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11) - 천국에 들어가는 의 (마 5:17-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폐하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파나 사두개인의 파에 속하지 않으시며 그들과 다른 가르침을 주시기에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파괴하는 자로 여기며 모함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으로 그들의 오해를 풀어 주셨습니다. 당시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더 무거운 규율을 만들어 백성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죄인시하면서 스스로를 의인화하며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죄인으로서 저주받은 사람들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의 의무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지 않으며, 그에게서 어떠한 액체도 사지 않으며, 그와 함께 손님이 되지 않으며, 그의 옷이 부정할 가능성이 있음으로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할 때는 반드시 의복을 제공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죄인으로 취급하였고, 그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할 수 있었고 초대할 때는 새로운 의복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주님이 죄인들과 음식을 먹는다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다른 예는 여인은 안식일에 거울을 볼 수 없었는데 이는 혹시라도 흰 머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뽑으면 노동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는 불을 켜는 것이 노동이라고 생각해서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시켜서 불을 켜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규율에 빠져서 의식적인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들의 전통을 더욱 중요시하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종교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말씀을 어기는 것보다 서기관의 말을 대항하는 것이 더 크게 처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성경의 권위보다 자신들의 규율과 전통을 더욱 중요시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현상이 팽배한 시대에 주님께서 오셔서 참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며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의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시며 가르치셨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7).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하여 열심히 있었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 오경인 토라보다도 말씀을 자신들의 이해로 해석한 장로들의 유전, 즉 탈무드를 지키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외형적인 경건의 모양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본질에는 자신들이 높아지려는 자만감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 5:39-40, 46)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케 하셨을까요?
첫째, 주님은 죄없는 의로운 삶으로 율법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없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죄를 범하지 않으시고 완전히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가 되셔서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함의 본이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에 넘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낮은 위치에서 섬기는 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못을 박아 고통을 주는 로마 군인들을 용서하시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듯이,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율법의 정신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의 기준에 맞추어서 살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같이 타락한 존재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기준에 맞추어서 사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율법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율법은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형벌은 사망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온 인류를 위해서 율법의 요구를 자신의 몸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율법에는 십계명과 같은 지켜야 할 도덕법이 있고, 제사와 같은 의식법이 있으며, 지켜야 할 절기의 규율이 있습니다. 이는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심 앞에 자신의 힘으로 나아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희생 제사의 피를 통해서 나오도록 하셨고, 절기를 지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율법을 성취하시며 완전케 하셨습니다. 즉, 동물을 희생하여 드리는 제사는 매일 드려졌고, 죄의 속죄를 위해서 속죄일에 양과 염소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러한 제사는 끊임없이 드려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매일 죄를 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자신을 드리시면서 율법이 요구하는 피의 제사가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율법이 요구하는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 9:12) 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며,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는,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나온 성막의 모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소의 금촛대와 진설병상, 그리고, 분향단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뜰에 있는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려 피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소의 속죄소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기에 주님은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레위기의 제사와 절기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절기와 제사의식의 실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골 2:16-18) 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절기나 음식의 규례는 모두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선지자를 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이 되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잉태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우리는 당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분명히 메시야가 이 땅에 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 당하며 죽임을 당하실 것이며, 그 분은 하나님의 의로운 종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 5:2).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기에 헤롯 대왕은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베들레헴에서 왕이 나실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선지자가 증거한 메시야로서 이 땅에 나셨고 그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을 폐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가르쳤지만,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온전케 하심으로 그 율법을 높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12). 사도 바울은 율법이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가 없기에 주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계명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10).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그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2.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예수님이 오신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고 신앙으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등이 율법을 가르치며 성전 중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들에게 영적인 리더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더 나아가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영적인 리더들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들은 높은 신앙심을 가진 스승이었습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지만 행하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서기관들이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은 그를 존중해 길을 비켜 주었고, 그의 말이라면 권위자에게 하듯이 열정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들의 말이 존중이 되었기에 오른편에 있는 것을 왼편에 있다고 해도 믿어졌다고 했습니다. 서기관은 모든 백성보다 우월한 존재로서 모든 영예를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도 스스로 구별하여 모세의 율법에 열심을 내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죄를 적나라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하니하며.” (마 23:2-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높은 자리에 앉아 가르치기만 했지만 행하지 않음으로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게 어렵게 만들고는 자신들의 거룩함을 자랑하며 스스로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높임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님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5-6).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힘써야 했지만, 자신들은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는 것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11-12) 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천국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회칠한 무덤같이 멋지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무덤같았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7). 바리새인들이 지키려고 하는 율법은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겉으로 거룩한 모양을 내는 장식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들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5-26) 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거하지 않았고, 겉으로만 종교인으로서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이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의의 핵심은 행위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 64:6) 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의는 율법의 요구를 만족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더러운 옷 같은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자신의 의로 천국에 가려고 하는 종교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0-2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전가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3. 천국에서 큰 자는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9).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계명을 소중히 여길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모든 말씀은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 살아가는 자는 말씀의 작은 계명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9) 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의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학사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후에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 7:10).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먼저 말씀을 연구한 후에 준행하였고, 그리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한후에 더 많은 의무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그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위선자라고 심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2-4). 주님은 저희들의 가르치는 것은 행하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거운 짐을 사람의 어깨에 지우고는 자신들은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를 정하고는 그 이상은 순종하지 않으려는 강팎함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셨기에, 우리는 순종함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하셨기에 우리는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셨기에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경계를 정하지 말고 주님이 힘주심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많은 지식을 가지거나 가르쳤던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서 행함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아닌, 주님의 겸손한 모습을 배우며 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율법을 그 분의 삶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성취하심으로 완전케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삶을 사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의가 되셔서 우리를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하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천국의 여정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되셔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보다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이시며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사시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분의 말씀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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