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부르심 (2) - 교제로의 초청

비전의 사람 2014. 1. 25. 17:48

하나님의 부르심 (2) - 교제로의 초청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2:9).

 

창세기의 메시지는 만물의 시작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아담의 타락,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과 그 피조물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으심을 받은 후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 즉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보기에 좋았고 아름다웠으며,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만물을 다스리는 축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은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으며, 둘째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여 지으셨으며, 셋째 하나님의 복을 주심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1:27-28). 인간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다른 피조물과 다른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뱀의 모양으로 찾아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시키게 됩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됨으로 인류의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인 유혹에 빠져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되자 온 인류에게 죄의 어두움과 저주의 굴레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죄로 인하여 찾아온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인가요?

 

죄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59:2). 인간의 죄로 인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를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도 사랑의 관계에서 금이가며 깨어지게 됩니다. 아담은 하와를 원망하기 시작하였고, 가인은 아벨을 시기로 인하여 살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비극은 죄로 인하여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절망의 단계로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셔서 회복시키시며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으로 초청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아담을 향하여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음으로 인하여 영적인 생명체로 서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는 탁월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8:3-5).

 

하나님이 창조하신 달과 별들도 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8:1) 라고 주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생각하시어 지으셨기에 사람에게는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심은 사람의 형상에는 영화와 존귀함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로 인하여 타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화와 존귀함을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영화와 존귀를 회복하려는 본능으로 살아갑니다. 그 본능은 서로의 경쟁으로 이겨야 하며, 정복함으로 영광을 얻으려고 하며 사람 중에서 높은 자들은 존귀의 관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은 오히려 인간의 타락과 부패함만이 드러날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잃어버린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가 자신들에게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수치심에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심을 가리우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수치와 죄를 가리우려는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어서 방황하는 아담을 향하여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 있는지 찾고 계셨나요?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왜 이곳에 숨어 있느냐?” 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질문하시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동산을 거닐며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피조물과 다른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행복을 누려는 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집에서 나와 방황하는 자녀들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며 숨어 지내며 삶의 소망의 이유를 잃어버린 상태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친밀히 누렸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을 교육이나 물질, 권력이나 세상적인 성공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 청소년 수련회에 이시원 시원스쿨 원장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성공과 행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없는 성공은 피폐해진 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물질이나 성공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참다운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이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발견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법으로 무화과 나뭇잎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물질을 벌면 인생의 성공이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세상이 주는 거짓된 믿음인 것입니다. 인생에서 사회적인 높은 지위를 얻으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사회적인 지위는 오히려 공허함을 더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는 참된 만족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어디 있느냐?” 여러분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그 분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분의 목적대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아니면 하나님의 동산에서 떠나 스스로 무화과 잎을 만들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서 있는지를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회복의 은혜로 초청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타락한 인간의 삶은 결국 죄의 저주로 멸망의 삶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전적인 어두움의 인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구원의 길을 내시며 회복의 길로 초청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메시야 즉 인류의 구원자를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315절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라고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메시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하신 주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것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서 살아가는 소망과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기자는 정세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2:15)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사단의 권세를 무너트리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3:21). 가죽옷은 짐승을 잡아서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리워 주기 위해서 공급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뭇잎은 온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가죽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를 입히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가죽옷은 우리의 죄를 가리우고 용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입히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의 죄와 허물의 수치를 완전히 가리우고 용서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허무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고, 그 창조한 자를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43: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어두움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이 만든 무화과 잎으로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우며 거짓된 행복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1). 우리를 창조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명하여 부르시며 너는 내 것이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수치를 세상에서 얻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감추력 하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가죽옷,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었나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의로 옷입었지만, 여러분이 있어야 할 영적인 동산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살아가시나요? 아니면 영적인 메마른 땅에서 세상의 오염된 물을 마시며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동산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는 곳으로 초청하고자 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교제의 친밀함으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의 저주로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하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하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더욱 풍성한 삶으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육신 가운데 살아가며 세상의 죄악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분과의 친밀한 교제로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며 그 분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누리는 삶을 통하여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은 어떠한 삶이 될까요?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여 그 분과의 친밀함 속에 살아가고 있나요?

 

1)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4:26).

 

죄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께로 갈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는 올바른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가인은 자신의 의를 가지고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제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희생된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예배가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가인의 자손들은 그 후에 성을 쌓고 장막에 거하며 육축을 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수금과 퉁소를 불며 음악을 하며,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며 자신들을 위한 삶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셋은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나 예배하지 않지만,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을 만나며 예배함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며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예배를 통하여 친밀함의 교제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과 같이 진실됨으로 나아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그분의 풍성함의 축복을 누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2)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9).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면서 그 관계는 원수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의 후손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세상에 속한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세상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인류가 죄 가운데 지속적인 타락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피조물과 주의 백성들이 죄를 범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사단이 자신의 전략에 성공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아를 제외한 모든 인류가 죄악 가운데 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5).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죄악이 관영하며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것으로 하나님을 근심되게 했습니다. 이때 노아는 의인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9).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삶일까요? 그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노아는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방식이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술에 취해있을 때에,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일에 장가가며 시집가는 삶을 살아갈 때에, 노아는 하나님 중심으로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죄악을 행하고 있을 때에,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가 세상과 성별된 거룩한 삶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았던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였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방주를 예비하여 온 인류 가운데 구원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4:4). 세상과 벗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영적인 간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세상의 가치와 풍속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말씀의 의미는 세상적인 모습인 술 취함과 담배와 도박, 그리고 음란과 방탕과 같은 세상의 죄악에서 자신을 지켜 구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으로 초청되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초청의 메시지를 듣고 돌아와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55:6-7).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세상의 죄악과 불순종의 모습을 버리고 거룩함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세상적인 풍조에 밀려 술취함과 노래방, 그리고 음란한 행실을 따르고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1).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부르십니다. 그 교제의 첫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그 분의 민족을 세우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으로서 세워져야 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고, 가인은 아벨을 죽였으며, 노아 시대에는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했으며, 창세기 11장에서는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때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민족을 세우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세우시며 그의 후손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민족을 세우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백성은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구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삶과 마음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들 이삭을 얻고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 분의 뜻을 보이시며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여호수아와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불순종했던 출애굽의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요셉을 통하여 그를 총리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을 이루어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순종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어떻게 대답을 할수 있나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는 여호와의 동산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모른채 스스로의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우고 있나요?

 

여러분은 친밀한 교제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여러분은 진정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요?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축복의 동산으로 인도하시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