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복을 누리는 비결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19-27).
우리나라에서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서점에 가면 성경을 찾을 수 있고, 특히 기독서점에 가면 수많은 스터디 성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극동방송이나 유트브 방송을 통하여 수많은 설교나 말씀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홍수 속에 살아가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축복의 책이지만, 자동적으로 축복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안식과 소망과 지혜, 기쁨과 능력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이 주는 축복들을 저절로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복을 누리는 세 가지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5절이 중심구절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5). 성경은 온전한 율법(the perfect law)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완벽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유를 약속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의 단계를 제시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1).
야고보서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받으라는 헬라야로 손님을 영접하듯이 ‘환영하다’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먼저 말씀을 삶으로 환영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예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말씀이 마음에 심겨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정원과 씨앗의 예화입니다. 성경은 종종 씨앗으로 이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씨뿌리는 자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이며, 이는 우리의 마음에 심겨졌습니다.” 농부가 두 개의 씨를 가지고 두 개의 다른 장소에 심었는데, 추수 때에 수확의 열매가 달랐습니다. 하나는 풍성한 수확을 얻은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빈약한 수확을 얻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요? 토양의 차이인 것입니다. 한 곳에서는 준비가 되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토양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함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말씀으로 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떠한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의 마음은 준비되었지만, 다른 사람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른 태도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누리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1. 주의하라. 우리는 주의깊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19).
우리는 말씀을 듣기에 속히해야 합니다. 즉,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개의 귀와 한 입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말하는 만큼 두 배로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문제들은 대부분 듣고자 하는 태도보다 말하기를 속히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태도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2. 차분하라. “...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19).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기 위해서는 침착해야 합니다. “성내기를 더디 하라.” 우리의 차분한 태도에서 말씀의 수용이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차분해지면, 사람들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도 감정적인 분노에 차있는 사람보다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과 함께 섬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분노에 차있고, 화가나고, 쓴뿌리가 있다면 잘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쓴뿌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감정적인 장벽인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흥분되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는 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날에 교회에 올 때의 감정은 어떠한가요? 여러분은 차분한 태도를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까? 아니면 감정적인 혼란과 쓴뿌리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나요? 우리는 예배를 준비하면서, 마음의 여유와 차분한 마음을 갖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3. 정결하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 (약 1:21).
우리가 씨를 뿌리기 전에, 우리는 먼저 땅에 있는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 의 의미는 헬라어로 귀지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죄가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즉, 우리의 삶에서 바르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적인 쓰레기나 과거의 잘못된 습관, 삶의 죄악들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죄를 제거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정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고백을 통해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우리는 삶에서 범한 죄를 자백함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4. 온유하라. “...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1)
온유한 자는 배우는 자이며, 순종하는 자이며, 겸손한 자이며, 자신을 기꺼히 변화할 수 있는 자입니다. 야고보 기자는 “...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하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의 태도를 가지고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2.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약 1:23-24).
야고보는 말씀을 거울의 예화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울의 목적은 자신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얼굴이 어떠한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거울을 보는 이유는, 출근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에 큰 흠이 없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얼굴에 원하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우리는 적당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거울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고치게 됩니다. 거울은 우리의 외모를 비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성경에서 발견한 적이 있는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히 4:12)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내면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 때는 궁전에서 모든 거울을 치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부족한 부분을 기꺼이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서 자신을 보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는 세 가지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 (약 1:25).
‘들여보다고 있는 자’ 의 의미는 자신을 구부려 집중해서 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부활하신 날 무덤에 들어갔을 때에, 베드로는 허리를 구부려 무덤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조사를 한 것입니다. ‘들여다보다’ 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거울을 자세히 바라보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대충 훓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두 가지를 사용합니다. 사람은 거울을 지나가면, 꼭 자신을 보는 것이 본능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대충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즉시 지나가면서 보지만, 결국은 여러분이 본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대충 읽게 되면 아무것도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세히 살펴서 읽으면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다음의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a, 고백해야 할 죄가 있는가?
b.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가?
c.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
d. 믿어야 할 진리는 무엇인가?
e.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제목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한다면, 우리는 더욱 자세하게 말씀을 묵상하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말씀에 비추는 방법은 먼저 말씀을 읽어야 하며, 그 후에 말씀을 관찰해야 합니다.
2)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5).
영어 kjv 에서는 ‘말씀을 들여보다고(look into)' 이후에, ’continueth therein'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들여보다고, 그 후에 계속해서 들여다본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계속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읽는 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이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묵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에 대하여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면, 이러한 생각에서 걱정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이것을 묵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거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설교 아웃라인을 나누어주는 이유는, 이 말씀을 받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리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그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 (약 1:25).
하나님의 말씀을 암기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을 풍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습관을 갖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한다면, 우리는 더욱 말씀이 주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암송함으로 기억하는 자인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약 1:2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말씀에 자신을 비추게 되면, 그 후에 우리는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삶은,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허물이 있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거울의 유익은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헬라어의 ‘듣는다’ 란 의미는 auditor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학에서 청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대학에서 청강으로 강의를 듣게 되면, 여러분은 학점을 취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시험을 치루지도 않고,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책임을 질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수업 시간에 앉아 듣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듣고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거나, 배운것을 적용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때때로 교회에서 성도들이 청강생으로 예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에 반응하거나 삶의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 말씀에 반응함으로 인하여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우리가 말씀에 반응하여 자신을 변화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지식을 쌓는 것이 우리를 더욱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성숙의 시험은 지식이 아닙니다. 성숙의 시험은 인격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지식이 있지만, 그들은 단지 지식에 만족할 뿐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식은 책임을 낳게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이 배울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약 4:17)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만 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하여 삶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더욱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강하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더욱 복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모든 성도님들이 주일의 말씀을 듣고 삶에 실천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목장의 모임에서 그 실천된 말씀을 나누며 서로를 세워주는 격려하는 모임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는 어리석은 건축자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지만 행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삶이 될 때에, 우리는 더욱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7절에서는,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성숙의 증거는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믿음은 성숙한 삶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씀을 깊이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실천한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1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어생활에서 절제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1:26). 우리가 말씀에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의 말을 절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돌보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우리가 힘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돌봄의 마음이 말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셋째는 정결한 마음입니다.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우리는 영적인 순결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야고보서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야고보 기자는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오늘 말씀을 적용하면서, 여러분 중에는 예배를 위해서 자신을 더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예배에 일찍 참석하여 늦게오던 습관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기도로 자신의 마음을 준비하여 더욱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예배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게을리했던 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사랑함으로 읽고 연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전도와 기도의 삶에서 게을리했다면, 자신의 삶을 변화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교회의 사역에 헌신된 삶을 살아가야 하실 분들도 있습니다. 목장의 사역에 함께 하며, 교회의 찬양사역이나 기타 사역에서 헌신된 삶을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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