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3) - 혼돈의 시대에 진리를 찾는 자가 되라 (마 2 장)

비전의 사람 2018. 9. 15. 17:38

마태복음 강해(3) - 혼돈의 시대에 진리를 찾는 자가 되라 (2 )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2:1-2).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후손으로 이 땅에 나시는 혈통과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육신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이 땅에 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은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에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찾아온 박사들과 헤롯의 핍박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피신하고 나사렛으로 돌아온 사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왕 때에 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장은 헤롯왕 땅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롯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헤롯왕은 영웅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는 유대인 출신의 가문이 아니었고 에돔 출신으로 이두매 지방의 사람이었습니다. , 헤롯왕은 이방인으로서 유대 민족을 통치했던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두메 지방의 유력한 가문출신으로 로마 황제는 그의 아버지인 안티파테르 2세를 유대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유대교로 개종하였으나, 이방인인 그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로마 황제인 옥티비아누스 로부터 유대의 왕의 직위를 받게 됩니다. 그의 통치는 37 BC 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이 탄생하는 해인 4 BC 까지 34년간 통치하게 됩니다. 헤롯왕은 유대를 로마가 원하는 헬라 중심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고, 유대인들의 신앙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대규모 건축을 단행하였습니다. 사마리아를 재건하여 로마 황제에게 바치고,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항구를 지어 로마와의 해상로를 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경기장과 원형 극장을 지어 로마와 같은 검투사들의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헤롯은 성전을 46년 간이나 지으며 화려한 성전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헤롯 성전은 20 BC 전에 시작되어 AD 64 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성전의 건축 기간은 80년 이상 진행되었고, 헤롯이 죽고 난 후에 완공 되었다가 7년이 지난 후에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하여 파괴되었습니다. 헤롯이 성전을 지은 동기는 이방인으로서 유대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솔로몬 성전에 버금가는 성전을 지어 유대인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롯 대왕은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아론의 혈통에서 대제사장을 세워야 하는 성경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임의로 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었기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도 지었지만,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위한 이교 신전도 지었습니다. 그는 10명의 아내를 두었고, 끊임없는 의심과 모함을 하며 대외적으로 폭정을 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를 장모, 그리고 그녀의 아들들과 형제까지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후계자로 세웠던 맏아들 안티파테르를 자신이 죽기 며칠 전에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악한 왕이었고 자신의 위치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언급한 유대인의 왕은 그를 무척이나 불안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베들레헴 지역의 2살 이하의 아기를 죽이라는 명을 내린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인 BC 4 년에 죽게 되는데 그의 나이는 70세 였습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스스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이때 그의 아들이 감옥에서 뇌물로 탈옥하려고 하자, 아들을 현장에서 죽이게 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죽으면 유대 사람들이 기뻐할 줄을 알고 유대의 유력한 자들을 잡아 가두고 자신이 죽는 순간에 그들을 죽여서 유대 사람들이 기뻐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명령은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유대의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헤롯의 때는 정치적으로 로마가 임명한 왕에 의하여 통치가 되면서 유대인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로마를 위한 정치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인 지도자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결탁된 대제사장에 의하여 오염되고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후에 약 사백년간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영적인 어두움의 긴 터널을 지나는 순간에, 어둠을 깨고 하늘로부터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영적인 어두움에 자던 자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임하심을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찾아오는 동방의 박사들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놀라운 통찰력으로 교훈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 우리는 성경에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 하니.” (2:2).

 

헤롯왕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해롯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헤롯을 향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또한 말하기를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 (2:2) 라고 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예루살렘의 동편에 있는 페르시아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박사들은 학문에 능통한 박사들로서 별들도 그들의 연구에 대상이었고, 당시에 그 지역에 있던 유대인들로부터 야곱의 별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표식임을 듣고 연구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발견한 그의 별은 어디에서 찾은 것일까요?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805 km 의 긴 여정이며,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0 km 나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언된 별을 보고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왕에게 드리는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별에 관한 예언은 발람 선지자를 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24:17). 바벨론 포로 이후에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지역으로 포로로 잡혀가 살았기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온다는 예언이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내용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케플러와 같은 천문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의 시기에 천문학적으로 별의 특별한 현상이 관측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유대인 학자인 알프레드 에더스하임은 중국의 천문학 표에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별의 출현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신빙성은 훔볼트도 증언할 정도로 높다.” 라고 했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하늘의 천체에 혜성과 같은 별이 나타나 동방의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수개월간의 여행을 했고,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마굿간의 구유가 아닌 집에 들어가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렸습니다.

 

헤롯왕은 동방의 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라는 질문을 듣고 크게 동요합니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2:3). 소동하였다는 것은 당황하다, 어지럽히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왕과 온 예루살렘이 엄청난 충격을 받게 했습니다. 왕은 그 때의 나이가 70 세로서 권력에 집착하여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방인으로서 유대의 왕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로마의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고,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을 지어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소식은 충격이었고, 즉시 그 아이를 죽여하는 계략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요동한 것은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헤롯에 의한 또 다른 살육과 위협으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물론 메시야를 받아들일 영적인 준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헤롯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라고 묻습니다.

 

서기관들은 유대 사회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로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프레드는 서기관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디에서나 그는 백성의 대변인이요 대표자로서 나타난다. 그는 앞으로 나서며, 군중은 그를 존중해 길을 비켜주고, 마치 인정된 권위자에게 하듯이 그의 말에 열정적으로 따른다 그들의 말은 그만큼 존중되었기에 설사 오른편에 있는 것을 왼편에 있다고 하거나 왼편에 있는 것을 오른편에 있다고 해도 그대로 믿어졌다.” 헤롯은 서기관들과 더불어 대제사장들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원래 아론의 후손만이 할수 있었지만, 헤롯이 불법을 행하여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거나 파면하였습니다. 백성들을 대표하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은 즉시 해답을 내놓습니다. 이는 미가서의 5장에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2:6).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 되신 메시야가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고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에언되었던 것입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에 메시야가 나실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 별이 그들을 인도하다가 아기 있는 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들은 성경의 예언에 기초한 말씀을 따라 메시야를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어둠에서 빛 되시고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도요한은 성경의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를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성경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동방의 박사들과 같이 성경의 진리를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베뢰아 사람은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진리인지를 알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11).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진리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 분을 더욱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난 그리스도는 성경을 통해서 만났는지요? 아니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으로 만났는지요? 진리되신 그리스도는 오직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1).

 

우리는 동방 박사들이 메시야의 탄생을 기대하며 그의 별을 찾아왔습니다. 별이 아기 위에서 문득 서게 되자, 동방의 박사들은 기뻐하며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엎드려 아기께 경배합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며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집에 찾아가기 전에 먼저 아기 예수를 방문한 목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다가 주의 사자가 찾아와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11-12). 천사가 양들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찾아가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것을 전했습니다. 그는 메시야로서 우리를 위하여 오신 구세주임을 전합니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되심의 증거는 구유에 누인 아기가 바로 그 표적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찾아가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들은 천사와 아기 예수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본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가장 미천한 목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과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시에 정치적인 지도자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고, 종교적인 지도자는 지식적으로 메시야의 탄생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쁨과 비밀을 감추셨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으로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나심을 전해주셨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사울 당시에 교만한 사울과 종교 지도자들이 아닌 들에서 양을 지키던 다윗에게 기름 부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800 km 나 멀리있는 동방의 박사들이 진리를 찾고자 할 때에 그들에게 메시야를 보여주시면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찾아가 예물을 드렸습니다. 당시에 왕을 만날 때에는 특별한 예물을 드려서 경외심을 보였습니다. 그들이 드린 보물인 황금은 매우 값지고 변하지 않는 성질의 귀중품이었습니다. 황금은 메시야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향은 값비싼 향유로서 향내가 나느 희색의 액채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몰약은 아라비아의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을 시체가 썩지 않는 방부제나 마취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몰약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위대하신 분에게 가장 고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은 최고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수백 km 를 오면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서 귀한 보배를 마지막까지 들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뜨게 하셔서 세상에 오신 구주를 예배하였듯이,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리이시며 생명되신 그리스도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최선을 것으로 드려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까요? 우리가 드리는 어떤 재물이나 재능으로도 그 분이 주신 은혜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가 존재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서 그 분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우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이 주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우리의 삶이 예배자로서 주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삶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가 단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2:12).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이 주의 사자가 꿈에 말하는 것을 듣고 마리아를 의심없이 데려와 보호하고 함께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꿈에 자시하심을 받습니다. 그들은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을 통하여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애굽으로 피하라는 지시를 듣습니다. 또한 주의 사자가 헤롯이 죽게 되자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지시를 듣게 됩니다. 그때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되고,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정착하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꿈으로나 천사를 통해서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나실 때의 사람들은 꿈과 천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성경이 완성되기 전의 시대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주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주시며 인도하십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8).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살아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깨어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에 헤롯의 계략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기에 나사렛이란 동네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에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의 계략을 피하여 자신의 나라로 조용히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분과 교제하며 그 분이 주시는 비전을 보며 성령이 충만함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하여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헌신한 것은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 계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니야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6:10). 하나님이 마게도냐 지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에 바울은 순종하여 빌립보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의 결단과 방향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우리의 삶에 영적인 힘을 더하며 비전을 따르는 삶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큰 영광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장의 말씀을 통하여 혼돈의 시대에 진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풍파에 요동하지 않고 오직 별을 따라서 주님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승리하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