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1)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주는 교훈 (마 1:1-17)

비전의 사람 2018. 3. 1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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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1)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주는 교훈 (1:1-1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

 

마태복음은 사도 마태가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알패오의 아들로서 이름은 레위였습니다. 마태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이전에는 세리로서 생활했습니다. 세리는 로마를 위해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했기에 유대인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구원을 받게 되고, 주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마태복음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갈망했던 메시야로 소개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증거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지게 될 것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의 시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원으로 시작합니다. 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시작으로 마태복음을 시작할까요? 이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왕의 혈통을 이은 합법적인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는 단지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의 혈통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 우리는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게 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합법적인 아버지인 요셉의 혈통을 추적해서 다윗과 아브라함의 족보를 제시하고 있고, 누가는 마리아의 아버지인 헬리를 통해서 다윗과 아브라함, 더 나아가 아담까지의 혈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인 요셉과 어머니인 마리아가 모두 다윗 왕의 혈통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 라는 말로 첫 번째 절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위대함을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짓듯이,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1).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라고 발음하게 됩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수아라고 이름을 지어주게 됩니다. 천사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 외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히브리 단어는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는 유대인들이 기다려온 다윗의 자손으로서 다스릴 왕을 의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통에서 메시야가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서 고통에서 해방시키기를 고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온 인류를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였습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서 소개하며 그 분을 믿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서 주시는 영적인 통찰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열심히 그 뜻을 성취하시는 영적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그 분의 말씀과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

 

예수 그리스도는 갑작스럽게 이 땅에 태어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말씀하신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로 인하여 타락하게 되자,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에덴 동산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사탄과 원수가 될 것이고,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15).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성취해 가시면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에게는 믿음의 아버지이며 조상입니다.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민족의 아버지로 세우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1:2)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신 언약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브라함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2: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그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천년 만에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음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증거됨으로 모든 족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복을 누리는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부으셔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하나님은 다윗의 나라가 영원히 보전될 것이라고 하셨고, 다윗의 왕권이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견고히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들이 솔로몬 이후로 죄를 범하면서 그 나라가 무너지기도 하고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 이후로 이스라엘 나라에는 페르시아나 그리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속국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를 간절히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눈에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무가치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건물의 중심을 잡는 모퉁이 돌로서 견고하게 하는 소중한 주춧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영원한 왕으로서 다윗의 보좌에 앉으셔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약속을 변개하거나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의 말씀이 진리인 것은, 그 분이 하신 모든 말씀은 거짓이 없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언약은 쪼개다, 자르다의 뜻입니다. 언약을 맺는 의미는 생명을 담보로 맺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과의 언약을 통해서 영원한 복의 근원이 되시며, 영원한 나라의 왕이 후손을 통해서 나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이천년이 지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그 분의 말씀은 비록 더딜찌라도 성취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언의 성취임을 보게 되면서 신실하게 그 분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대로 다시 오셔서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2-3).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약속의 말씀은 더디더라도 성취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주님이 하나님의 때에 예수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듯이, 주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늘로부터 왕으로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아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1:3).

 

하나님은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은혜가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분의 공급하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믿음의 거장만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음에도 메시야가 임하는 영광스러운 족보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이방인이었고 부도덕한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혈통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됩니다. 베레스와 세라는 유대가 낳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다말은 이방 여인으로서 유다의 첫 아들인 엘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엘이 죽자 후사를 얻기 위하여 시부인 유다와의 관계에서 아들을 얻게 됩니다. 다말은 자신을 매춘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말은 부도덕한 여인으로서 정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을 포함시키셨습니다.

다말 뿐이 아니라 족보에는 라합과 룻, 밧세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합은 기생이었지만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에 믿음으로 정탐꾼을 숨겨주게 됩니다. 하나님은 라합을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비록 매춘부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라합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와 믿음의 삶을 살게 되면서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1:5-6). 6절에서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는 밧세바로서 다윗과 불의한 관계를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정죄되어야 할 성적으로 부도덕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도덕적으로 흠이 많은 여인들의 모습이 올라간 것은 죄인들을 용납하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를 위한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시고,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얻어 구원받은 것이 자격이 되어서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토기장이가 흙에서 아름다운 도기를 만들 듯이 우리를 어두움에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되었으며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14)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아브라함이 누렸던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의로움이나 사역의 열매를 인하여 자신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부족한 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16:12-1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마음으로 깊이 감사하며 구원의 잔을 들고 찬양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는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우리는 다말이나, 라합, 룻이나 밧세바와 같이 죄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모든 환경을 사용하셔서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1:17).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기다리시며 인내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위하여 우리를 연단하셔서 변화시키셔서 사용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이다.” (37:32).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 분의 열심히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42 세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약 이천년이라는 긴 시간들입니다. 물론 마흔 두 세대에 중간에 이름이 빠진 경우가 있습니다. 마흔 두 세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열두 지파를 세우시고, 애굽으로 인도하셔서 한 민족을 세우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그 후에 사사기 시대를 거쳐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때는 한 사람에서 시작하여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강력한 나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포로생활을 하기까지는 열네 대를 지나게 됩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쇠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윗이 죽고 난 후에 솔로몬이 큰 영광을 누리지만 그 후로 영적인 타락과 더불어 나라가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뉘이게 됩니다. 솔로몬 이후의 왕들은 대부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결국은 멸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므낫세는 악한 왕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경외했던 의로운 왕이었지만, 므낫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 종교들을 예루살렘으로 들여와 우상을 세우고, 심지어는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범하였습니다. 그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바벨론으로 이주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는 열 네 대였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암흑기였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황폐화되고 성전은 노략질을 당하게 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고 그 후에 스룹바벨에 의하여 다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힘을 내게 됩니다. 바벨론 이후로 이스라엘에는 왕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왕은 로마가 세운 왕으로서 다윗의 혈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암흑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큰 고통과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암흑기에도 그 분의 열심히 일을 이루셨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던 영적인 어두움의 시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데와 바사의 왕인 아하수에르 시대에 사탄이 하만을 통하여 유대인의 씨를 말리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준비시키셔서 아하수에르 왕의 왕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미워하여 모든 유대인들까지 한 날에 죽이려고 조서를 받았지만, 결국은 하만이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되고 유대인들이 살아남게 됩니다. 에스더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능력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며 메시야의 혈통을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영적인 전성기의 시대에도,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이 통치하는 시대에도, 바벨론의 포로 생활과 같은 영적인 암흑기에도 그 분의 선하신 뜻을 성취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환경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라, 특별한 환경을 허락하셔서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그 분을 더욱 의지하며 붙드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은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태양이 비추는 행복한 날이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위험한 날이나, 구름이 끼는 우울한 날을 만나도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을 믿으며 한 걸음씩 승리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분의 뜻을 이루시며 성취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그 분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며 날마다 쪼개어지며 빚어지고 세워지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