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관계(6) - 섬기는 삶의 가치  

비전의 사람 2017. 1. 20. 00:10

관계(6) - 섬기는 삶의 가치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3:11-12).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높은 자리를 좋아했고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구가 마음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로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숨겨진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낮은 위치에서 섬기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낮아 지셔서 섬기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7-8).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종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고,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의 본질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며, 우리를 섬기신 희생이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섬기셨기에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하사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표어가 있습니다. “섬기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서브(섬김)를 잘 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브는 경기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테크닉입니다. 서브 하나로 많은 점수를 거둬들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서브를 잘 해야 합니다. 인생은 섬김을 잘 해야 합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얼마나 서브를 잘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제자로서 그 분을 섬겨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 서로를 향한 섬김의 모습을 갖는 것이 소중합니다. 왜 우리의 섬김이 소중할까요? 그 소중한 섬김의 가치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우리가 사람을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이러한 말씀으로 교훈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고.” (25: 35-40).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을 섬기며 돌보아 드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가 주린 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며, 병든 자를 돌보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누구인가? 물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겨야 할 이 땅의 예수는 우리의 이웃이며 지체들이며 가족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주님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진실로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섬겨야 할 예수는 곧 우리의 가족이며, 지체들이며 이웃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필요를 가진 자를 외면하는 것은 곧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25:45). 주님은 어렵고 힘든 자들을 외면한 것이 주님을 외면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가정에서 배우자와 부모님, 그리고 교회에서는 지체들, 사회에서는 주위의 어려운 자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예수는 곧 우리 주위에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6:6-7). 우리가 사람들을 섬기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줄을 앎이라.” (6:9). 우리가 각 사람에게 선을 행하게 되면 주님이 받으신 것을 간주하고 그대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우리가 사람을 섬기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섬기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하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제자들은 자신들 중에서 높아지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나라에서 영광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었습니다. 그대 주님께서는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세를 부리기를 좋아하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2-44). 주님께서는 섬김의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분명히 하셨고, 제자들에게도 섬기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4-15). 주님은 제자들을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서로의 필요를 보면서 섬겨 주는 것은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한때 성공회의 감독이 되기를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글이라는 청년이 구세군에 지원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부스 장군은 그의 지원을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그에게 겸손한 마음을 키워 주기 위해 다른 훈련생들의 군화를 닦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낙심한 브랭글은 속으로 내가 군화나 닦으려고 내 꿈을 좇아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어부들의 발위로 허리를 굽히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저는 그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 올포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

 

우리의 섬김은 자연적인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섬김은 지치게 되고 모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주님의 심장으로 섬기는 것은 섬길수록 기쁨이 더해지며 감격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유언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한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거창한 장례식을 삼가해주시오. 그리고 긴 찬사도 삼가주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도 말하지 말아 주시오 나의 학벌도, 그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마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기위해, 헐벗은 사람들에 옷을 주기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시오. 내 생애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다가 갔다고 뭇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다가 갔다고 말해 주기를 나는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마틴 루터 킹과 같이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섬기며 병든 자를 돌보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카톨릭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이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간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인간적인 교훈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평생을 바친 희생적인 삶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희생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거창한 섬김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섬겨야 할 예수가 배우자이며 교회의 지체들이며, 가까운 이웃임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자세는 큰 변화가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게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줄을 앎이라.” (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