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영적전쟁(1)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원리

비전의 사람 2011. 10. 11. 17:12

영적전쟁(1)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원리(히 11:35-12:4).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1-2).

 

우리의 인생은 항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문제로부터 막 벗어났거나, 문제의 중심에 서 있거나, 아니면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순히 문제의 연속이기 때문이며, 우리에게는 항상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왜 인생은 이렇게 어려운가요? 인생은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면서, 모든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인류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에, 세상은 더 나아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깨어졌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죄로 인하여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기후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세상에는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그리고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가옥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습니다. 경제가 깨어져 사람들이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우리의 몸도 망가지게 되면서 건강에 큰 위험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관계들도 깨어졌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가족이나 결혼이나 우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외에는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에, 모든 것이 깨어지고 인생이 어렵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뜻을 행하기로 선택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으며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타락이외에, 우리의 인생에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간에, 우리의 영혼을 무너트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영적인 세력들은 이 세상이며 어두움의 세력인 마귀인 것입니다. 우리와 사탄과의 싸움이 바로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경험하는 전투는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우리의 성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것인 줄을 알면서도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해롭고 인생에도 유익을 주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들을 늘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러한 싸움이 일어나는데, 성경은 이것을 육신, 죄의 본성 또는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우리에게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즉, 이 세상의 문화와의 싸움입니다. 사탄은 세상의 문화(culture)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가치관과 삶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일등이 아니면 실패자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문화가 주는 가치와 싸워야 합니다. 오늘날 인터넷이나 tv, 영화를 통하여 주려고 하는 잘못된 메시지를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마귀는 실제입니다. 마귀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반역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의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프리카나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살인이나 노예와, 살인 등은 잔인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모든 잔인한 죄의 뒤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쉽지 않는 전쟁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기 나옵니다. 그들은 영적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전투를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와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전투를 잘 싸웠고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경주를 잘 마쳐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이나 이삭, 그리고 야곱과 모세와 다윗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전쟁을 잘 치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번 주부터 우리는 “영적전쟁”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영적인 세력을 이해하고, 이러한 어두움의 세력들을 싸워서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은, 고난이나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감정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려움을 허용하기도 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렵고 힘들때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진정한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인생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것처럼 보일때에,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보일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은 완벽한 인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이 땅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거장들을 설명한 후에, 믿음으로 살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핍박과 고통, 그리고 어려움의 시간들을 통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은, “...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35-40)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중요한 진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올바르게 행동해도 고통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의 일부는 영원한 천국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것보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들을 영원한 천국에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믿음의 거인들은 모든 경주가 끝난 후에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자입니다. 우리는 앞에 있는 세대로부터 믿음의 바톤을 받았고, 이제 우리는 다음 세대에 그 바톤을 물려줄 것입니다. 이 경주는 마지막 주자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큰 릴레이 경주의 일부분입니다. 우리의 상급은 전체 경주가 마칠 때까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급은 모든 사람이 경주를 마치게 될 때에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구절인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부터는 다음의 말씀으로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다윗과 같은 믿음의 거장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1-4).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우리가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이 찾아올 때에 어떻게 전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섯 가지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결혼이나 물질, 직장이나 관계와 같은 문제들로 인하여 낙심이 되었다면,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어려움을 인내하며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믿음의 경주에서 포기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믿음의 경주를 이기며 달려갈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을 통하여 6가지의 원리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하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 12:1).

 

우리는 하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자 1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의 인생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요? 우리의 인생에는 지켜보는 관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개인적이거나 사생활이 보장이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하늘이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욥기 31:4절은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머님의 자궁에서 잉태된 날을 아시고, 세상에 태어난 후의 호흡을 아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모든 죄를 아시며, 선한 일을 행한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우리의 머릿털까지 세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아시며, 아무것도 그 분에게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지켜보는 관중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하늘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가는지 모세가 지켜보고 있으며,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아브라함이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문제를 해결하였고, 아브라함은 외국에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일을 믿음으로 감당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삶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비판하기 위해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믿음의 증인들이 우리를 격려하며 힘을 내도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달려간 믿음의 길을 우리도 완주함으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반열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무거운 것과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머리고...” (히 12:1).

 

만일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무거운 것과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에는 매이지 말며, 가치있는 것들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밧데리가 있는데, 한 개의 전구를 사용하면, 전구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밧데리에 15가지의 전기기구를 사용하면, 밧데리는 빨리 소모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금방 소진되며 낙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포기하고픈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1).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무거운 것’과 ‘’를 버리라고 권면합니다. 무거운 것과 죄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들을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우리는 내소사 등반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각자 점심을 준비하여 산에서 먹기로 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자매님들이 지체들을 섬기시려고 배낭에 많은 음식을 준비해오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산을 오르려면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가지고는 힘드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청년들은 도시락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도시락에서 반찬이 새는 바람에 산에 가지고 갈 수도 없었고, 청년들은 등산 배낭을 대부분 메지 않았기에 도시락을 손에 들고 산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에 오르기 전에 음식을 먹고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때 맛있는 음식을 너무나 잘 먹었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는 컵라면까지 먹으며 배를 채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러면 산에 오르기 힘들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생각대로 그 형제님은 낙오하고 말았습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배낭도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을 가져가야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은 산에 오르는 것이니까요. 물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신 덕분에 저희들은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쁜 일을 하거나, 악한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느리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관계일 수 있고, 직장일 수 있으며, 과도하게 집중하는 운동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지 못하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운동에 집착하는 것도 무거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우리에게는 나쁜 것은 아니더라도, 불필요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종종 좋은 일에도 거절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죄의 유혹에만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경주를 마치기 위하여 좋은 것에도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말에 구령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점심시간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회에 나오기 위해서는 금요일 저녁에 가족과 보는 tv 시청을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들을 심방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얻기 위하여 친구들과의 만남도 절제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 덜 중요한 것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경주에서 느려지고, 자신이 영적으로 지치고, 육체적으로 피곤하며,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낙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마지막까지 종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장애물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분노가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죄의식이 있다면, 만일 여러분의 삶에 고백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여러분은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죄는 가정을 무너트리기도 하고, 교회에 어려움을 주기도 하며 자신의 삶을 망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가요? 죄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약 4:17)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를 제거해야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1)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주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보여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1)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주”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준비한 경주를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준비한 경주를 달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경주를 달려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믿음의 경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경주를 잃어버리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계획한대로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향한 경주를 하도록 충분한 능력을 주시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멈추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놓아주신 경주를 힘껏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경주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재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거나, 절벽에서 로프를 잡고 버티다가 더 이상 견딜수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환경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떠한 어려움을 통과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더 이상 참기 어려운 고통을 만났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있다면,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주님께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코리 텐 붐 여사와 그녀의 동생인 베츠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아우스비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들을 숨겨주다가 발각되어, 그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감옥에 오게 되었습니다. 동생 베츠는 거기에서 죽었고, 코리 템 붐 여사는 마침내 구조되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만일 여러분이 세상을 보면 여러분은 크게 낙심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을 보면, 여러분은 침체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시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문제에 시선을 집중한다면, 여러분은 크게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그 분을 바라본다면, 그 분은 여러분의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사가 되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 분의 선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과거에도 신실하신 것처럼, 미래에도 능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나서 2장 7절은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요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지만, 요나는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정 반대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요나는 선원들에 의하여 바다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때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바로 요나서 2장 7절의 기도인 것입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영어 성경은 더욱 구체적으로 이 기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When I had lost all hope I once again turned my thoughts to the Lord." 즉, 내가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에, 나는 주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이 이 세상에서 모든 소망을 잃어버렸을 때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분께 시선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5. 우리는 고통은 작게 보고, 유익은 크게 보아야 합니다.

“...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1).

 

예수님께서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주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죽음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길임을 아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고통의 길을 참으셨습니다. 그것은 구속의 고통인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고픈 유혹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난 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우리의 꿈을 접고 싶을 때를 만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어려운 시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때에 어려움은 작게 보고, 궁극적으로 찾아오는 유익을 생각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찾아오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는 가을에 추수할 열매를 생각하면서 기쁨과 만족으로 여름의 수고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환자가 수술실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수술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수술후에 찾아올 건강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가 근력을 키우기 위하여 몸을 단련하는 것은, 경기장에서 누리게 될 영광의 환호소리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움과 고통은 적게 생각하고, 올바른 믿음의 길을 행함으로 찾아오는 유익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혼이 지켜지며, 신앙생활의 연단으로 성숙하며,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을 섬기면서 경험한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선교사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학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고린도후서 4장에서는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6-17).

 

우리는 고통의 의미를 축소하고 고통을 통하여 얻는 유익과 보상들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매에 맞고 여러 위험을 당하며 고통을 당한 것을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얻는 영원한 보상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성경은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때를 자신에게 맞는 때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며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심은 때와 열매를 맺는 때는 항상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씨를 어느 날 심고 다음날 사과 열매를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와같이 기다림의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후에 열매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좋은 습관을 심는다면, 즉,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묵상의 시간을 갖고, 날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갖으며,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는 심은대로 추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성장의 축복을 주시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원수에게 친절하게 하며, 비난에도 대신 비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3-4).

 

만일 우리가 어려움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어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분을 우리를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고난을 참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비난과 잔인한 고문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신 고문과 고통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3-4).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흘리시며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죽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우리를 위하여 온전히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찾아올 때에 피를 흘리시며까지 나를 사라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며 포기하지 말고 경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하나의 시험입니다. 모든 일이 잘될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진정한 시험은 인생이 너무나 어려울 때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에, 우리의 진정한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여러분이 믿음의 올바른 길을 가고 싶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믿음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의 경주를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달려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도 있지만, 어려움의 순간을 만남으로 인하여 경주를 포기하고 옆길로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마쳐야 하는 믿음의 경주는 무엇인가요?”

바울이 고린도서를 기록하기 전에, 고린도교회는 재정적인 헌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교회를 재정적으로 돕고자 하는 결단을 하였던 것입니다. 일년이 지났지만, 그들이 결심한 헌신을 그들은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 너희들이 시작한 것은 마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물질을 예루살렘교회에 헌신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시작한 것을 마쳐야 합니다.”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찌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고후 8:10-11).

 

이 시간 여러분이 결단하였다면, 그 결단을 마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침례에 순종하지 않았는지요? 여러분은 전도에 대한 결단을 하였지만, 아직 불신 영혼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지요? 여러분은 말씀을 배우다가 중간에 포기했는지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시작한 것을 마칠수 있도로 새롭게 결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시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헌신한 결단을 잘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단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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