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4) - 룻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은혜 (룻기 3장)

비전의 사람 2023. 6. 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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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4) - 룻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은혜 (룻기 3)

 

보아스가 룻의 인생에 들어온 후에, 나오미가 살아가는 방식이 틀려지게 됩니다. 그 전에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면서 룻을 염려하며 그녀를 돕게 됩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삶에서 믿음의 회복이 있게 됩니다.

 

나오미는 이제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통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보아스가 룻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기 위하여 준비를 했습니다.

 

룻은 어떻게 보아스를 만날 준비를 했을까요?

 

1. 룻은 자신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3:3).

 

유대인들은 특별한 의식이 있을 때에는 물로써 자신을 정결케하는 목욕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에, 그는 자신을 정결케하라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서기 전에도 그들은 자신을 먼저 정결케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신부가 결혼을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올 때에는 자신을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부정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그들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30: 19-20).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예배하러 올 때는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하는 말씀을 듣고 살았습니다. (시편 24: 1-6).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과 회개, 그리스도의 보혈로 생각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룻은 기름을 부었습니다.

“... 기름을 바르고...” (3:3).

 

기름은 두 가지의 용도로 과거에 사용되어졌습니다. 기름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좋은 냄새를 내기 위한 향료로도 사용되어졌습니다. 성경에서는 기름을 바르는 것의 의미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를 상징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 20)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면서 잔이 차고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 충만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고,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에도, 주님이 부어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육신적인 모습으로 변하여 하나님 앞에서 향기롭지 못한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3. 룻은 의복을 바꾸었습니다.

“... 의복을 입고...” (3: 3).

 

룻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는 과부로서의 의상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결혼을 위한 새로운 옷을 입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곧 보아스와 결혼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룻에게 새로운 옷을 입도록 했습니다.

 

구원은 옷을 바꾸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이제는 새 사람의 은혜의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3: 1-17).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3: 9-10).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야 하나님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의 의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주신 거룩한 의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의 삶에서 거룩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4. 룻은 순종하기로 약속합니다.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3: 5).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가 잠잘 때에 그의 이불 끝에서 누우라고 가르칩니다. 이때 룻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라고 순종합니다.

 

룻은 말씀을 듣는 자일 뿐 아니라, 그녀는 행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하는 자발적인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행함으로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그 분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순종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순종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은혜의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선별하여 순종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막는 방해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순종하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자로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룻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룻은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오미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자 룻이 보아스와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룻의 미래를 축복하시기 위하여,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하심으로 그녀의 믿음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의미를 발견하길 원합니다.

 

1. 룻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3: 6)

 

추수하는 시기에는 추수한 곡식을 타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들은 타작대를 설치하여 추수한 곡식을 쌓아두고, 그 곡식을 떨어서 알곡과 볏단을 분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곡은 다시 바람에 날려서 알곡과 겨를 분리하여, 알곡을 모아서 시장에 팔겨나 창고에 쌓아서 양식을 하게 됩니다. 일꾼들은 종종 저녁 바람을 이용하여 일을 한 후에, 추수한 곡식을 지키기 위하여 타장 마당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바로 타작마당입니다. “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3:6). 보아스가 타작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추수한 보리단 곁에서 눕게 되었습니다. 이때 룻은 나오미의 말대로 보아스가 누운 곳에 가서 그의 발치 이불 곁에서 누웠습니다. 그리고, 밤중에 보아스가 놀라서 네가 누구뇨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3:9).

 

그녀가 행한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는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에 순종함으로 과감에게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게 됩니다. 그 청혼하는 배경은 기업무를 자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에 기초한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업을 무를 자의 의미와 성경적인 배경은 무엇인가요? 기업무를 자는 영어로 kinsman - redeemer입니다. 기업 무를 자의 히브리 원어는 고엘입니다. 히브리 단어는 상황에 따라서 보수자 (19: 12) 라고도 하고, 기업 무를 자 (4:1) 라고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엘 제도라고 함은 친족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관한 제도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가난한 형제가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을 경우에 가까운 친척이 그 빚을 갚음으로써 그를 종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25: 4-55). 또한 형제가 자신의 토지를 팔았을 경우에 가까운 친척이 일정 기간 후에 그 값을 치름으로써 다시 그 토지를 돌려받게 할 수 있었습니다. (25: 23-28). 또 만일 자기 친족 중에 한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을 경우에는 가까운 친척이 그를 위해 피의 보복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35: 19). 또 고엘 제도의 가장 중요한 사항의 하나로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에는 가까운 형제 순으로 남겨진 미망인과 계대 결혼을 하여 그 가문이 존속되게 하여야 했습니다. 이처럼 고엘 제도는 한 혈연 공동체 내에 속한 구성원들이 서로의 생명과 재산 및 가문을 보호해 주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고엘, 즉 친족 구속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든 환난에서, 대적의 손에서 건져 주시는 구속자이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위해, 주와 남편이 되시기 위해 고엘로서의 의무와 사랑을 다 행하여 보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계속 지켜 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고엘의 의무를 다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의 고엘이 되십니다. 즉 그 분은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속량 제물로 주심으로 (20: 28), 즉 우리의 영원한 죄값은 우리의 고엘로서 대신 치루어 주시고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2: 14).

 

룻은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는 표현을 통하여 청혼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보아스가 룻에게 기업을 무를 자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기업을 무를 자로서의 강제성은 없었고, 본인의 자원하는 마음에 의하여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보아스가 룻의 청혼을 거절한다면, 그는 기업무를 자로서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룻이 청혼을 할수 있는 배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시어머니를 향한 순종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룻의 순종은 그의 인생을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인도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습니다.

 

2. 보아스는 룻을 축복하며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3: 10).

 

룻의 청혼에 보아스가 감동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룻의 고상한 인격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모압 여인이었지만, 룻의 인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3: 10). 룻은 복 받을 만한 고상한 인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애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룻이 베푼 인애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답다고 보아스는 격려하고 있습니다. 인애는 kindness , 친절한 태도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룻의 처음 인애와 나중 인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것이 처음 인애라면, 시모를 잘 공경하고 육신의 정욕을 좇지 않고 시모의 명령과 율법에 충실했던 것이 나중 인애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은 남편에게 베풀었던 룻의 사랑이 처음 인애라면, 고엘 제도를 통하여 남편의 가문을 이어가고자 하는 행위를 나중 인애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룻은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정욕대로라고 하면 젊은 남자를 따라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시모의 뜻을 따라서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보아스에게 청혼하여 가문의 혈통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보아스는 큰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를 향하여 보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3: 11).

 

룻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보아스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됩니다. 그 비결은 그녀의 탁월한 믿음, 즉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음 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탁월한 인격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시모를 공경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밭을 다니며 이삭을 주웠습니다. 이러한 선행에 사람들과 보아스는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현숙한 여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현숙함이란 강한, 견고한의 뜻입니다. 이는 어떤 물건 등을 돌렸는데 전혀 중심을 잃지 아니한 굳센 정신을 상징합니다. 이 세상이 혼돈된 가치관 속에서 현숙한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대로 굳세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도 소중하지만, 고상한 인격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자매로서는 현숙한 여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행실과 성품을 가진 현숙한 여인과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이제 믿음으로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며 기업부를 자의 책임을 다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담대한 선포였습니다. 이제 룻이 신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하여 그 분의 일을 하시기에, 룻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보아스보다 먼저 기업무를 자의 권리를 가진 자가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신이 기업 부를 자의 의무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보아스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룻과 나오미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룻은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3: 18). 하나님이 행하시기에, 룻은 이제 하나님께 맡기고 쉼을 얻어야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37: 5)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룻이 자신이 할 일은 하고, 이제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딜지라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46: 10)

 

우리가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그 분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모압 여인의 순수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시고,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순결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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