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19) -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 (마 6:19-24).

비전의 사람 2018. 9. 29. 18:34


마태복음 강해 (19) -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 (6:19-24).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6:20).

 

주님은 산상수훈의 교훈을 통해서 사람에게 보이려는 위선에 대하여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는 위선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구제나 기도, 그리고 금식에 대하여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위선과 더불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바로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두 나라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영적인 눈으로 볼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다른 하나는 육체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볼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7:2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는 하늘에 있는 나라로서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나라였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11:16). 아브라함의 믿음은 세상을 향한 소망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모함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롯은 이 세상을 향하여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롯은 소돔성을 거처로 삼아 살아가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롯이 소망했던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잿더미가 되었고, 그가 소돔을 탈출할 때에 아무것도 손에 쥐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롯의 인간적인 지혜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지혜에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천국에 소망을 두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이 땅이 아닌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6:20).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6:19). 보물은 우리에게 소중한 재물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세상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지혜가 없다고 보십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재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입니다. 좀은 의복을 망가뜨리는 해충을 의미하며, 동록은 좀벌레를 의미합니다. 좀벌레는 부식이나 부패하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가구라도 좀벌레가 먹으면 부식되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집 안에 땅을 파고 보물을 묻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도적이 흙으로 된 벽에 구멍을 뚫어 들어와 보물을 훔쳐가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땅에 쌓아둔 보물은 부패되고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19-20). 부자는 농사가 잘 되어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곡간을 크게 지어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이제 여러 해 동안 먹을 양식과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의 마음에는 곡식을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마시고 먹고 즐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날 밤에 그의 영혼을 불러가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2:21) 라고 하셨습니다. , 하나님을 향하여는 재물로 섬기기에 인색하지만,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는 잔치하며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도전하십니다. “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6:20). 지혜로운 자는 영원히 부패되지 않으며 안전하게 보관되는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자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찾아오게 됩니다. ,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입니다. 세상의 마인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천국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 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주님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지, 아니면 천국을 바라보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천국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살아가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을까요? 보물은 단지 물질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물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제로 하늘에 보화를 쌓을 수 있으며,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십일조와 선교헌금으로 헌신하는 것도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전도하여 구원하는 것도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12:3) 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것도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포기하고 주님을 풀타임으로 섬기는 사역자의 길을 가는 것도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것은 천국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우리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은 천국에 보화를 쌓아두는 삶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2. 우리는 악한 마음을 버리고 순결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6:22).

 

눈은 세상을 보는 통로입니다. 눈은 마음의 눈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이 가득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마음은 어두움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곳으로 바라보며 세상의 죄에 대하여는 부담감을 가지고 복음의 사명자로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는 마음이 순결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6:22) 라고 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사람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분별합니다. 눈이 어두우면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등불이 꺼지면 온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과 같이, 눈이 어두우면 온 세상이 어둡게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눈에 대하여 두 가지를 말씀하시며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성하다는 의미는 헬라어로 πλος 로서 영어로는 single 이라고 했습니다. , 눈이 성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라는 의미입니다. 처녀가 남편을 만나 결혼하려면 한 가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일편단심 또는 순결한 처녀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일편단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순결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은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6:23). 눈이 나쁘다는 헬라어로 πονηρς 로서 악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눈이 악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마음을 비유로 눈을 지칭하신 것입니다. , 마음이 부패하고 타락하면 마음에 어두움이 찾아오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눈의 비유를 통해서 마음이 순결하여 믿음안에 거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지만, 마음이 부패하고 악한 자는 어두움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가득하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의 부귀 영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눈이 순결하지 못하고 악하게 되어 어두움에 지배당한 인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고 있을 때에, 가인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어두움이 그의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그의 눈이 어두워짐으로 온 몸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 결과는 가인이 형제를 살인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여 기뻐하고 있을 때에 아간은 세상 물질을 탐내어 의복과 보화를 감추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순결하지 못하고 탐심에 이끌려 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찾아온 어두움을 극복하지 못한 아간은 탐심으로 말씀에 불순종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온 어두움이 있는지요?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물질과 힘을 의지하게 하는지요?

 

빛과 어두움의 세계에서 우리는 빛의 나라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어두움이 거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에서 이렇게 빛과 어두움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후 6:14-16).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을 미워하며 의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과는 사귀지 않습니다. 더구나 마귀인 벨리알의 영향력이 마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를 붙드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믿는 자로서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선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악을 이깁니다. 그리고, 저주와 축복의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두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멀리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요한일서는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요일 2:9)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지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아직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빛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죄가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어두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이 가득함으로 의와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재물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24).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이 성하다는 것은 한 가지만을 바라보는 순결한 마음을 의미하듯이, 우리의 눈이 나쁜것 은 두 가지 주인을 섬기는 악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아내가 한 남편을 두어야 하고, 남편은 한 아내를 두는 것은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주일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평일에는 절에 찾아가 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은 우스운 모습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숭배하는 혼합 종교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에 빠지게 되자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려 할 때에 간음하는 죄를 범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은 맴몬(Mammon)입니다. 이는 재물에 대한 탐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대한 탐욕을 갖게 되면 재물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너를 찔렀도다.” (딤전 6:10)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돈이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이 돈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악의 뿌리가 자라면 죄를 낳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돈을 사랑함으로 악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8).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만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 중에 데마가 있었습니다. 그는 맴몬을 사랑하여 사도 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딤후 4:10). 우리가 세상의 제물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재물은 세상에서 섬기는 우상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돈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 2:15-16).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는다 할지라도 결국은 정욕과 자랑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영원한 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요? 아니면 돈을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유익이 더 큰 가치로 살아가는 자는 기복 신앙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채우는 분으로서만 만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는 기쁨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삶에서 찾아오는지요? 아니면 세상에서 얻는 돈과 재물이 더 큰 기쁨을 주는지요?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정직하게 하나님께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하늘에 보배를 쌓아두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6:9).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기보다는 성령을 위하여 심어 천국에 보배를 쌓아두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순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8) 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것은 선한 눈을 소유한 자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 거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두 가지의 마음을 갖는 것은 악한 눈이며 나쁜 눈을 가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어두움이 가득하여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한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4:15)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섬길 자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자녀삼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돈이 우리의 믿음과 생각을 흔들리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세상의 가치와 어두움이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