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31) - 큰 자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마 11:1-19)

비전의 사람 2019. 3. 30. 11:27

마태복음 강해 (31) - 큰 자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11:1-1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1:11).

 

침례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질문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11:3) 였습니다. 침례 요한의 질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의 교훈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나누기 전에 침례요한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침례요한은 제사장 가문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는 친척지간이었습니다. 침례요한과 예수님의 출생하기 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이름을 요한과 예수라 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습니다. 침례요한은 광야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요한의 출생을 알리며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는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1:15-17). 침례요한은 엘리야와 같이 낙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으며(열하1:8), 음식으로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1:6). 침례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3:10). 침례 요한의 강한 선포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요한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0:3). 이사야의 예언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그 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침례 요한에 대하여 언급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이후에 약 300 백년이 지나 말라기 선지자가 주의 길을 예비할 자에 대하여 예언하게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3:1).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선지자들이 두 번이나 언급했고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의 출생을 알릴만큼 큰자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침례요한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침례 요한은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1:23). 그리고, 주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라고 증거하였고,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푼 후에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침례요한은 헤롯 안디바가 그의 동생인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한 것에 대하여 책망합니다. 그러자, 헤롯 안디바는 침례 요한을 마케루스에 가두고 후에 참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즈음에 침례요한은 옥에 갇혔고 그 후에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 할 것이라고 한 대로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자신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침례요한이 옥에서 순교하기 전에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질문을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11:3). 침례요한의 질문에 대하여 주님은 교훈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을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1:4-5).

 

침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스라엘에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했습니다. 이제 침례 요한은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러자, 침례요한은 주님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인지를 다시 확인하고자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를 기다렸던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야와 갈릴리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는 메시야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와서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강력한 나라를 세워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오셔서 그들의 진정한 왕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헤롯 대왕은 에돔 사람으로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헤롯의 아들들이 나라를 나누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왕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침례요한도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예수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감옥에서 있었기에 진정으로 메시야라면 자신을 감옥에서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1:4-5).

 

주님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에 대한 성취임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35장은 메시야 나라에 대하여 예언한 장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보복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입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35:5-6). 메시야의 나라가 임하면 소경이 보며 귀머거리가 듣는 역사가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또한 이사야 61장에서는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61:1) 라고 했습니다.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자인 메시야가 오셔서 행할 사역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죄와 마귀에게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는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실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며 귀머거리가 듣고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침례요한은 자신이 갇힌 처지에 있었기에 예수가 메시야 라면 자신도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침례요한의 질문은 예수가 메시야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보다는, 자신을 향한 메시야의 사역을 하라는 묵시적인 요청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메시야는 포로된 자에게 놓임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침례요한이 감옥에 있는 것에는 침묵하셨습니다. 대신에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역이 메시야의 사역임을 말씀하시며 자신이 이사야에 에언된 메시야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답변을 통하여 다음의 영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메시야로 오셨지만 그 분의 통치와 사역은 순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대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순종하셨습니다. 메시야의 우선 순위는 자신을 드려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의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속자가 되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재림하셔서 메시야의 나라인 천년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나라는 메시야의 나라이며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침례요한은 메시야이신 주님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1:6). 주님을 믿는 자는 실족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침례요한이 감옥에서 죽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침례요한은 기꺼이 감옥에서 평안을 지키며 죽음의 길 조차 믿음으로 감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환경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고 주님의 뜻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 분이 하시는 일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침례요한의 사역을 인정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1:11).

 

침례 요한의 제자가 주님의 응답을 듣고 떠났습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는 침례요한의 믿음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군중들은 침례요한의 질문을 듣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는가라고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침례 요한의 믿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며 부패한 궁전의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확신시켜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무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궁중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1:7-9).

 

침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환경이나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서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또한 침례 요한은 궁중에 있는 자들처럼 부귀 영화를 누리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오히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자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광야에서 만난 침례 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침례 요한은 오히려 침례 요한보다도 나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르고,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이 바로 침례요한을 지칭한 것임을 확증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10). 이는 말라기 31절을 인용하시면서 주님의 사자가 침례 요한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침례요한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확증하시면서 동시에 주님이 바로 메시야 임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실로 침례 요한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큰 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1:11).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이 가장 큰 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준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모세부터 위대한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침례 요한은 사역의 기간도 짧았고 광야에서의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침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침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중요성은 그에 대하여 구약에서 두 번이나 예언되었고 천사가 엘리사벳에게 나타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침례 요한이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무척이나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 침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일까요? 이에 대한 해석은 구약의 성도들은 주님에 대하여 희미하게 보며 믿음으로 선포했고 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주님은 신약의 성도들을 그 분의 몸된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원한 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릴 것에 대한 의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1:11).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천국에 하나님의 자녀로 입성하게 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더 큰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구약의 성도인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1:13)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침례 요한의 사역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가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1:12). 이는 침례 요한의 강력한 메시지와 사역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천국이 침노를 당한 것은 군대가 도시를 공격하여 점령한 것처럼, 천국이 침례 요한의 강한 외침으로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하신 것은 반어법적으로 천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강력한 의지와 믿음이 필요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이지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침례 요한의 강력한 외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침례 요한과 같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서 복음을 선포하여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자는 마치 군대가 도시를 공격하듯이, 이 세상의 구원을 향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1:19).

 

주님께서는 당시의 세대를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동무를 불러놓고 놀이하는 모습에 비유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불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불러 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애곡하면 가슴을 치며 반응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동무들의 비유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과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1:18-19).

 

주님께서는 피리를 부는 비유를 예수님의 사역에 비유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주님안에서 기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이 죄인들과 같이 먹고 포도주를 마시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며 조롱했습니다. 또한 침례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에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통곡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례 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음식으로 하며 그들과 함께 먹거나 마시지도 않자 귀신이 들렸다고 하며 조롱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침례요한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시대는 어찌한가요? 어찌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하여는 죄로 타락한 세대를 보며 한숨을 짓기도 합니다. 주님의 때가 가까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나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정죄하는 듯 하지만, 그 정죄하는 대신에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시대처럼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는 믿음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의 가치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면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지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의 삶은 적극적으로 말씀에 반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주님의 말씀이 미련하다고 여기며 반응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에 따라 반응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속한 자로서 세상의 가치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반응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침례 요한의 질문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보이셨고, 침례 요한은 믿음으로 살아갔던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침례 요한의 강한 외침으로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셨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영적으로 반응하며 달려가는 믿음의 자녀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