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아들이 누려야 하는 복, 화평

비전의 사람 2024. 11. 23. 21:12

하나님의 아들이 누려야 하는 복, 화평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9).

 

우리의 인생에서 배워야 하는 가장 소중한 기술 중의 하나가 있다면 갈등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삶에서 대인관계에서 찾아오는 갈등을 해결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더욱 비참하게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서로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다보면, 삶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중요한 기술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원리를 배워야 하며, 결혼에서도 갈등을 해결하는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해야 하며, 교회나 가족에서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원리에 대하여 잘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이러한 기술을 배우지 못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그 분들도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나,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갈등들을 잘 해결하는 것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원리들을 배우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원리를 베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훈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어떠한 원리를 적용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화평의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59절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은 다른 사람과 화평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심각한 분쟁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은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무력으로 해결하는 전쟁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갈등, 그리고 종교적인 갈등과 인종적인 편견과 갈등, 더 나아가 문화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화평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은 갈등으로 인하여 인생 자체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음의 문제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다른 사람과 잘못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다른 사람과 깊은 갈등을 맺으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20-21).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게 되며, 그 결과로 기도가 막히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야 하지만,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갖게 되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갈등을 맺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서는,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만일 우리가 아내와 갈등을 갖게 되고 존중으로 아내를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평적으로 맺는 관계는 수직적으로 맺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행복이 막히게 됩니다.

 

우리의 갈등은 행복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성취를 이루었어도 우리가 가정에서 갈등이 있고 교회나 사회에서 외톨이로 살아간다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행복의 씨앗인 평화를 심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니느라.” (3:18). 우리는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화평을 심게 됨으로 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분노를 심게 되면, 자녀들이 우리에게 화를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 사람에게 분노를 심게 되면, 그들이 우리에게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게 대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은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옥수수 씨앗을 심으면, 한 개의 옥수수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수백 배의 옥수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심게 되면, 우리의 삶은 더욱 평화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여섯 가지 단계를 나누고자 합니다. 만일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화해를 구합니다.

 

갈등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는 먼저 화해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이것이 그들의 잘못이야. 그들이 찾아오면 내가 만나서 문제를 해결할거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인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을 만들어 내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의 회복을 소중하게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보다도 관계의 회복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3-2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하나님께 나아와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관계의 회복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관계에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찾아가서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갈등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쓴뿌리와 분노가 있다면, 이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지고 쓴 뿌리가 나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몸안의 질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저절로 낫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갈등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여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갈등을 피하지 말고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갈등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하기에 회피하고 숨게 됩니다.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3:10). 그들은 자신이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거북이처럼 숨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북이가 등밑으로 숨듯이 숨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갈등이 생기면 자신을 멀리 하게 되고 숨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벽을 쌓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벽을 쌓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벽을 쌓게 되면 이제는 다른 사람과 제한적인 범위에서 관계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니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요일 3:1).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을 사랑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은 자로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가족들과 지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가지고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먼저 손을 내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우리가 먼저 화해하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러면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우리는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5)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화해하기로 결단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며 행복의 삶을 되찾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화평을 맺게 됨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공급받아 이제는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에 있는 미움과 분노를 벗어버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우셔서 문제가 해결됨으로 기도가 응답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의 이유와 분노의 문제에 대하여 주님께서 도우시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족이나 결혼의 배우자, 부모님이나 직장의 누군가를 보여주시면서 갈등관계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시는 뜻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갈등을 해결하실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면한다면, 우리는 상대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을 때에, 보통은 상대의 문제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에 관심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결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갈등의 원인이 99%가 상대의 잘못으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 자신이 고백해야 할 잘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갈등의 두 가지의 이유를 보여줍니다.

 

첫째는 자기 중심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안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쉽게 마음이 요동하거나 분노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마음이 자아가 가득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면, 다른 사람의 사소한 잘못에도 크게 화를 내며 분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안을 누리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에도 평안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갈등의 원인은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적인 환경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갈등의 첫 번째 요인은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은 자기를 위한 삶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화를 내고 갈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에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4:1)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갈등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정욕이며 욕심인 것입니다.

 

갈등의 시작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면 외부적인 사람이나 환경에 의하여 화를 내거나 싸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음에서 그러한 의견의 불일치로 인하여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갈등을 겪는 영역이 부부관계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결혼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비결은 배우자를 포용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과 같은 관계를 깨트리는 원인은 미성숙인 것입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상대의 약점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게 되면 우리는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장하면 주위의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게 되면 관계를 해결하기 보다는 관계를 깨트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관계를 깨트려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관계를 회복시킴으로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더욱 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사랑과 지혜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둘째는 교만입니다. 갈등의 두 번째 원인은 교만입니다. 교만한 마음에서 완고한 마음이 자랍니다. 완고한 사람은 상처도 쉽게 받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쉽게 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쉽게 받는 마음의 뒤에는 완고함이 있고 교만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상처를 입게 되면 우리는 갈등의 단계를 들어가는 것입니다. 잠언서 13장에는, “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3:10)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우리는 다툼에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피하는 비결은 겸손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하여, “미안합니다. 나는 내 자신만을 생각했네요.”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자신에 대한 사각 지대가 있습니다. 사각 지대는 우리가 인생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지 못하는 연약함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연약함에 대하여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보고 지적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약함의 지적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7:3,5)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티는 쉽게 보지만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에 대하여 주님이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갈등에 있을 때에 자신의 연약함에서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한 사각 지대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기 위하여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듣고 공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갈등에는 항상 상처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투게 되면,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다투기 때문에 감정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무시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것이며 감정에 큰 손상을 입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가져다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상처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마음에 감추어진 감정적인 필요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19)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하게 되면, 우리는 화도 쉽게 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쉽게 들어야 하며 말하기를 더디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항상 듣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연을 듣기 전에 미리 말함으로 갈등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들의 상처를 듣게 되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으며 그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소중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는,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4-5) 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는 우리에게 자신에게 맞추는 관심을 다른 사람의 필요에도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크게 보는 것입니다. 집중해서 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에서도 자신에게 집중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하기에 그들을 용서하시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15장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 (15:2-3)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판단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이루기 위하여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5. 우리는 사랑으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실은 사랑을 담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교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speak the truth in love)." (4:15)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마음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교훈을 자녀에게 준다 할지라도, 소리를 지르며 교훈을 주게 되면 자녀는 방어하게 될 것이고 한 마디도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듣는 것은 격한 감정입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것은 좋은 교훈보다는 격한 감정과 거친 말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훈계를 할 때도 사랑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교훈을 주게 되면, 그 교훈을 사람들은 더 쉽게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없는 진리는 거절되지만, 사랑으로 말하는 진리는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잠언서 12장에서는,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12:18)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갈등이 있을때에, 어리석은 말은 상처를 주지만 지혜로운 말은 치유를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데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29)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위의 자녀들이나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완벽한 관계를 세워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에서 다툼이나 분쟁이 있을수는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언어를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처를 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툼 중에서 배우자나 자녀들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게 하는 단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6. 우리는 화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화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화해는 관계를 다시 세워가는 것입니다. 화해는 서로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다른 의견들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숙은 비록 다른 의결일지라도 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성숙하여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문제들은 작게 보일 것입니다. 때로는 작은 문제들로 인하여 관계들이 크게 어려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문제들은 적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갈등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전쟁과 테러, 분쟁들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난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최고로 많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인종과 종교의 갈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큰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인간적인 갈등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을 위하여 평화를 만들어주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스도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역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막힌 담을 헐고 회복하도록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증거함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8). 우리가 사람들을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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