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 (3) - 마라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룻 1:19-2장).

비전의 사람 2023. 5. 3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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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3) - 마라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1:19-2).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1: 20)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저가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 38). 우리가 믿음에서 퇴보하게 되면,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할 때에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정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 문제는 바로 마라입니다. 마라의 뜻은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마라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1. 인생에서 마라가 찾아올 때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나오미가 10 년 만에 베들레헴에 돌아오자, 온 동네가 떠들썩하며 말합니다. 이가 나오미냐?” 나오미의 의미는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 (즐거움) 라 하지 말고, 마라 (괴로움) 라 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전능자 하나님이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지난 10 년 동안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떠날 때에는 풍족하게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빈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10 년 동안 세 명의 남자를 관에 묻어야 하는 심각한 아픔과 절망을 경험한 나오미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고통으로 인한 쓴 뿌리가 있었습니다. 비록 나오미가 룻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의 땅에 돌아왔지만, 온전히 하나님께 믿음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지 않고, 하나님께 원인을 돌렸습니다. 이는 나오미가 자신의 시련과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께 찾으려고 했습니다. 나오미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지 않고 하나님께 찾으려고 하자, 그녀의 마음에는 쓴 뿌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통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네 가지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고통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다윗에게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졌습니다. 두 번째는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 발견하며 열등감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에 대하여 비관하며 자기를 비하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연약함과 허물이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 번째 반응은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으며 원망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나를 구하시지 않으시는가? 욥의 아내는 욥을 향하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욥의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네 번째는 고통의 이유에 대하여 원인을 찾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있는 허물을 생각하며 묵묵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이유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고난의 이유에 대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으며 기쁨으로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라의 어려운 때를 만나게 되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실패한 이유도 무엇인가요? 인생의 어려운 때에서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려운 때를 만나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면서 믿음에서 퇴보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반응이 우리의 내일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마라의 시간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마라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풍성한 은혜로서 도우시는 손길을 보이십니다.

 

나오미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고 고백합니다. 어찌보면 나오미는 자신이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너무나 지쳐있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은혜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의 무덤을 모압에 두고 왔지만, 나오미는 아직도 살아서 고향에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살아있기에 새롭게 인생을 베들레헴에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생명의 날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딸인 룻이 있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께 순종하는 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릇이었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였기에, 하나님은 룻에게 축복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오미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지만, 며느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오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25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함께 하셨습니다. 나오미는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을 위한 발판을 준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면서,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마라의 쓴 물을 마시면서 고통 중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자원들을 보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소중한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사랑과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서로를 세우며 격려하며 힘을 주는 믿음의 공동체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감사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더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3. 마라의 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기대해야 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오자, 이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때였습니다. 룻은 보리를 추수하는 기회를 통하여 보아스를 만나서 인생에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는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보리는 봄에 추수합니다. 봄은 생명이 시작하는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출연으로 인하여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마라를 만났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작을 향하여 기회를 주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주셨고, 새로운 달과 해를 주십니다. 인생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향하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의 인생이 파멸과 절망으로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꼈지만,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향한 시작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절망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비전을 향하여 출발하는 선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망이 없다면 내일의 미래가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픔과 절망이 있기에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승리의 깃발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와 룻에게 보아스를 통하여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얻어서 밭에 나아가 이삭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19: 9-10; 23: 22; 24: 19-22).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삭을 남겨두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룻이 밭에 나아가자, 그녀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들어가게 됩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그 지역에서 유력한 자였습니다. 그녀가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된 것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습니다. 보아스와의 만남을 통하여 룻이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16: 20), 모든 환경에서 우리를 위하시며 (8: 28), 우리 안에서 도우시는 것 (2: 12-13)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 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늘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오늘 우리의 삶에서 만남의 사건은 소중한 만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의 피로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있던 우리를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보아스는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룻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보게 됩니다.

 

룻은 가난한 과부였고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약한 룻에게 보아스는 다가와서 말을 걸면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2: 8).

 

그리고, 보아스는 보아스는 자신의 종들에게 그녀를 보호해주고 여자 종들과 함께 일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이 곡식 단 사이에서 줍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종들에게 이삭을 뽑아 남겨 둠으로 룻이 줍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식사할 때는 룻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보아스의 선행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런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었고 (2:1), 연약했고 (5: 6), 죄인이었으며 (5: 8), 원수였을 때에 (5: 10) 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은혜를 입어서 천국의 향기를 맡으며 살고 있으며, 주님의 때에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요함이 우리의 부의 원천이며, 예수님의 지혜가 우리의 지혜의 원천이며, 그 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날마다 새 힘을 얻고 달려갈 수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로 인하여 많은 이삭을 주울 수가 있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성읍에 들어가서 그 주운 것을 보이고, 배울리 먹고 남은 것을 시모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룻을 통하여 보아스의 선행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보아스를 축복하기를, 하나님의 복이 그에게 임하기를 간구했습니다. 보아스의 쓴 마음이 이제 축복할 수 있는 은혜의 마음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나오미의 마음에 기쁨이 생긴 것은, 그녀에게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룻을 아끼며 돌보고 있는 보아스는 유력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친척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기업을 무를 자 중 한 사람’ (2: 20) 이었던 것입니다. 기업을 무른 다는 의미는 그들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게 할 수 있으며, 룻과 결혼을 통하여 자녀를 낳아 후계를 잇게 하는 권리를 가진 자였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를 통하여 그동안 잃어버렸던 모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소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소망없이 살아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소망입니다. 그 분을 통하여 우리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분을 통하여 이 땅에서 승리의 삶을 살고 있으며, 그 분을 통하여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그들을 구원할 친족이었듯이, 우리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임을 확신하며 소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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