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30) - 제자의 부르심 (마 9:35-10:42)

비전의 사람 2019. 3. 3. 10:14

마태복음 강해 (30) - 제자의 부르심 (9:35-10:42)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9:37-38).

 

주님은 이 땅에서 오셔서 3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3대 사역은 전파하시며 가르치시고, 치유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치유받으려는 사람으로 군중들이 붐볐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했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방황하다고 멸망하게 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시에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는 적다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9:38). 주님은 제자들이 기도함으로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추수할 일군들은 누구인가요? 그들은 밭에 나가서 일하는 농부들을 의미합니다. 추수하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알곡을 거두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영혼을 추수하는 일군들은 전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군들이 적어서 영혼들이 방황하며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준비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추수할 일군, 즉 전도자로 준비하시고 파송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추수할 일군들로 준비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할 일군으로 준비되기 위하여 어떠한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10:6-7).

 

주님의 우선 사역은 천국 복음의 전파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역을 위임하시기 위하여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직접받은 제자들을 사도라고 했습니다. 사도의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훈련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사도입니다. 그 중에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어부들이 있었고, 마태와 같은 세리도 있었으며, 시몬과 같은 열심 당원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고 그들을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자로 훈련하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4:19) 라는 말씀으로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초점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가요? 영혼의 구원은 복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음의 뜻은 기쁜 소식입니다. 왜 기쁜 소식인가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기쁜 소식인가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일을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0:13-1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이 세상은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10:5-6). 이는 복음의 우선 순위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가 아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우선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열방에 전파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후에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사마리아와 이방에게 복음이 전파하게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선교 여행을 하면서 항상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먼저 복음을 전하고,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제자들은 복음을 전한 댓가로 금품을 요구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10:8). 복음을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세상은 어떠한 소중한 가치를 얻기 위해서 금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진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는 자는 구원을 얻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향하여 은혜로 받았으니 은혜로 주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제자들의 희생으로 온 세상에 전파되는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필요를 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0:10).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필요를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채워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갈 때에 그 필요를 복음을 전하는 여정에서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주님의 일에 힘쓸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천국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은 교회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에 교회 사역의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동기는 심판날에 대한 준비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0:15). 주님은 제자들이 전하는 천국복음을 거절하는 자나 성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거절한 자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보다 더 큰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늘에서 유황과 불로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19:24).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이 내린 불의 심판으로 멸망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심판날에서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오히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마지막 날의 심판은 불과 유황불에 타는 지옥불에 영원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이 내려 멸망시켰지만, 지옥의 심판은 영원히 고통당하는 형벌의 장소가 됩니다. 지옥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과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0:10).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이 영원한 지옥불임을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예언입니다. 성경은 예언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때가 되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고, 그 모든 약속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3)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죄의 결과가 영원한 지옥불에서 고통당하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우리는 고난의 길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0:17).

 

주님은 제자들을 보낼 때에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했습니다. 이리 가운데 지나가는 양의 운명은 어떠할까요? 이리는 맹수로서 자신보다 약한 짐승을 보면 먹잇감으로 삼습니다. 세상은 이 땅의 지혜와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의로운 자를 핍박해 왔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떠나 죄에 거하면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곤 했습니다.

 

세상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듯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기고 채찍질 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0:17). 주님의 예언대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천국 복음을 전하다가 공회에 잡혀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하여 큰 권능을 행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공회의 회원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5:40). 사도들은 핍박을 당하며 공회에서 채찍을 당했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은 핍박을 당할 때에 무엇을 말하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실 말씀을 성령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0:19-20). 하나님은 우리의 곤란한 상황을 하시고, 위기 속에서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22).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미움을 받아 큰 핍박을 받았고,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피하여 유대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그들은 결국 가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고, 핍박이 일어나면 다른 동네로 피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10:23).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이 핍박을 받게 될 것과 주님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난의 때에 당할 환난을 의미하시며, 그들이 복음을 전하러 여러 동네에 다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 의미는 칠년 대환난을 견디는 자는 주님이 재림 하셔서 천년 왕국으로 인도하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칠년 대환난은 이스라엘의 환난의 때입니다. 그들에게 많은 핍박이 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다시 오셔서 주님이 다스리는 천년왕국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환난을 견디며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할 자는 사람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0:28).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주님을 미워하여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행하시는 권능이 메시야의 권능이지만, 그들은 믿기를 거절했기에 오히려 바알세불이라는 귀신의 이름을 댄 것입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 사단의 이름으로 이방 에그론의 신인 파리들의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단의 왕인 바알세불이라 부르며 조롱했습니다. 메시야를 사단으로 모는 이 세상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떠한 대우를 할 것인가는 분명했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10:25). 집 주인은 주님을 말씀하며, 그 집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 선생인 주님을 바알세불이라고 하는 자들이, 그 집 사람들인 제자들에게 부당하게 핍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배웠습니다. 주님은 비유로 가르치셨고 어두운데서 가르치셨으며, 귓속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아직 그 분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만 비유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때가 이르면 제자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밝은 데서 선포하며 집 위에서 전파하여 모든 사람들이 듣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10:27).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모인 성전에서 담대히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고 전파하였습니다. 특히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 받은 후에 주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는 주님이 생명을 다하여 가르치시고 남겨두신 이 땅의 희망이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의 마음에 살아있었기에, 그들은 주님을 이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시련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너무나 소중했고 주님의 명령이 목숨보다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새도 소중히 여기시지만,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는 참새보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인 제자들이 핍박을 견디며 복음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핍박을 견디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3. 우리는 주님을 향한 헌신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10:38-39).

 

제자는 스승을 따르며 헌신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을 뿐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며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가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10:34-36). 유대 사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출교를 당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늘날도 불교나 이슬람 국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가족으로부터 혈연이 끊기고,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실직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오늘날 유대인 가문에서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혈연에서 끊어지거나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사탄의 대장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큰 대가지불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며 가족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는 가족간에 어려움이 없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게 되고 주일에 있는 가족 여행에도 불참해야 하며, 가족보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심이 커지면서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10:37) 라고 하셨습니다. , 주님의 제자에게는 부모님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며, 자녀들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가족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는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표현해야 했던 것입니다. 제자는 더 나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얻게 되지만,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게 될 것입니다. 제자의 길은 어떠한 길인가요? 제자의 길은 세상에 모든 관계나 환경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함으로 헌신하는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요구되는 우선 순위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모세는 자신의 모든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애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우선 순위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황폐화되고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는 증거로,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를 삐앗아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아내의 죽음으로 인하여 슬퍼하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며.” (24:16-18). 에스겔은 아내가 저녁에 죽었지만 아침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에스겔의 때는 이스라엘에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임하여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큰 환난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시대의 표적이었습니다. 에스겔의 아내가 죽임을 당하듯이,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죽임을 당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는 절망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 시대에 표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주님의 제자로서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가 죄가 관영하여 사람들이 심판의 때를 향해 달려가지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제자로서 이 시대를 향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게 되지만,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려놓는 자는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외치는 복음은 심판의 때에 그들을 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증거하는 복음 전도의 삶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제자로서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는 120년 간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표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예비하는 자로서의 본이 되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듯이, 우리는 예수님께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영혼들을 인도하여 구원하는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뜻을 향해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