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5) - 예수님처럼 사랑하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 관계입니다. 관계의 소중함을 일찍 깨닫는 것만큼 지혜를 얻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관계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관계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사후에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늘 깨어진 관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축복은 축복의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자녀들의 삶이 복이 넘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전에 가정의 문제로 고민하는 가장을 만났습니다.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아내가 집을 며칠째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딸이 부모님을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딸에게 호통을 치며 폭력을 행사했고, 딸은 아빠에게 대들면서 순식간에 분노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분노를 폭발하며 남편을 무시하고 집을 나가 버린 것입니다. 남편의 고민은 부부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인제 함께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이미지는 따뜻하고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보금자리입니다. 늦은 저녁에 수많은 집들이 불을 켜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에, 마음의 평안이 있는 것은 내가 갈수 있는 가족이 있고 집이 있는 것입니다. 하루종일 서울에서 업무를 다하고 늦은 시간에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돌아갈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면 집과 가족은 있지만 내가 돌아갈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 나를 반겨줄 배우자와 자녀들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그러기에, 우리는 관계가 너무나 소중함을 깨닫고 관계를 잘 세우기 위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처럼 예수님이 사랑하신 사랑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능력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진리의 말씀을 붙들게 되면 우리의 관계는 훨씬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같이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서로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요일 1:7).
교제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가깝게 지내는 것”입니다. 교제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주님과 교제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주님과의 교제는 그 분의 임재 안에서 풍성한 사랑과 기쁨, 그리고 은혜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예배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교제가 충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의 사랑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지체들이나 가족 간에도 충분한 교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화를 나누면서 기사를 검색하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문자나 카톡을 보내곤 합니다. 교제가 깊어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체들이나 가족들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서의 교제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사귐이란 교제입니다. 진정한 교제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며 존중함으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교제를 통햇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이 풍성한 교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목장과 제자 사역의 활성화를 통해서 교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교제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회복시켜 주는 삶은 무척 소중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2.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인하여 우리가 얻은 큰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용서를 받았지만, 우리는 삶에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마음과 육신이 있기에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복수 또는 원망의 마음이 가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일만 달란트의 빛을 탕감받게 되었지만, 자신은 백 데나리온의 적은 돈을 탕감해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은혜의 누리지 못하고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고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4-35).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의 소중함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용서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용서의 주간'이라는 관습을 갖고 있는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일년 기후 중 건조기가 되면 이 기간에는 모든 이웃과 함께 서로의 실수, 부족간의 오해, 상상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미움 등 "상대방이 나에게 지은 모든 죄를 나는 용서한다"는 서약을 하고 축제를 벌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항상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비결은 원망과 불평을 버리는 것이고, 더 나아가 분노와 미움을 버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마음으로 자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승리하는 삶의 원리는 용서에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 5:15).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수혜자입니다. 그 분의 은혜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주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항상 은혜의 강물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함으로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가득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이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은혜를 베푸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듯이, 우리는 받은 은혜를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은혜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베푸는 삶은 깨어진 관계가 회복이 되며 사랑으로 더욱 굳건해 지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굳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부모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넘치는 사랑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녀들에게 흐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부모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관계에서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삶이 더욱 복됨을 깨닫고 나누며 베푸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칭찬합니다. 그들이 드린 물질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6, 18). 우리의 삶이 은혜의 삶이 되는 것은 주님을 신뢰 하면서 가족과 지체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은혜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은혜는 복음이며 사랑, 그리고 물질 및 봉사와 섬김인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누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선교와 구제를 통해서 나누어야 하며 더 나아가 주위의 지체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은혜가 더욱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4. 우리는 희생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진정한 사랑은 희생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희생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우리가 가족을 소중히 여기듯, 믿음의 지체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희생하는 삶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모습은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군가에 대하여 오래 참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라나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사랑은 그 이야기를 끊지 않고 마지막까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다음에 만나더라도 다시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다음은 온유입니다. 온유는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필요를 이해하고 채워줄 수 있는 마음이 온유인 것입니다. 아픈 사람의 옆에서 병실을 지켜주면서 시간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며,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온유함으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 때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안함을 느끼기에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시기와 자랑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면, 자신을 포장하여 스스로 높아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모든 보화와 영광을 소유했기에 그 자체로 부요한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작은 행동이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볼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견고해질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고 믿음으로 사랑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자아 중심적인 삶은 관계의 다리를 끊어버리지만, 사랑은 다리를 높아 서로를 신뢰하게 하고 풍요한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풍족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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