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 (5) - 구원의 은혜 (룻기 4장)

비전의 사람 2023. 6. 14. 18:38
반응형

룻기 (5) - 구원의 은혜 (룻기 4)

 

룻기는 세 명의 장례로 시작하지만, 결혼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시작은 슬픔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슬픔의 시간이 있지만, 넘치는 기쁨으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가시면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나오미와 룻은 룻기 1장에서 슬픔과 절망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이후로는 결국 기쁨과 소망의 인생으로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시며 인도하십니다. 지금은 힘들고 절망스럽게 보이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선을 이루시며 그 분에게 속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룻기 4장은 구속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업무를 자인 보아스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속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알게 합니다.

 

1. 보아스는 구속자를 상징합니다 (4: 1-10)

 

이스라엘은 구속자 되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애굽의 종되었던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 구속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되신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도 서로간에 구속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구속자가 되는 의미는 친족이 어려운 처지에 처하면 도와서 그 기업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친족 구속자 또는 기업무를 자라고 했습니다.

 

기업무를 자 (kinsman redeemer) 의 법은 레위기 2523-34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5: 25). 이스라엘 자손이 너무나 가난하여 땅을 팔아야 하다면,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다시 사서 그 가족에게 되돌려주어야 하는 책임인 것이었습니다.

 

친족이 너무나 가난하여 자신을 노예로 팔려간다면, 가까운 친족이 그를 위하여 비용을 지불하여 자유자가 되게 하는 책임도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 팔린 후에 그를 속량할 수 있나니 그 형제 중 하나가 속하거나.”(25:47-48).

 

친족 구속자의 책임 중의 하나는 계대 결혼이라는 것을 통하여 자녀가 없이 죽은 형제의 후손을 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대결혼의 법은 신명기 25: 5-10 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형제가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의 가까운 친족이 그 미망인과 결혼하여 죽은 자의 이름으로 후손을 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부모의 기업을 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과 가족 자산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속자의 법이 순종되어지면, 죽은 사람의 가족의 이름이 보존되었고 그들의 소유도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땅의 소유주였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과부들을 착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없는 사람들로부터 땅을 착취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룻기는 보아스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1) 구속 (redemption) 의 의미: 구속하다는 댓가를 지불하고 자유하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룻과 나오미의 경우는 엘리멜렉의 자산이 팔렸거나 경매에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대한 권리는 룻의 남편이 말론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도 죽었고, 룻은 너무나 가난하여 그 땅을 구속할 (무를)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구속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모든 사람들은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었고, 더 이상 자신들을 자유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10: 45), 그때 우리가 그분을 믿고 영접하게 되면 구속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 45).

 

우리가 죄의 종이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2) 구속자의 자격 (The marks of the redeemer).

 

모든 사람들이 기업부를자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업무를 자는 가까운 친족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레위기 25: 25). 보아스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기업부를자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3: 12-13).

 

a. 기업부를 자는 가까운 친족이어야 했습니다.

 

기업무를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간주하게 되면, 그 분이 우리를 구속하기 전에 우리와 연관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2: 14-15).

 

그 분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오실 때에, 그 분은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b. 기업무를 자는 구속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업무를 자는 구속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룻과 나오미는 너무나 가난하여 스스로는 구속할 수 없었지만, 보아스는 그 땅을 구속할 수 있는 필요한 자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속하는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의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 부요한 분이셨습니다. 그 대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었습니다. (벧전 1: 18-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 7). 그 분은 자신의 피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지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 12).

 

c. 기업무를 자는 자원함으로 구속해야 했습니다.

 

기업무를 자는 기꺼이 구속할 의사가 있어야 했습니다. 룻기 4장에서는 가까운 친족이 구속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기꺼이 땅과 아내를 구속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가까운 친족은 물질은 있었지만, 자신이 손해볼 것을 염려하여 포기했던 것입니다.

 

3. 구속의 방법. The Method of Redemption.

 

성문은 공식적인 법정과 같았습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도착하자, 그는 성읍 장로 십인을 청하여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보아스는 가까운 친족에게 기업을 무르도록 합니다. 그는 엘리멜렉의 밭과 룻을 사서, 말론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 까하여 기업무를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룻과 낳은 아들에게 자신의 기업의 일부가 돌아갈까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기꺼이 기업무를 자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자신의 신을 벗어서 주면서, 계약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10 명의 증인들은 그 계약이 잘 성립된 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보아스가 댓가를 지불함으로 인하여, 그 땅과 룻이 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셨고, 우리가 천국의 기업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2. 룻은 믿음으로 복을 얻었습니다.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룻을 축복합니다. 라헬과 레아는 8 명의 자녀를 낳아서, 이스라엘의 기초를 놓습니다. 그 의미는 자녀의 풍성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에브랏의 의미는 풍부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룻이 풍성하고 유력하며, 유명해지기를 원했습니다. 베들레헴은 그리스도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은 보아스의 집이 베레스의 집과 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보아스는 베레스의 후손이었고, 다말은 베레스의 어머니었습니다. 다말은 경건한 여인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룻의 인생은 보아스를 만남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가난에서 부요함으로, 걱정에서 평안으로, 절망에서 소망의 삶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룻은 보아스의 아내라는 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명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 분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고, 어느날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히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19: 1-10, 21-22).

 

3. 오벳은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4: 13-22).

 

하나님은 룻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모압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으로 살게 하셨고,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까지 믿음으로 따라오는 신실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룻의 신실한 믿음을 보시고, 그를 위하여 보아스를 예비하심으로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더욱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셔서, 그들에게 자녀를 주셨는데, 그의 이름은 오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기를 통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먼저, 오벳은 보아스와 룻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모든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 자녀들은 가족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그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보아스와 룻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들의 축복을 주심으로 그 가정에 희망과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 오벳은 나오미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오벳은 나모미에게 생명의 회복자이며 노년의 봉양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는 아기를 품에 품으며 양육자가 되어서 아기를 키웠습니다. 아들이 없는 가문에서 아비멜렉의 이름으로 자녀가 키워지기에 얼마나 소중한 손자가 되었겠습니까? 오벳은 나오미에게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셋째, 오벳은 이스라엘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오벳은 다윗왕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벳으로 인하여 이새와 다윗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성전을 사모함으로 재물을 모았던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삶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더욱 성대한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넷째, 오벳은 세상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이었습니다.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메시야가 탄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벳은 전 세계의 소망을 주는 축복의 통로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손길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보아스를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며 위대한 가문을 세웠듯이, 우리도 주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영광을 위한 위대한 인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