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부르심(3) - 하나님 나라로의 부르심

비전의 사람 2014. 1. 25. 17:49

하나님의 부르심(3) - 하나님 나라로의 부르심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19:4-6).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타는 불꽃나무에서 부르십니다. “ ...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3:4-5).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부르심의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3:9-10).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기에 신발을 벗어 경외심을 보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곳은 거룩한 장소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들어가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난 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향한 출애굽의 이유에 대하여 함께 나누며, 출애굽의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I. 역사적인 배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그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년 동안 그 나라를 섬기게 되며 사대만에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게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13-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에서 400 년 동안 객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재물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훌러 야곱의 시대에 요셉이 종으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고 종살이와 감옥에서의 고난을 견디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주시는 은혜였으며,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한 도구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시대에 흉년이 들자 야곱과 그의 70 여명의 가문이 애굽의 고센 땅에 이주하게 됩니다.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명이었더라.” (46:27). 그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심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됨으로 애굽의 새로운 왕은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나자 삼개 월을 키우다가 마침내 나일강에 상자에 넘어 보내게 됩니다. 바로의 공주에 의해 구조된 모세는 왕자로서 40년간을 살게 되고, 자신의 민족인 히브리 사람이 핍박받는 것을 참지 못하여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의 광야로 도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40년을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며 이제 애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II. 출애굽의 목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억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왕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왕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목적을 이렇게 전달하셨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19:4-6).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왕이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통하여 백성에서 한 나라로 세워지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나라인 것입니다. 애굽은 영적으로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백성들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애굽에 속한 것을 배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노예로서 목적없이 살아가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나라로서 정체성을 세워가야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의 과정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로서 정체성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하 나라로서 세워져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배우며 그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었다고 하십니다. 어두운곳은 영적으로 애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빛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이는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며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며 거룩한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감으로 이 땅에서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구별된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경험해야 할 교훈은 무엇이었나요?

 

1. 그리스도의 속죄를 경험합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2:13).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애굽을 처음 난 것들의 죽음으로써 심판하십니다. 즉 바로의 장자로부터 짐승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므로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심판을 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12:7). 하나님께서는 양의 피로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되면 그 피가 표적이 되어 심판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2:13).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서 그 피를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이 그 집을 넘어가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애굽의 온 땅은 장자를 잃는 심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됩니다. 왜 어린양의 피가 이토록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어린양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유월절 양이 곧 그리스도의 희생이 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유월절의 어린 양은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것을 믿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자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9:22)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속죄의 확신이 있는지요? 여러분의 검은 죄가 눈과 같이 희어졌습니까? 여러분의 죄가 속죄되었는지요?

 

하나님의 제사장과 거룩한 백성으로의 삶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속죄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속죄함이 없다면 아직 애굽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함이 없다면 아직 죄악 가운데 어두운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얻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제사장과 거룩한 백성으로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자신의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13:21-22).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거할 때는 바로왕의 종으로서 노역을 하며 거주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고통과 압제로 인한 아픔이 가득했습니다. 심지어는 아들을 낳으면 죽여야 하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위로하거나 도우지 못했습니다. 이는 마치 죄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은 억눌리며 영적인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고, 포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하여 인도하셨으며, 더 나아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13:21-22).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식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에 시편 23편과 같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만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쉬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의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보면 마음을 바꾸어 애굽으로 돌아갈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13:17-18).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홍해를 만남이 큰 재앙과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적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우리의 눈과 귀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광야와 위험한 강의 길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불순종하고 불평하며 자신의 길로 돌아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 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안전한 삶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기뻐하며 그 분과 동행하며 그 분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길때가 가장 안전하고 보증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41:8-10, 1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43:1-3).

 

하나님은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나거나 강을 건널 때도 함께 하시며 불 가운데로 행할 때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시며, 예배를 통하여 인도하시며, 목자의 설교를 통하여 인도하시는 그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적인 애굽인 세상의 가치와 풍속의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앞에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기도하고 있나요? 아니면 자아 중심적인 욕심에 이끌려 그 것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과 위험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최선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순종이 이루어질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살아갑니다.

“...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15).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양식이 없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와 떡을 회상하며 차라리 그 시절이 좋았다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매일 아침에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고 했습니다. 만나의 맛은 꿀 섞은 과자와 같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만나는 생명을 지키는데 필수적인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공급받음으로서 광야의 삶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만나를 내리셨듯이,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서 온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라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6:48-5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죽지 않도록 내려온 만나와 같이, 우리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주시는 생명의 떡인 것입니다.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날마다 생명의 양식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63) 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4:4)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고 살았듯이, 우리도 하늘에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매일 먹음으로 건강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며 소생시키는 원동력이 되며, 생명의 능력을 얻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날마다 생명의 양식을 얻어야 합니다. 영성가인 유진 피터슨은 그의 책 이 책을 먹으라에서 단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먹으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강조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먹고 산다. 성경은 음식이 인간의 몸에 영양분을 주듯이 거룩한 공동체에 영양분을 준다. 책을 먹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의 영혼과 몸에 건강함과 온전함, 생명력과 거룩을 준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게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영혼과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4:12)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속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심어주게 됨으로 삶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임을 깨닫고 날마다 영적인 만나인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원리인 것입니다.

 

4. 세상과 구별되는 성경적인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0:1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십계명과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십계명과 더불어 제사법,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규율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다른 우상을 배격할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더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모님을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살인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며, 도적질이나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며, 그의 소유를 탐내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면, 그들은 세상과 다른 기준과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이방인들과 뚜렷하게 구별되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대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할 땅에서 크게 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0:12-1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삶의 명확한 기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천년 동안 흩어졌다가 이스라엘 땅에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킨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율법과 규례를 지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명확한 삶의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와 가치관이 교회에 침투하여 하나님 말씀의 명확한 기준을 흐리게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가고자 할때에 명확한 기준이 실종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주신 삶의 원리를 삶에 적용하고 성경적인 가치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성장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좋은 땅에 뿌려져 백배의 결실을 맺는 비유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15).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결국은 백배의 결실을 맺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확한 기준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를 드립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25:8-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장하여 이스라엘의 나라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단지 나라를 세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인도하셨음을 출애굽기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29:45-4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며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며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예배이며 그러한 임재는 우리 삶의 큰 특권이며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도록 하십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25: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예배하였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으로 그 분의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처소였습니다. 짐승의 피로써 자신을 정결케 하였고,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갔던 것입니다. 제사장은 성소의 뜰에 있는 놋제단에서 짐승을 잡아 자신을 정결케 하고, 물두멍에서 자신을 씻음으로 정결케 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자신을 정결케 한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소에는 진설병을 두는 상과 등잔대와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이는 말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빛되신 주님,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서 일년에 한번 자비석 위에 피를 뿌림으로 백성들의 죄를 정결케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죄인된 인간이 피로 정결케 된 후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성막이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주의 자녀들은 매주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소중한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단지 의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말씀과 성령안에서 만남으로 새로운 힘과 생명력을 얻는 놀라운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를 사모하며, 이러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누렸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나누었습니다. 이는 보혈의 능력으로 인한 구속이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이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로 생명을 얻는 것이며, 율법과 계명으로 인한 성경적인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며, 성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과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러한 삶을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