜지기에 오순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장절은 가을의 추수에 감사함으로 지키는 절기였다. 유대 종교력으로 715일부터 1주일간 지켜졌는데, 장막에서 일주일간 거하며 광야 생활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장막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빈손으로 나오지 말아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이방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야 했으며, 이교도와 같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드리지 말며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보여야 했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 (23:19).

 

3) 가나안에서 지켜야 할 규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사자를 앞서 보내어 보호하시며 예비하신 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23:20).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원수에게 원수가 되셔서 가나안의 족속들인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치실 것이다(23:22-23).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거나 그들의 행동을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야 했다. 그러나,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블레셋의 우상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다 (2:11-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2:11).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 그리고 헷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일년 안에는 쫓아내지 않으실 것은 그 땅이 황무하여 들짐승이 번성함으로 이스라엘을 해할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23:29-3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조금씩 쫓내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지경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대로 홍해에서부터 유브라데스 유역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23:32).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이나 그들의 신과 언약을 맺지 말아야 하지만, 만일 그 신을 섬기면 올무가 되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범죄게 할 것이다 (23:32-33).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기브온 거민과 언약을 맺음으로 불순종하였다 (9:14-16).

 

4. 하나님이 모세와 시내산에서 언약을 비준하시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아론과 그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산에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게 하셨다. 그러나, 모세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나머지는 가까지 오지 못하게 하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자 그들이 한 소리로 자신들이 준행한다고 고백하였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24:3).

 

모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 이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였다. 모세는 피를 취하여 반은 단에 뿌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한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백에 따라 모세는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며 언약을 피라고 하였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며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니라.” (24:7-8).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짐승의 피로 단에 뿌리고 백성에게 뿌림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는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재앙과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는 무조적적인 약속이라면, 모세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의 조건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장로 칠십인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마셨더라.” (24:10-11). 하나님은 모세 언약을 맺은 것을 기념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며 먹고 마셨지만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시며 언약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하셨다.

 

시내산에서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을 의미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서 살아가다 출애굽을 통하여 구속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모세는 언약의 중보자로서 피를 뿌려 피의 언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축복의 누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지만, 불순종은 저주가 되는 언약이기도 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고백을 잊어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의 모습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간음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순종의 대가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5. 신약과 새 언약

 

구약 시대에는 모세 언약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하나님의 법이었다. 십계명과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언약에서 실패함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돌이 아닌 마음에 주시겠다는 새 언약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셨다 (31:31-34). 예레미야에서 예언된 새 언약은 다음과 같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1:33).

 

옛 언약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다. 옛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삶의 기준을 세우셨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언약을 파괴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1:32).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신다고 하셨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돌이 아닌 마음에 주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다. (31:33-34). 옛 언약의 중보자는 모세였다면, 새 언약의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세가 짐승의 피로 피의 언약을 시내산에서 맺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보혈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만찬을 드시며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실 때에 이 잔은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하셨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7-28). 주님은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새 언약의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새 언약은 모세가 맺은 옛 언약을 대체하였다. 왜냐하면, 옛 언약이 모세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 언약의 조건이었다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율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가 사함을 얻어 의롭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8:12). 하나님이 새 언약이라 하신 이유는 옛 언약은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세의 옛 언약은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믿는 자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로서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하나님의 성소에 뿌림으로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고 믿는 자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다 (9:12-14). 모세의 율법은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짐승의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성소가 아닌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사 자신의 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9:23-24).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 자신의 피를 뿌림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뜻을 쫓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9-10).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믿는 자의 마음에 법을 두시며, 그들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 다고 하셨다 (10:16-18).

옛 언약이 폐하고 새 언약의 시대에는 안식일이 아닌 안식후 첫날 주님의 부활하신 날이 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었다 (20:7). 새 언약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자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 언약의 일군으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후 3:6).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사랑으로 정의하셨다. 최고의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22:37-39).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소중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