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해결책은 순종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 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벧전 5:6-7).
인생에서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도도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 속에서는 극도의 불안감과 위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아산 호서대학교에서 청소년 수련회가 있어서 다니려 간 적이 있습니다. 겨울이었기에 눈발이 날리고 있어서 좋은 날씨는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비가 온 후라 밤의 길은 빙판이었고 눈까지 와서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길을 빠져 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 승용차가 천천히 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속도가 조금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갑자기 차가 저의 운전대의 통제를 받지 않았고 브레이크도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차는 길에서 좌우로 충돌하며 사고가 났습니다. 아무리 차를 멈추려고 해도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생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제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의 기반을 흔들릴 때에, 우리는 당황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 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사고난 차를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끌고 시골 집으로 운전해 갔습니다. 그러자 교회의 형제가 공업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차를 빨리 수리하기 위해서 공업사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차를 하루 만에 고쳐서 가져오다가, 눈보라에 차가 미끄러져 시골의 수로에 빠지면서 차가 반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그 형제는 입원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경우가 되었습니다.
차가 도로벽에 부딪힐 때의 순간은 큰 충격이듯이, 인생에서의 충격은 우리에게 여러 모습으로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종류의 스트레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통제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사업이 부도를 맞기도 하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말기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소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등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인 것입니다. 이런 일을 만나면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둘째는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직장이나 사회, 또는 교회에서 팀을 이끌어 갈 때에 협력하는 마음은 팀의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그러나, 마음을 함께하지 않고 팀에서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면 그것도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셋째는 설명되지 않는 아픔입니다.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슬픔이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올 때에 우리는 눈물만을 흘리며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드립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아픔이 찾아옵니까?” 왜 하필이면 나만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환경과 위기 앞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황을 바꿀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에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이 가르쳐주신 지혜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상황과 위기를 받아들이고,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 10)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에는 하나님의 나라 (kingdom)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위기와 혼돈의 시기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를 의미하는가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정치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 18: 36) 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나라에 정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정치적인 활동이나 정치인이 되기도 하고, 선거 때에는 교회가 동원되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가치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후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세속적인 정치로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앞장서서 선거에 나서서 당을 만들고 정권을 잡으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주님도 이 땅에 정치적인 예수당을 만들어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이 땅을 변화시키려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마음안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우리의 마음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여 함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워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복음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셔서 그 분의 몸이 되게 하셨고, 우리는 그 분의 몸으로서 서로 연합하고 세상의 빛이 되는 등대가 될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분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에 인생의 초점이 맞추어 진다면, 우리는 더욱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이란 예수님께 순종 (surrender) 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순종이 인생에서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인생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 46: 10).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 운전석앞에 핸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자동차라 할지라도, 한가지 분명한 진리가 있는데, 핸들을 운전하는 운전석은 한 석이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두 사람이 운전하게 되면 굉장히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무리 큰 배를 항해하게 되더라도 배를 움직이는 사람은 선장 한 사람입니다. 선장의 명령에 따라서 배가 항해를 하기도 하고, 정박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키를 가지고 조종하는 배와도 같습니다. 배 안에는 지금까지 선장으로 살았던 자아가 있고, 배 안에 새롭게 주인이 되어서 찾아오신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되어서 인생의 키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인생을 조종할 수도 있고, 주님이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누가 조종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자신이 주인됨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 46: 10).
우리는 인생에서 혼돈과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주님께 드리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혼돈의 상황에서 자신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며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다윗은 사울로 인하여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해하고자 하는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는 광야로 도망하고, 블레셋의 땅으로 가기도 했고 심지어는 모압왕에게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왕이 자신을 해하려 할 때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도망하는 것이어씁니다.
그는 사울 왕을 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지만, 다윗은 전혀 기회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그의 삶과 나라에 임하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 24: 6). 다윗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기꺼이 포기하고 기다릴수 있는 순종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자기 열등에 빠지거나 자신에 대하여 비관적인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인생의 희생자로 스스로를 연민에 빠지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생의 위기와 고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분의 뜻이 임하도록 순종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드릴 때에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순종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 39). 예수님의 기도는 이와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폭풍우의 위기에서 우리의 삶의 항해자가 되셔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우리는 만족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 11-13)
우리는 인생에서 위기와 고난의 시기를 지나게 되면, 우리는 근심과 염려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기도 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하며, 때로는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감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 22-30).
주님은 사람이 아무리 염려한다 할지라도 키가 한 자도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며, 공중의 새도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돌보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무엇을 염려하든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은 전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한 대가로 로마의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전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오히려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 6).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도 염려하지 말고 앞으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어려운 환경이나 핍박에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 가운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어떠한 형편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비천에 처할 수도 있고 풍부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은 배고픔에도 풍부에도 궁핍에도 하나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 13). 사도 바울은 자신은 비록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주님이 힘 주셔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히 이기는 원리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떠한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만족하는 원리를 배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린이들은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그 때 뿐입니다. 어린이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세요. 아이에게 초코렛을 줍니다. 그리고, 다시 그 초코렛을 조금이라도 달라고 하면 인상이 변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울면서 그 초코렛을 주머니에 감추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 아이의 마음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얼마든지 더 많은 초코렛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마음은 오직 자녀만이 줄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불평과 원망은 성숙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항상 불평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주님이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족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순간들을 만나게 되면, 왜 이러한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 아무런 고난이나 시련의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시면서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고통만을 생각하며 아파합니다. 우리는 고통의 이유를 알고, 그것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더 큰 위로와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시간 동안 우리를 테스트하시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면 선생님은 침묵합니다. 그리고, 학생들도 조용히 시험에 집중해야 합니다. 시험을 치르는 교실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은 답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시련이 찾아올 때, 그리고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더욱 담대함과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과 시련이 찾아올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련의 이유보다는, 그 순간에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평안인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찾아올 때에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분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그 분의 능력을 기대하는 신실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 5-6)
인생의 위기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교훈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는 아무리 염려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맡기며 순종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분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 33-34).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목자로 비유하며 그 분을 경배하라고 외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 95:7).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시며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손 안에 있는 양이기에, 지혜로운 양은 목자에게 온전히 맡기듯이 우리의 삶을 맡기는 그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최고의 길이라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서 믿음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미래를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시 37: 18-19) 하나님은 믿음으로 맡기는 자의 삶을 아십니다. 그들은 환난 때에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내 품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있는지요? 여러분의 재정을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에 비밀스러운 죄가 있습니까?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지 않겠습니까?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삶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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