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지혜로운 건축가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잠 24: 3-4).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집을 건축하는 것으로 자주 비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며 최선의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과는 어렵고 비참하게 마감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최근에 우리는 윤대통령의 계엄으로 인하여 나라가 큰 혼돈에 빠지고 국민들이 크게 불안해 했건 상황을 만났습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탈선 행위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에 있던 권력자들이 대통령부터 장관 들이 감옥에 가는 것은 하나의 규칙처럼 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구치소에서 자살 시도 까지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들이 권력에 오를 때는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송을 받으며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고 세워야 할 집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권력을 남용함으로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큰 아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높이 올라가는 것만 배웠을 뿐, 참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앞서 가는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거울로 삼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아가는 삶이 될까요?
후회없는 인생이 되기 위한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잠언서 24장에서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집을 지어가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어야 합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잠 24:2). 건물을 짓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도 단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집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가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
지혜로운 자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을 삶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솔로몬은 일천마리의 황소를 하나님께 드리며 왕의 직무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혜와 명예와 금은 보화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신명기는 왕이 된 자는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 17:18-20). 왕이 된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옆에 두고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음으로 왕위가 오랫동안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왕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삶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홀이 대합니다. 비느하스와 홉니라는 두 아들이 성전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음식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가 예배를 무시하고 세상에서 죄를 거침없이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엘리 제사장과 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나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하여 아들을 얻게 되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음성 듣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무엘 선지자를 하나님은 귀하여 여기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를 얻는 자이며, 이러한 자의 삶은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 23:17-18). 지혜의 삶의 유익은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소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낄때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자는 주님이 주시는 소망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도 소망을 갖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2. 인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3:3-4).
인자는 구약의 헤세드라는 단어로서 확고한 사랑, 자비, 신실함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아가페와 같은 사랑입니다. 헤세드는 언약적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출애굽기는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로라.”(출 34:6-7)라고 했습니다.
헤세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해 보여주시는 자비로운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헤세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람들간의 충성심, 신뢰, 그리고 자비로운 행동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룻기는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헤세드)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노라.”(룻 1:8)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과 오르바를 향하여 자신을 헤세드의 사랑으로 대했다고 했습니다.
잠언서는 우리에게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인자의 헤세드의 반대는 인색하고 옹절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작은 것에도 욕심을 부리며 사람들에 대하여 인색하거나 옹졸하기가 쉽습니다. 성경에서 인색하고 옹졸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바로 나발이었습니다. 그는 인색해서 다윗이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도리어 악으로 선을 갚는 자였습니다. 잠언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존귀한 삶의 모습은 인자와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은혜를 베푸는 삶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히 여김을 받는 비결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인자한 마음이었습니다. 조카 롯과 목양지로 인하여 분쟁이 있을 때에 이렇게 답변합니다. “내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며 내가 우하리라.”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아브라함의 넓은 마음이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인자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벨 여왕이 아합을 위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갑니다. 그는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주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아합과 이세벨에게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마음은 그의 형들을 용서한 요셉의 인자한 마음인 것입니다.
잠언서는 인자한 마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까지 말며.” (잠 3:27).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여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5).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 25:21).
우리의 마음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항상 넘쳐서 은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얻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3. 겸손으로 자신을 지킵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18: 12).
스펄젼 목사님은 겸손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믿는 자여, 그대는 아무 자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교만을 물리치라. 그대가 무엇이든지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대가 많은 것을 소유하였어도 오히려 그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빚쟁이란 것을 자랑할 수는 없다. 그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은혜까 없었다면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잠언서에는 교만과 겸손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자는 자신의 힘을 의지함으로 자신을 높이게 됩니다. 자신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만은 멸망의 선봉인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삶이 무너지는가요? 그것은 바로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에서는 다툼이 일어나고 함부로 말하게 되며, 육신의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찾아오는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날마다 주님의 겸손의 마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겸손은 존귀한 자의 삶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같이 종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4). 우리의 삶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우리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 삶이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 23). 사람의 마음이 교만하면 낮아지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영에를 얻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속담에 “지식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오만한 마음에는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얻으려면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탁월한 학교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교는 일년 정도만 다닐정도로 불우했고 스무살 때가지 도끼를 들고 일을 하며 고생했지만, 그의 성공적인 삶의 배경은 그의 겸손이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직업을 열 번이나 바꾸었지만 그는 독학을 하면서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가 그의 표어였습니다. 그는 날마다 책을 읽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젊은 사람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에 힘썼습니다. 그의 세익스피어에 대한 이해는 전문가 수준이었고, 성경지식은 신학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의 업적을 남기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배우기에 힘쓰며 자신을 낮추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언어를 지혜롭게 사용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 21).
우리는 말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표현합니다. 우리의 말에는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실망시키거나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실망한 자에게 힘을 주거나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는 말 한마디로 누군가는 인생의 큰 힘을 얻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하여 인생의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한창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루스벨트는 39세 때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곤란해졌습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 여사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어느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이 재치있는 말에 루즈벨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어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아내의 말 한 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작은 키로 배를 운전하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약 3:4). 우리가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은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피해야 할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것이며(잠 6:19), 옳지 않은 언어 (패역한 입)입니다 (잠 8:13). 또한 다툼을 일으키는 언어를 주의해야 하며, 말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0:19). 우리는 함부로 말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잠 12:18). 우리의 말은 지혜로운 자의 혀와 같아서 듣는 자들에게 양약과 같이 기쁨과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3장은 입을 지키는 자의 유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 13: 2-3). 입의 열매로 인하여 사람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입을 지키는 자는 생명을 보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잘못된 언어로 인하여 허물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자신의 입술을 지킴으로 인하여 지혜를 얻고 듣는 자들에게도 은혜를 끼치는 언어를 사용하기를 소망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5. 명철로 인생을 견고하게 합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잠 24:3).
우리의 인생은 지혜로 건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은 명철입니다. 명철이 무엇인가요? 명철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통찰력의 근원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잠언에서 명철은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 명철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욥기에서는 지혜와 명철에 대하여 이렇게 강조합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 28:28). 우리의 지혜는 주를 경외하는 것이며,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인 것입니다. 즉, 인생의 통찰력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여 악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견고히 하는 비결은 죄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의 최전성기를 맞이하던 인생들이 악의 길에서 타협함으로 인하여 무너지는 모습을 tv 를 통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힘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 힘을 잘못된 곳에 사용함으로 인한 결과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명철은 악을 떠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편 89편에서는 하나니님의 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의라고 했습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시 89:14). 우리의 인생의 기초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가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총리로서 느붓갓네살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벨사왕, 그리고 바사의 다리오왕과 고레스 왕에게 이르기까지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정직함에 있었습니다. 그의 적들이 아무리 허물을 찾으려고 해도 흠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이 명철한 삶인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기고 거절하는 삶이 명철의 삶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철은 악에서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인생들이 죄로 인하여 인생의 계단에서 미끄러지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피하는 길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정직과 순결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집은 몇 년만 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어져야 할 집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우리의 집을 반석 위에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반석 위에 짓는 집의 특징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오늘 우리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되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실을 주의하여 돌아보며 하나님의 지혜로 집을 건축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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