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관계 (4) -논쟁을 피하는 원리 (약 4:1-10)  

비전의 사람 2017. 1. 20. 00:07

관계 (4) -논쟁을 피하는 원리 (4:1-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4:10)

 

사람들은 논쟁하기를 좋아하고, 결국 논쟁에서 다툼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자녀들과 논쟁하거나, 부부간의 논쟁이 심각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논쟁의 원인과 더불어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 논쟁의 이유와 그것에 대한 해결책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인생에서 자주 다투며 갈등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과 논쟁을 피하는 원리를 배운다면, 여러분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면서, 우리에게 논쟁의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1절은 갈등의 원인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좋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I. 논쟁의 이유는 싸우는 정욕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좋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4:1)

 

야고보서는 논쟁의 이유는 싸우는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충돌할 때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싸우는 정욕인 것입니다. 어떠한 욕구가 갈등을 일으키게 하나요? 성경은 갈등을 일으키는 욕구를 정욕(lust)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갈등을 일으키는 세 가지의 욕구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다스리기만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합법적인 욕구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구는 하나님이 주신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를 다른 사람보다 우선시하거나, 인생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를 둔다면, 이러한 욕구는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욕구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1.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desire to have).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desire to have)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4:2)

 

우리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desire to have)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4:1). 사람들이 다투고 싸우는 이유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 정욕의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 외에 다른 것들에 대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싸워서라도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탐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에는 사람들이 소유에 집착하며 사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소유와 비교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에 관계없이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허함을 많은 소유로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것은 결코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공허함을 남겨주는 것입니다.

 

2. 느끼고자 하는 욕구(desire to feel)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좋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pleasure, lust)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4:1)

 

야고보서 41절에서는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 육신의 정욕이 원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정욕을 즐거움, 정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되면, 사람은 관계속에서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느끼고자 하는 욕구는 편안한 느낌을 추구하는 것이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질서 가운데 채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육신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은 세상적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16절에서는 이는 세상이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라고 하면서 세상이 우리를 유혹하는 세 가지의 정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느끼고자 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생을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즐기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우리의 삶이 큰 곤경에 처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즐거움과 쾌락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배우자와의 갈등이 시작되며 인생의 큰 고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질서 안에서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이 주신 질서안에서 삶의 여유를 찾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3. 높아지고자 하는 욕구(desire to be)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 (13:10).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은 교만, 힘과 인기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일등이 되어야 해.” 이러한 마음은 자신을 항상 우선시하는 욕구인 것입니다. 이는 자아 중심적인 사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는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높이 보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 교만한 마음인 것입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너무나 교만하여 타협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교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를 거절하며 도저히 순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여러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논쟁한 적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마음의 교만함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은 논쟁을 일으킵니다. 모든 다툼의 원인은 이와 같이 교만한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여러분이 논쟁을 하게 되면, 잠시 다툼을 멈추고 이러한 질문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가치가 있는 싸움인가?”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교만이 주는 두 가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2-3). 야고보는 우리에게 우리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두 가지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근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람과 다투어서 사람들로부터 얻으려고 하기에 갈등과 논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필요를 채울 것이다. 기도하라.” 고 하십니다.

 

둘째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곤 합니다.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은 아시고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유를 채우시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9절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기 보다는 다투기를 좋아하고, 우리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님으로부터 얻기 보다는 사람들과 논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사람을 바라보게 되면, 이것이 다툼을 일으키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의 증거입니다.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나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그 분의 필요를 더욱 느낀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더욱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없는 삶은 그 자체가 교만한 마음의 증거인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더욱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더욱 평화를 누리며, 염려가 사라지고, 논쟁이나 다툼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교만이 논쟁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은 무엇인가요?

 

II. 논쟁의 해결책은 겸손입니다.

 

논쟁의 해결책은 겸손입니다.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주 안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4: 6, 10).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우리는 관계나 결혼생활, 환경의 문제에서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교만은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만, 우리의 겸손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며 때에 맞는 은혜를 공급하심으로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다툼을 그치기 위하여,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논쟁이나 다툼이 배우자나 자녀일 수 있고, 직장에서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다음의 네 가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4:7).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노력을 포기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1절에서 “...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다른 사람과 일어나는 다툼은 마음의 갈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싸우는 정욕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갈등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내적 전쟁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평안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의 갈등은 누가 우리의 삶을 다스리느냐 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삶을 다스리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뜻과 다르게 되면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계시다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하여 크게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2.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7).

 

사탄은 어떻게 역사하는가요? 사탄은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이용합니다. 특히 우리의 상처받은 교만을 이용하곤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듣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교만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사탄이 주는 생각을 인식하고, 그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탄을 대적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을 인용함으로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우리도 논쟁이나 다툼을 하면 잠언 1310절의 말씀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교만에서는 다툼이 일어날뿐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교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복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변화받고 성숙해 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겸손케 함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4:10).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높아지는 비결은 먼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우리가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높임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대적해야 하며, 당신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나아가,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며, 기꺼이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게 되면, 우리는 더욱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