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 (13) - 출애굽의 배경과 모세의 부르심(출 1-4장)

비전의 사람 2019. 6. 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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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 (13) - 출애굽의 배경과 모세의 부르심(1-4)

 

출애굽기의 뜻은 나가다, 탈출하다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며 압제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서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모세 언약을 맺는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5-6).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세우도록 하셨고, 레위기에서는 다섯 가지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인도하셨다.

 

1. 출애굽의 배경

 

1. 고대 이집트의 생활과 문화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하였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했다. 나일강은 약 6,000 km 의 강으로 이집트가 있게하는 생명의 근원이었다. 나일강의 불어난 물은 곡식을 키우기에 좋은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였고 소나 양과 염소를 가축할 수 있는 초목을 제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일 강 주변으로 도시와 마을을 형성하여 거주하였고 무역이 활발하면서 부요하고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

 

바로(파라오)는 이집트 통치자인 왕의 명칭이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파라오는 통치자 이상으로 태양신인 레 로부터 내려온 신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호루스라는 팔콘 신의 영이 바로의 대관식 날에 바로에게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로는 신적인 존재로서 애굽을 통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가 죽으면 그는 내세의 신인 호시리스와 합하게 되고 호루스의 영이 다음 바로에게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집트 사람에게 바로는 살아있는 신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다스렸다. 바로는 즉위하면 자신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피라미드는 10만명이 동원되어 20년간 만드는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였다. 피라미드는 죽은 바로의 궁전이었다. 그들은 몸이 미이라 형태로 보존되면 그의 영혼은 내세에서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로의 무덤에 각종 보석과 필요한 물품들을 넣었고 심지어는 애완 동물을 미이라로 만들어 같이 묻었다. 초기에는 죽은 바로를 위하여 종들을 같이 묻어 바로를 섬기도록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쉬왑트라는 조각상을 무덤에 같이 묻었다.

 

바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자로서 그의 통치를 비지어(vizier) 라는 총리에게 맡겼다. 바로는 신적인 통치자로서 애굽의 모든 신의 대제사장이었다. 바로는 왕이자 대제사장으로서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책임이 있었고, 신은 바로를 통해서 이집트에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는 약 천개의 신과 여신들을 숭배하였다. 시대에 따라 숭배하는 신이 달라지기도 하였고 다른 신들과 흡수되기도 하였다. 신들중 상당수는 동물들의 모습이었고 하늘이나 나일과 같은 특별한 지형의 신도 있었다. 누트는 하늘의 신이고, 크눔은 나일강의 신이엇다. 매트는 진리와 정의의 신이다. 레는 가장 중요한 신으로서 태양신이엇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은 신들의 거처였다. 오직 파라오와 그의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대제사장이었다. 파라오는 신들에 대한 헌신의 의미로 신전을 세우도록 명하였고, 신들은 답례로 이집트의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매일 제사장들은 신들의 형상을 세척하였고 베옷으로 입혔고 각종 보석으로 치장하고 음식과 포도주를 제공했다. 데베의 대신전에서는 태양신인 아문 레를 위한 제사를 드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회적인 위치가 중요했다. 사람의 위치는 그가 하는 일에 따라서 결정되엇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집트의 최하위신분인 농부였다. 그들은 농토를 소유하지 않았고, 세금을 내는 대신에 피라미드 공사나 관계 농사를 위한 터널 공사 현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

 

최고 높은 지위는 파라오였다. 그는 가장 높은 신분으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며 군대의 명령자였다. 다음 신분은 정부 관리로서 총리와 제사장, 그리고 귀족들이었다. 비지어라는 총리는 건축을 관장하고 세금을 징수하거나 재판하는 일을 하였다. 총리와 같은 위치에 있는 신분은 제사장이나 여사제, 귀족들이었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삼은 후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41:45). 요셉이 최하위인 노예에서 파라오 다음의 총리가 되고 높은 신분에 있는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얻게 함으로 그의 지위를 견고하게 한 것이다. 다음은 군인이었고 서기관 상인들 순서로 이어졌다. 또한 건축이나 예술일을 하는 기술자들이었고, 최하위 신분은 농부들과 노예들이었다. 농부들은 농사를 지었으나 땅을 소유하지 않았고 세금 대신에 피라미드와 같은 국가적인 건축 사업에서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노예들은 포로로 잡혀오거나 상인들에 의하여 팔려온 사람으로서 각종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는 삶을 살았다.

 

2. 성경적인 배경

 

출애굽의 배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창세기 15장의 언약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13-1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큰 민족이 될 것을 약속하셨고, 그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이방을 고통가운데 섬기다가 하나님이 그 나라를 심판하신 후에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400 년간을 기다려야 하셨을까? 첫째는 야곱과 함께 이주한 70명이 민족으로 성장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43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200-300 만명의 큰 민족이 되었다. 둘째는 가나안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죄가 아직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죄 없는 민족을 심판하지 않으신다. 아모리 족속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관영하여 심판에 이를 정도가 되면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시고 그 땅에서 몰아내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담이 죄를 범하자 에덴에서 쫓겨난 것과 같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라도 죄를 범하자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쫓아내셨다. 북 이스라엘은 영원히 쫓아내셨고 남 유다는 70년간 쫓아내셨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과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를 이끌고 밖으로 난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벼를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15:5,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이 애굽강인 홍해에서 유브라데까지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5:18).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3. 역사적인 배경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은 애굽에 400년간 거주하게 된다. 애굽에 내려가게 된 배경은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종으로 팔려가 애굽에서 보비발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시므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그의 가족들이 기근을 피해 애굽에 이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애굽의 총리는 비지르(vizir)라는 직책이었는데 외국 업무를 제외하고 국내의 모든 행정을 통괄하는 업무를 감당하였다. 요셉으로 인하여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은 이집트의 비옥한 땅인 고센에 거주하며 왕의 가축들을 돌보는 일들을 시작하였다. 야곱이 애굽에 이주한 시기는 기원전 1876년으로서 이집트의 12왕조(1991-1786)의 시기이다. 월터 카이저는 성경의 족장 시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 월터 카이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던 때는 그의 나이 75세로서 2091년이다. 족장들이 가나안에서 보낸 시기는 215년이다. 야곱은 기원전 1876년에 애굽으로 이주하고 난 후에 요셉은 기원전 1805년에 110세의 생을 마감한다.

 

출애굽의 연대는 15세기설과 13세기 설이 있지만 성경적인 근거는 15세기 설과 일치한다. 이때는 애굽 왕 아멘호텝 2(Amenhotep II, 1448-1424)의 치하 시절이다. 열왕기상 61절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열상 6:1). 솔로몬은 기원전 969년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기에 48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출애굽의 시기는 기원전 1446년이 된다. 또한 사사기 1126절은 사사 입다의 진술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 모든 성읍에 거한 지 삼백 년이라고 했다. 이는 성전 건축 (기원전 966)까지의 135년 전으로 추측하고, 가나안 점령으로 부터 사사 입다까지 300, 그리고, 광야 생활 40년을 포함하면 기원전 1446년을 출애굽으로 추측할 수 있다.

 

출애굽기는 야곱의 혈족이 요셉까지 칠십 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요셉과 모든 형제를 비롯한 그 시대 사람은 죽었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때 출애굽기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다고 증거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1:7-8). 월터 카이저는 새 왕은 제 18왕조의 창시자인 아모세(Ahmose)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1513절은 이스라엘이 노예에서 사백년간 괴로움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만일 18왕조나 19왕조의 바로가 압제자였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압제당한 것은 백년 이하의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터 카이저는 새 왕이 일어났다 에 사용된 히브리 원어는 반란하여 일어나다.’ 라고 번역되며, 결코 정권이 평화롭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이양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을 압제한 새 왕은 힉소스 왕조일 가능성이 크다. 힉소스 왕조는 가나안 사람이나 아모리 사람들인 셈족이 15 왕조 동안에 애굽으로 이주했다가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힉소스는 애굽이 정치적으로 불안전한 시기에 애굽에 들어와 기원전 1730-1710년 사이에 애굽 본토 왕조를 정복하여 다스리다가, 기원전 1570년 제 18왕조의 창시자인 아모세에 의하여 힉소스 왕조가 멸망하고 다시 가나안 지역으로 추방되었다. 힉소스는 세스(seth)를 주신으로 섬겼고 나일강 삼각주의 아바리스에 수도를 세웠다. 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기원전 1730-1710년 사이에 일어난 힉소스 군주였을 것이고, 그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압제를 약 300 년간 지속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시아에서 이주한 셈족 계통의 힉소스가 왕조를 세웠기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생육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주했던 셈족인 힉소스와 히브리 사람들의 인구가 서로 비슷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9-10). 힉소스 왕조는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의 대적과 합하여 자신들을 공격하고 출애굽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힉소스를 무너트린 18왕조인 아모세와 애굽인들은 힉소스가 시작했던 유대인 억압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억압하며 유대인들을 노예로 부렸다.

 

 

2. 바로의 압제 (1)

 

바로가 히브리 민족의 강대함에 놀라 압제하고 괴롭게 하여 히브리 민족의 인구를 줄이는 계획을 세운다. 애굽이 이스라엘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정책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째, 바로는 국고성을 건축하게 하였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12). 힉소스는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국고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다. 국고성은 농사의 곡물 등을 저장하는 시설로서 유사시 군량미를 비축할 수도 있고 기근을 대비하여 곡물저장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으로 하여금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한 이유는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히브리인들을 피곤하게 하고 괴롭게 함으로 자녀 출산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며 창성하자, 애굽 사람이 근심하여 그들의 생활을 더욱 괴롭게 하였다. 새 왕은 힉소스가 다스리던 왕조였지만, 아모세가 힉소스를 축출하면서 다시 애굽 사람이 새로운 왕조인 18왕조를 세웠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112절은 새 왕조인 애굽 사람이 힉소스 왕조와 같이 히브리 민족을 학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절에 비로서 애굽 사람으로 설명하고 15절에는 애굽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12절의 애굽 사람은 새로운 왕조를 세운 아모세 1(기원전 1570-1546)일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자소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1:13-14). 애굽 사람이 히브리 민족을 박해할 수록 생육하고 번성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에게 복을 주시며 함께 하셨기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신다는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둘째, 바로는 모든 남자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15-16). 이때 모든 남자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은 투트모세 1세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재위 기간(기원전 1526-1512)인 기원전 1525년에 모세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무디성경주석, p. 122).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라 하는 자를 불러 여자가 태어나면 살리고 남자 아이는 죽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히브리 신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다. 그러나, 바로가 그 이유를 묻자 산파는 바로에게 히브리 여인은 건강하여 자신들이 이르기 전에 해산한다고 하였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의 집을 왕성하게 하셨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1:21). 이는 하나님께서 산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가정에 복을 주셔서 그들의 집을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세우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셋째, 바로는 마지막으로 모든 남자를 나일강에 죽이라고 명하였다. “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1:22). 모든 남자를 죽이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를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혈통에 대한 영적 공경이 여러차례 언급된다. 바로가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에스더 시대에 하만은 모든 유대인을 죽이려고 계획했으며, 헤롯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 근교의 2세 미만의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바로의 명령에는 영적인 공격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향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과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성취하신다.

 

3. 모세의 출생과 준비 (2)

 

모세는 레위 지파인 아므람과 요게벳을 통해서 출생했다. 출애굽기 2장은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2:1)라고 시작한다. 출애굽기 6장은 레위 지파에서 고핫 자손인 아므람이 그 아비의 누이 요게벳을 취하여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했다(6:20). 요셉이 태어나자 바로의 명으로 인하여 죽여야 하지만, 아므람은 아들을 숨겼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갈대 상자를 만들어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여 나일강에 떠내려가게 하였다.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 (2:3). 이때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갈 상자가 어떻게 되는가 보기 위하여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바로의 딸인 공주가 목욕하려 왔다가 나일강에서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가져오게 하였다. 바로의 딸이 나일강에서 목욕을 하는 행위는 나일강이 애굽인들에게는 신성시되어 풍요와 건강을 주는 종교의식으로 간주되었다. 이때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가 있었다.

 

1. 공주의 아들이 된 모세

 

바로의 딸은 18왕조를 시작한 아모세의 아들 아멘호텝 1(기원전 1546-1526)의 딸과 투트모세 1(기원전 1526-1512)에 의하여 태어난 공주였다. 그녀는 그의 아들 투트모세 2세가 짧은 기간 다스린 후 하트셉수트 여왕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의 양아들은 투트모세 3세 였는데, 모세는 이 바로를 피하여 도망하였고 그가 죽자 애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출애굽 시점의 바로는 그의 아들인 아멘호텝2세였다 (기원전 1450-1425).

 

바로의 딸이 갈대 상자를 열어 보니 아이가 있었는데 히브리 사람의 아이였다. 그러자, 공주는 아이를 양자 삼았고, 미리암의 권고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삼아 키우도록 했다.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2:7). 하나님이 바로의 딸을 감동시키셔서 히브리 여인인 요게벳을 통해서 양육받도록 하셨다. 아이의 어머니인 요게벳은 오히려 삯을 받으면서 모세를 양육할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에 모세는 히브리 민족으로서의 역사와 정체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자라 공주에게 가서 그의 양자가 되었다.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내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2:10). 모세의 뜻은 건져내다.’ 이다. 모세는 애굽식 이름인데, 모는 애굽으로 물이란 뜻이고 우세스는 건져냄을 받다 라는 뜻이다. (Delitzsch). 그러므로, 모세는 물에서 건져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공주가 물에서 건져낸 자가 바로 모세이듯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으로 이끌 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모세는 그의 이름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낼 사명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스데반은 모세가 바로의 아들로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했다고 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7:22-23). 모세는 당대에 최고의 문명인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웠고 그의 나이 40이 되었다. 당시 애굽의 실권은 투트모세 1세의 무남독녀인 하트셉수트였다. 모세는 하트셉수트의 양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렸지만 하트셉수트의 남편 투트모세 2세와 궁녀 사이에 난 투트모세 3세 와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왜냐하면, 하트셉수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던 투트모세 3세는 확고한 왕권을 구축하려 했기에, 하트셉수트의 사랑을 받는 모세를 제거하려 기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트모세 3세는 하트셋수트 여왕이 죽자 그녀에 대한 반감으로 애굽의 모든 기념비로부터 그녀에 대한 모든 기록을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투트모세 3세는 16차례나 팔레스타인 정복에 나서는 적극적인 외세 정책을 벌였다.

 

모세가 장성한 후 40세가 되자 자기 형제들인 히브리 사람의 고역을 보게 되었다. 이때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인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혈기로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인 것이다. 모세는 요게벳의 영향으로 자신은 공주의 아들이 아닌 히브리 민족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모세는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어찌하여 자기 민족을 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히브리 사람이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자신도 죽이려고 하느냐고 묻자 모세는 일이 탄로되었다고 하며 두려워하였다. 모세를 향한 비난은 노예로서 살아온 자신들의 모습에 대하여 분노하며 공주의 아들로 살아온 모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게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2:14) 라고 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드러나자, 바로는 투트모세 3세로서 하트셉수트 왕비의 총애를 받는 모세를 제거하는 기회를 삼아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으로 도망하게 되고 앞으로 40년간 광야에서 다른 훈련을 받게 되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11:24,25). 모세는 바로의 공주로서 막강한 권력과 심지어는 신으로 추앙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세속적이고 우상이 가득한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하였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과정에서 미숙함으로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는 일을 했지만, 그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의 열정은 세속적이었고 인간적이었기에 실패하고 오히려 미디안의 광야로 도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모세는 학문이 아닌 자신을 낮추며 지형을 배우며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준비되고 있었다.

 

 

2. 광야 학교에서 연단받은 모세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의 학술 훈련을 마친 후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필요한 광야 훈련의 장으로 이끌려오게 되었다. 비록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이라는 광야로 오게 되지만, 이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인도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지도력은 광야에 대한 지식과 40년간 불평하는 민족에 대하여 인내할 수 있는 온유한 성품이었다. 애굽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했던 모세는 혈기로 사람을 죽일만큼 절제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아직 하나님이 사용할 도구로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기 위하여 미디안의 광야에서 40년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모세에게는 힘든 시절이었고 자신의 모든 과거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연단하셔서 위대한 지도자로 삼으시는 훈련을 인도하신 것이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 도착한 곳은 우물 곁이었고 그곳에서 르우엘의 딸인 십보라를 만나게 된다. 미디안의 목자들이 십보라와 그의 양무리를 쫓아내자 모세가 십보라를 도와서 물을 먹게 하였다. 르우엘은 미디안의 제사장이었고, 이드로는 공식 명칭인 듯하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그의 딸인 십보라를 아내로 주었고 모세는 십보라를 통하여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게르솜의 뜻은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였다. 모세는 아들을 통하여 자신이 타국에서 객이 된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내며 양을 치는 삶을 살았다. 시간이 지나서 모세를 찾던 바로인 투트모세 3세가 죽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계속되는 고역으로 탄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아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2:24-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의 권념하신 것은 그들의 고통을 아신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준비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과정은 인간적인 지식이나 언변에서 마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배워야 한다. 믿음이 자라는 과정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부귀 영광을 누리며 세상의 권력을 의지할 때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얻기 위하여 도망해야 했다. 그러나, 광야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깨어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광야의 학교는 야곱과 요셉이 거쳐간 학교였고, 이제는 모세가 40년간의 광야 생활에서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준비되는 기간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훈련하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3.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3-4)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훈련하신 후에 호렙산의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부르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곳은 시내산으로서 하나님의 산인 호렙으로도 불리웠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3:1).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불렀다고 증거한다. 모세는 지난 40년간 이 곳을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떨기나무에서 불이나는 것을 본적이 없기에 기적과 같은 광경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면서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5).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서 신을 벗어 경외심을 나타내어야 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사명자로 보내실 것이라 하셨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애굽인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3:10).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부르심 앞에서 모세는 즉각적인 순종을 주저하고 변명을 대며 사명을 회피하고자 했다. 다음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주저하며 내세운 변명이다.

 

첫째, 나는 무능력합니다.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답변한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1).

 

모세는 40년 전에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을 정도로 의욕적이었지만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모세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철저하게 발견하였고 결국 자신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가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 600 년 전에 약속하신 언약을 모세를 통해서 성취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3:11-12).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시내산을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가 오면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신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낮아지고 비울수록 하나님은 더욱 많은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광야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도록 준비하는 단계인 것이다.

 

둘째,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알려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묻는 다면 자신이 무엇이라고 답변해야 할지를 알고 싶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고 그분의 이름을 알리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14). 스스로 있는 자 라는 이름에서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왔고, 영어에서는 아도나이 라는 주라는 이름이 나왔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만물의 근원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로 시작되었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셔서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야훼로서의 하나님은 온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하신 분이시고 살아계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세워가실 것이라는 의도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야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애굽과 바로를 친 후에 보낼 것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않고 은패물과 금패물과 의복을 애굽 사람에게서 취하도록 은혜를 입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셋째,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전에 자신을 비난했던 이스라엘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히브리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으셨고 지난 삼백년 간이나 침묵하셨다. 그런데, 애굽에서 도망하여 40년 간이나 광야 생활을 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4:1).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 가지의 이적을 보여 주셨다. 하나는 모세의 지팡이가 땅에 던지니 뱀이 되었고, 그 지팡이를 다시 집을 때에 지팡이가 되었다. 두 번째는 손을 가슴에 넣자 문둥병이 발하였고 다시 가슴에 손을 넣을 때에 낳게 되었다. 세 번째는 애굽의 하수를 취하다가 육지에 부으면 피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에 대하여 델리츠(Deliztch)는 세 가지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팡이가 뱀이 되고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탄의 악한 권세를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 애굽은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욱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나라였다. 그들은 악어나 개구리 까지도 신으로 간주하여 섬겼던 것이다. 손이 가슴에서 문둥병이 발했다가 다시 치유받는 모습은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이 문둥병과 같이 죄인이었지만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슴에 품고 인도함으로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이 될 것이다. 나일 강의 하수가 피로 변하는 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나일강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고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신 증거가 된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우상보다 크신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다.

 

넷째,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바로의 권세를 무너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할 것이라는 말씀에 아직도 주저하였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다시 변명하기 시작하였다. “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10).

 

모세의 변명에 대하여 사람의 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셨다 (4:11).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의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모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내시라고 직접 요구하였다.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4:13). 하나님은 모세의 당돌함에 화를 내시며 아론을 모세의 대변인으로 세울 것이라고 하셨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 (4:16). 하나님은 이미 아론이 모세를 만나기 위해서 오는 길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위하여 이적을 베푸시고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우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팡이를 통하여 이적을 행하라고 하셨다.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행하시는 섭리인 것이다. 모세의 역할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바로와 애굽,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순종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그 분의 뜻을 성취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는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은 채우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세이며 헌신인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한다. 모세는 먼저 장인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고 십보라와 그의 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에서 모세의 생명을 찾던 자가 죽었음을 알려 주셨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4:19). 이는 투트모세 3세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감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내 아들 장자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소중한 아들과도 같은 존재인데, 바로가 놓아주기를 거절할 때에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징벌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다. 모세가 길의 숙소에서 하나님을 만나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가던 모세가 그의 아들에게는 언약의 증거인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고 남편을 피 남편이라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모세를 살려 주셨다. 아론이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이적에 대하여 듣게 된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행하자 백성이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