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1) - 산 소망으로 살아가라.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베드로전서는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고 있는 소아시아의 성도들에게 보내어졌습니다. 고난의 원인이 주님을 믿는 믿음이기에 그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이해하며 믿음으로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고난 받다’라는 동사가 12회가 언급되어 있을 만큼 고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전통적인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네로 황제로부터 극심한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에 황제 숭배를 만들어 로마 황제를 향하여 분향하며 주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핍박의 대상이 되는데, 그리스도인들을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한 황제가 네로 황제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에 큰 화재가 나자 그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핍박을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고난에서 산소망을 가지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르게 대처해야 할 원리를 제시하기 위하여 베드로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1장에서는 핍박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승리하기 위하여 붙잡아야 할 소망의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산소망을 간직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릿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산 소망이란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한때 소망을 가지고 있다가 사라지는 과거와 현재의 소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영원한 소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소중한 보배입니다.
지난 해에 벤츠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중년의 남성이 벤츠 사무실 앞에서 골프채로 자신이 구입한 벤츠 차량을 부수는 장면이 방송에 나와 큰 이슈를 일으켰습니다. 억대가 넘는 벤츠 차량을 사정없이 깨트리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습니다. 그 사정은 이렇습니다. 그 분의 오랫동안 소원이 벤츠 차량을 구입하여 모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벤츠 승용차를 모는 것이 인생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오랫동안 모은 돈과 할부를 합쳐서 차량을 구입했는데, 그 벤츠가 주행중에 멈추면서 가족의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벤츠 회사에 크레임을 걸어도 수리도 성의 없이 대하는 모습에 큰 실망을 느껴서 분노를 벤츠 차량을 부수면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그와 인터뷰를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벤츠 차량을 부순 이유는 자신의 꿈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꿈을 갖고 마침내 벤츠 차량을 소유했는데, 그 차량이 주행중에 멈추면서 오히려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때에 그는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의 꿈을 벤츠를 소유하고 주행하는 것에 둔 모습에서 이 세상 사람들의 꿈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꿈은 영원한 소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의 꿈인 것입니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며 자신에게 실망을 주는 꿈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하며 살아있는 소망에 대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I. 우리가 산 소망의 이유를 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망은 영원하며 진실된 소망인가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기다리며 살아가는지요? 우리가 품은 소망은 하늘나라를 향한 참된 소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거듭나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거듭나다’의 의미는 ‘다시 태어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잇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비밀이자 축복의 열쇠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적인 지혜와 능력의 역사로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전 1:2).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을 섭리하셨고 우리의 구원을 미리 아셨고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되어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빈다. 우리가 거듭나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성도로 불리움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자이며, 거룩의 의미는 구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베드로전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시작은 거듭남의 경험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대한 산소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남의 역사는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값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우리의 구원은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망령된 행실은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행실인데, 이는 어리석거나 가치없는 행실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받기 이전에 살았던 우상 숭배의 삶과 같이 허무하고 어리석은 삶으로 어두움의 삶에 굴복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러한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구속된 것’은 전쟁 포로나 잡혀 간 노예에 대한 몸값으로 지불된 돈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그 대가를 치루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은 당시의 사람들이 지불했던 돈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속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산소망으로서 영원한 소망을 주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며 복음의 살아있는 말씀이 영원한 천국에서 그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기에 우리의 구원과 소망도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이 준비되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기업은 구약에서는 재산이나 소유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업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천국에서의 영원한 상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양자삼으신 우리에게 주시는 상속이며 영원한 상급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기업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기업을 하늘에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영원한 처소이며 면류관이며, 상급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준비된 상급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하고 썩어지지만, 하늘에 준비된 상급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천국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19-20). 주님께서는 하늘에 우리가 쌓아두는 보물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전적인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과 보물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심은 것에 대한 천국에서의 보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상급과 면류관이 하나도 땅에서 썩어지지 않고 천국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그 상급이 나타나 우리에게 큰 은혜와 기쁨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가져올 은혜를 소망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벧전 1:13). 우리에게 나타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상급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기에,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으로 고난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 땅의 고난만을 바라본다면 낙심과 좌절로 인하여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은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소망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고난과 시련을 만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3. 고난의 연단으로 정금같은 믿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사도 베드로는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만 결국은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인생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시험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잠간 근심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고난의 목적과 섭리를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이 찾아올 때에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우리로 하여금 정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시련에서 시련의 뜻은 ‘증명, 시험(test), 시련(trial)’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금, 은과 같은 광석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 불로 제련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시련이 지속적인 연단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 순종하는 자녀로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믿음의 시련이 연단의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연단을 통과하고 난 후에는 순결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주님께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어떠한 절망속에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 분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심으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욥은 고난속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욥은 고난에서 그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정금과 같이 빚어지는 모습을 고대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지식과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며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곳은 고난의 현장에서 용광로와 같은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고난의 현장에서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주님의 오실 날에 칭찬과 존귀를 얻는 모습에서 소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II. 산 소망을 가진 성도가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요?
천국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의 행실은 어떠해야 하는가요? 고난의 현장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요?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나그네와 행인같은 인생이라고 햇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간ㅌ은 너희를 권하노니...” (벧전 2:11).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베드로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두 가지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삶과 구원받고 난 후의 삶인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삶은 육신적인 삶이며 세상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4-15). 이제는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의 사욕을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전의 사욕은 육체의 욕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살아갈 때에 살았던 정욕적인 삶이며 세상적이고 죄악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3-14). 이전의 사욕은 방탕이며 술 취하는 것이며 음란과 간음과 같이 호색하며 다투며 시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는 육신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자삼은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삶을 살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주님께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따라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판단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행실을 주목하여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나그네의 길이 거룩하여 세상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세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2. 우리는 형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 1:2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의 증거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형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영혼이 깨끗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될 때에 순수한 마음과 믿음으로 형제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진리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순종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아갈 때에 영혼이 깨끗해지면서 형제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혼이 세상의 가치와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으며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정욕과 소욕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진리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며, 그 결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7절은 ‘형제를 사랑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 8절은,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교회의 공동체는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교회의 공동체에서 사랑과 안식을 누리는 것은 큰 힘을 주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나그네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진실된 사랑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원천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어서 삶의 소망까지 끊어지는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순간에 크게 기뻐할 수 있는지요? 자신이 원했던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이 끊어진다 할지라도 주님이 가져다주시는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인내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업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가 되고 있기에 우리는 산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맘아 영혼의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거룩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믿음으로 굳건히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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