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2)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비전의 사람 2018. 3.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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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2)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1:18-25).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1).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뉴스는 이 땅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위대한 소식은 그 분의 나심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실 때에 그 분의 나심에 대하여 세상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분이 나실 자리가 없어서 마굿간의 구유에 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나심은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기쁜 소식,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성경에 예언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임을 보여주고 있고, 18절부터 25절 까지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18).

 

예수 그리스도는 남자의 씨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습니다. 성경은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약속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증거합니다. 당시의 약혼은 결혼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약혼과 결혼 사이에는 보통 12개월의 기간이 있었고, 그 사이에 신부가 부정한 일이 드러나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잃을수 있는 큰 수치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때 신랑은 신부의 부정한 일이 드러나면 갈라서게 되는데 이를 이혼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 중에 배우자가 죽어도 홀아비나 과부의 별칭이 붙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합방하지 않고 친정에 머물러 있었으나 요셉과 결혼과 같은 법적 효력이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되니까 조용히 헤어지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를 간음죄로 고소하여 사회에서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의 사자가 꿈에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0).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있는 마리아에게 임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1:27). 성경은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는 처녀라고 했습니다. 처녀라 함은 남자와 어떠한 관계를 맺지 않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아는 당황하여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1:34). 마리아는 사내를 아직 알지 못하기에 아들을 낳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 천사는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1:35).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인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잉태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실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입니다. 남자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됨으로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씨를 받았다면 죄인의 혈통을 받았기에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자의 씨를 통해서 왔다면 단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몸에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잉태되어 잉태가 되었고 이 땅에 나신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사탄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여자의 후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남자의 씨를 통해서 생명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14).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기 칠백년 전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실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이 잉태되었을 때에 우리는 마리아의 몸안에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된 메시야의 잉태를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성육신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며, 그 분은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 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남자의 씨를 받지 않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구원할 자로서 오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1).

 

하나님께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나심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요? 그 이유는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의 진정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하나님은 독생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9-10).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죄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요? 죄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 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실패하는 인간의 허물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죄를 범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죄에는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죄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의 결과를 낳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찾아왔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난 후에 마주쳐야 할 둘째 사망은 바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인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행으로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삶으로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형법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당하셔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구주는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심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구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으로 인하여 온 인류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온 인류가 죄의 저주에서 방황하고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상속자가 되었고 영원한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옥의 형벌을 피하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한 이름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3).

 

예수님의 나심은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신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셨고, 그 분의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의 연합을 보게 됩니다. 이는 임마누엘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함께 사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9장은 예수의 탄생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9:6). 베들레헴의 마굿간의 구유에 뉘우신 아기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하신 아버지이시며, 평강의 왕이신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임마누엘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나요? 하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함께 하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은즉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성전을 삼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생을 주심으로 함께 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은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속한 생명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비유를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5).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셔서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포도나무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며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도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며, 우리의 작은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시며 웅덩이와 진흙에서 구원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우리안에 계신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함으로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진리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동정녀를 통한 탄생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임마누엘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영원한 소망이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으며 더욱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