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베드로전서(6) - 공동체를 세우는 영적 원리 (벧전 3:8-12).

비전의 사람 2016. 5. 14. 19:14

베드로전서(6) - 공동체를 세우는 영적 원리 (벧전 3:8-12).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공동체는 하나님의 섭리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서는 공동체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식물들은 거친 산에서 군락을 이루어 함께 생존해가기도 하고, 야생동물들도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험난한 환경들을 이기며 함께 생존해갑니다.

 

남극 지방의 혹한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춥습니다. 한겨울의 기온은 영하 60, 70도까지 내려갑니다. 남극은 절기가 한반도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8월이 가장 춥다고 합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생물은 살아갑니다. 특히 펭귄의 월동 지혜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펭귄 무리는 극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는 것이 생태계의 철칙이지만, 펭귄은 반대로 가장 추운 곳을 찾게 됩니다. 이는 강풍을 피하려는 그들의 지혜라고 합니다. 극점에 도달한 펭귄 무리는 서로 몸을 맞대고 촘촘히 포개 앉아 원을 만듭니다. 그런 상태로 춥고 캄캄한 겨울을 보내는데, 그들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가혹한 추위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자리다툼을 자제한 채 하나로 뭉치는 지혜가 펭귄의 생존 전략입니다. 펭귄은 자신의 체온을 나눔으로써 상대방의 체온을 자신의 것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찬 바람을 많이 맞는 바깥쪽 펭귄들과 안쪽에서 따뜻하게 보호를 받던 펭귄들이 서로 교대하면서 서로를 지켜 준다고 합니다. 아빠 펭귄이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암마 펭귄은 먼 바다로 가서 음식을 사냥하러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달동안 알을 품고 부화하게 되면 아빠 펭귄은 위속에 저장했던 음식을 토해내서 아기 펭귄을 먹이게 되고, 엄마 펭귄도 이 쯤에 돌아와서 음식을 아기 펭귄에게 공급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빠 펭귄은 음식을 구하러 바다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공동체는 서로를 세우는 힘이 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전도서에서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4:12)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상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가정도 가족의 소중한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며 삶을 배우며 성장해 갑니다. 또한 교회도 소중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주님의 몸으로서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를 사랑하며 의존하며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5) 라고 가르치며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영적 생활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회라는 영적인 공동체가 소중한가요?

1. 왜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가 필요한가요?

 

주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심으로 그 분의 몸인 교회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의 소중함이 무엇인가요?

 

1)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1:23).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이 머리가 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인 양분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교회만큼 신비롭고 영적인 기관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이기에 두 가지가 기초가 되는 곳입니다. 하나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기에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진리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변해도 교회는 믿음으로 진리를 지키는 곳입니다.

 

2) 교회는 영적으로 성장하는 요람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4:15).

 

영적인 성장은 교회를 떠나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지체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장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으며, 지체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함께 사랑하며 용서하는 과정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3) 교회는 영적 전투의 전초기지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6:11).

 

우리는 세상에서 영적 전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세속의 가치관과 사탄의 교리들, 타락한 대주문화들이 우리의 삶을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며 등대의 역할을 하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기둥인 교회와 함께 함으로 세상의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으며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을 중심으로 영적인 삶이 이루어졌습니다. 신약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우리의 영적 삶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세워지는 비결은 교회 안에서 함께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서는 영적인 삶이나 성장이 어렵듯이, 우리의 삶도 교회를 사랑하며 그 안에서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교회의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세상에서 교회는 영적인 안식처이며 도피처입니다. 세상에서 힘들고 무거운 짐으로 지쳐할 때에 교회에서의 예배와 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며 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이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세워가야 합니다. 교회의 사역자나 직분자들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를 사랑하며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교회의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벧전 3:8).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체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뜻대로 세워지며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나뉘어지는 것은 교회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로 세워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아젠다, 즉 의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공동체안으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미성숙했고 육신적이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됨을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마음을 합하지 않고 분당을 만들어 리더십에 도전하고, 서로 분열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날 중동 지역의 시리아와 같은 나라는 수년째 내전을 하면서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수만명의 생명을 잃는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함으로 나라는 지극히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지금도 큰 고통으로 사람들을 테러와 전쟁으로 희생되고 있습니다.

 

건물들이 세워지기 위해서 구조물들이 연결되고 벽돌들이 서로 연결되어 견고한 건물이 세워지듯이,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이와같이 서로 연합함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합하되 복음 전도를 위해서 연합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교회 건축을 앞두고 마음이 나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합하는 비결은 교회의 건축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섬기는 자들을 격려하며 기도로 중보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가 하나됨으로 교회의 큰 사역이 진행되도록 함께 기도하는 사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이 나뉘어지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나뉘어지면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온 백성들과 마음을 합하여 위대한 사역이 일어났듯이, 우리도 마음을 합하여 위대한 사역인 교회 건축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서로 체휼해야 합니다.

“... 체휼하며... 불쌍히 여기며...” (벧전 3:8).

 

체휼의 의미는 동정심이 가득하고, 감정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체휼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함께 기도함으로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목장 모임을 통하여 함께 삶을 나누며 함께 아파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랑의 헌금으로 물질적으로 돕기도 합니다. 지난 번에 성도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자발적으로 사랑의 헌금을 해 주셔서 어려움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함께 어려움을 공감하며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려운 과부들을 위해서 구제로 도왔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는 온 교회가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저의 삶에서 어려울 때에 함께 하는 교회의 큰 사랑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저의 가정의 애경사때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해 주신 것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 형제를 사랑하며 ...” (벧전 3:8).

 

교회에서 발견하는 원리는 서로 사랑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교회됨의 표식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듯이,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참된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함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랑은 형제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절망중에 있는 지체들에게 큰 힘을 주는 양약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저명한 소아과 전문의는 체중 미달의 연약한 어린이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회진할 때 아이의 진료기록표에다 다음과 같은 처방을 써놓는다고 합니다. “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애정이 필요한 것은 갓 태어난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신체적 질병이 대부분 불안이나 고독, 그리고 버림받는다는 느낌에 기인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합니다. 이와같이 영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치유를 경험하며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 겸손하며.” (벧전 3:8).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겸손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겸손이란 우리 그리스도인의 필수 덕목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6-7).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낙타와 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주인이 짐을 맡기는 낙타를 사랑하듯이, 우리 하나님은 겸손하게 무릎꿇고 순종하는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는 역사를 연구하면서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첫째는 개인이나 국가가 권세욕에 날뛰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모든 악을 빠짐없이 분쇄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벌이 꽃에서 꿀을 강탈하지만 그 강탈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개인의 삶과 역사의 진행에 상실이 있지만 그 상실 후에 열매가 맺게 되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당장 전개되는 현상에 교만해지거나 혹은 의문을 품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기에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시편149:4).

 

우리가 교회를 섬기며 세우는 비결은 주님을 높이며 스스로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높은 산의 나무는 거친 비바람을 맞으며 견디는데 그 비결은 자신을 낮추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앉은뱅이와 같이 거친 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과정에서 자신을 낮춘 나무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며 귀한 일꾼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낮추시는 과정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 질때에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자아를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5) 우리는 복의 통로가 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그리스도인은 항상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축복의 사람이 되고자 할 때에 넘어야 할 장애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를 모욕하거나 욕설을 하는 사람을 향하여 그리스도인다운 대처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의 의미는 가볍게 할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물어뜯어서 공적으로 모욕을 가하며 그의 명예를 해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어떤 날카로운 기구를 가진 것처럼 욕설로써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욕과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종류의 앙갚음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조차도 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모욕과 상처에 대하여 어떠한 모양으로도 복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본성을 성령의 능력으로 극복하고 복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에게 보복을 하지 않아야 할뿐더러, 오히려 잘 되도록 복을 비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고난을 위한 부르심인데, 원수에게 복을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 3:10-11).

 

우리가 주님이 주신 영생을 사랑하며 주님 안에서 좋은 날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원천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악한 말이 된다면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항해하는 배의 키와 같아서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날을 원하면 좋은 말을 해야 하며, 행복한 날을 원하면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메아리가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믿음이며 영성이며 인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에서 궤휼을 금해야 합니다. 궤휼은 속임수입니다. 궤휼은 다른 사람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거짓되는 것은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해야 합니다. 화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지체의 유익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에서 화평의 관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와 이와 같이 복을 구하며 화평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은혜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체에서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과 지체들에게 나아가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먼저는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향한 열심을 품어야 하며 지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존중과 사랑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지체들을 향한 섬김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교회와 지체들을 더욱 사랑하며 비전을 향하여 함께 달려가는 믿음의 지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